Bitter Pill - Christian Kuria (Feat. Jack Dine & Braxton Cook)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오른손 입장에선 왼손이 자기 모르게 일을 처리했으니 몰라도 죄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오른손도 더 이상 왼손이 해온 일을 모른 채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오른손잡이인 내게 6개월 전 첫 수술을 시작으로, 갑자기 왼손 혼자서 오른손과 함께 하던 일을 단독으로 처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자연스럽게 될 리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일상이 시작됐다.
글 쓰는 지금은 왼손이 주 손이 된 지 반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 닦는 것 행위조차 어려웠던 왼손이, 이제는 제법 살뜰하게 역할을 한다.
물론 젓가락질은 노력해도 왼손으론 무리였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내 오른손이 되어줬다. 식사 때마다 내 왼손과 아내의 오른손의 도움으로 양손잡이처럼 밥을 먹었다. 내가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뜨면, 아내가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해 밥 위에 반찬들을 올려줬다. 아내의 사랑과 희생은 나의 오른손이 부재했을 때 오른손이 되어주는 것으로 형상화됐다. 나는 회복과 함께 사랑과 감사를 다시 배웠다.
왼손으로 지내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깨 수술 후 회복을 위해 24시간 차고 다닌 보조기는, 내가 단추나 지퍼 달린 외투를 입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입는다 해도 앞을 채울 수 없으니, 야외활동은 추워서 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늘어났다.
그나마도 마음을 먹고 나가면 금방 마음이 상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길을 걷다 반대편에서 걸어온 사람이 수술한 내 오른쪽 어깨를 무심코 치고 간다던지, 내 어깨가 불편한 것을 보았는데도 굳이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식당에서 자리 안내를 한달지(빈자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집에 귀가하러 카페에서 차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도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냐고 춥다고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언제나 오른손(다수) 쪽에 속해있는 삶이었다 보니, 왼손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불편한지 몰랐었다. 몸이 불편해보면, 소수가 되어보면, 피해자가 되어보면 안다. 마음은 몸의 상태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마음이 작아진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몸이 불편하던 기간 동안 ‘배려가 권리인가?’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시선에서, 누군가는 배려가 생존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삶은 때로는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영영 본질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부모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약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약자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삶이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진정한 이해란 내 입장에서의 동의와 양해가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려면 상대방이 되어보는 수밖에 없다.
삶은 과정일 뿐이니 여행하듯 살자.
이 문장은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지우고 지우다 보니 남은 마지막 한 문장이었다.
부재의 시간 동안 글을 읽거나 쓸 순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수많은 나와의 대화가 오고 갔다. 글을 계속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쓴다면 왜 쓰고 싶은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어떤 모습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등..
그 과정에서 저 문장이 남았다. 내 삶의 기반이기도 한 저 문장을 다양한 모습의 글들로 펼치고 싶다. 그게 내가 글을 왜 쓰는지, 왜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느낀 경험은, 삶의 다양한 지혜를 만나 나의 언어가 되어주었다. 가장 크게 기반을 닦아 준 것은 붓다의 철학이었다. 나는 종교로서 부처를 만난 것이 아니라,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로 부처를 처음 만났다. 그렇기에 나는 불교 신자라기보단, 붓다의 철학을 좋아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붓다는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기도 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했을 때, 가졌을 때, 목표에 도달했을 때 행복할 것이라 쉽게 믿는다. 그러나 삶이 불편해져 보면, 원래 마땅히 누리고 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행복은 아직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인지하는데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즉, 무탈한 현재(Present)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값어치 있는 선물(Present)이 될 수 있다.
그 관점을 나는 감사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감사할 줄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행복을 삶에 들일 수 있게 된다. 남과의 비교는 나의 행복을 도둑질당하는 지름길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 다시 말해, 나답게 사는 삶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