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Cool - Daniel Caesar
“뼈가 잘 붙었네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뼈에 박은 철심을 고정해 놓은 금속 판이 손 안에서 부러졌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피부를 찔러서 계속 아프실 거예요. 부러진 뼈도 붙었으니 당장이라도 수술해서 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지난주, 몇 개월 전 수술한 오른손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는 다친 오른손의 검사결과를 보며 위와 같이 담담하게 말했다.
뼈가 잘 붙었다기에 기뻤지만, 당장에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은 어떻게 들어도 달갑지 않았다. 작년 10월, 손을 수술할 당시 핀을 제거하는 수술은 회복경과에 따라 아주 빨라야 1월, 늦으면 4월쯤으로 안내받았다.
당장 수술을 받는 것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 때문이었다. 수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있었다. 주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했다.
그런데 당장 수술이라니. 아직 협상을 통해 정리를 해야 할 사안들과 굵직한 행사들이 몇 개 더 남아있었다. 기껏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님 일주일만 미룰 수는 없을까요?”
나는 앞에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달라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딱 일주일. 일주일이면 남은 임무들을 모두 완수하고 떠나올 수 있었다.
“네 부러진 뼈는 잘 붙었으니, 아픈 것만 잘 참으신다면 일주일 뒤에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의사로서는 가급적 빨리 하시길 권해드립니다. “
선생님의 대답과 함께 수술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어제 나는 다시 한번 수술대에 올라 정신을 잃었다.
수술 전, 오른쪽 어깨도 검사를 진행했다. 어깨통증은 역사가 깊었다. 오래전 스쿼시를 한참 치던 어느 날, 오른쪽 어깨가 들지도 못할 만큼 아팠다. 병원에서는 ‘충돌증후군’ , ‘회전근개파열’ 등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써가며 나의 통증을 설명했다.
초기에 치료를 대충 받다 말아서인지, 그 이후에도 어깨는 줄곧 나를 괴롭혔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근력운동이나 테니스, 탁구 같은 회전운동을 하면 다시 어깨가 아팠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미뤄왔다.
그러다가 작년 초 미국여행에서 NBA 경기들을 직접 관람한 뒤, 잊고 살았던 농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솟아올랐다. 마지막으로 공을 던졌던 것이 10년 전이었다. 그새 내 몸은 늙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굳은 몸을 생각지도 않고 열정적으로 뛰었다. 내 머리는 몸을 아직도 전성기 때로 착각하고 있었다. 무리한 탓에 몇 번 시합을 뛰지도 못하고 어깨를 또 다쳤다. 들어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어깨를 다친 뒤 찾았던 회사 근처 병원에서는 단순히 힘줄이 좀 부어있는 것 같다며 주사와 도수치료를 권했다. 모두 비급여였다. 나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일 년 동안 수백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병원에 냈다. 그러나 어깨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작년 9월 손을 다친 뒤 처음 갔던 것도 이 병원이었다. 회사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았다. 점심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손을 다친 날, 병원에서는 다행히 뼈에 아무 문제가 없고 인대가 조금 다친 것 같으니 체외충격파와 냉각치료면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역시 모두 비급여였다.
뼈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일에 복귀했다. 각종 행사와 술자리등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곧 추석연휴가 시작됐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나는 연휴 마지막즈음, 집 근처에서 진료를 하는 큰 병원을 찾았다.
“손 안에서 뼈 두 개가 부러졌고 들려있습니다. 수술하셔야 합니다 “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첫 번째 오진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어깨에 대한 회사 근처 병원의 진단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치더라도 운동을 쉬면 아프지 않았는데, 일 년째 어깨를 쓰는 운동을 하지 않으며 병원을 다녔는데도 차도가 없는 것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수술하러 입원하는 김에 남는 시간에 다시 찍어보자고 한 것이다.
“어깨의 힘줄이 파열되어 있습니다. 어깨위쪽과 앞쪽입니다. 충격에 의해 끊어진 것으로 보이고 자연치료가 불가능한 길이입니다. 놔두면 악화됩니다. 수술하셔야 됩니다.”
나는 그렇게 일 년이 지나서야 내 어깨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한 병원에서 두 번이나 오진을 겪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제 회복된 손을 수술하기 전, 새로운 수술 일정을 잡았다. 4개월 간 왼손으로 불편하게 살았던 시간이 이제야 끝나나 했는데, 다시 어깨 재활을 위해 반년을 또 불편하게 살아야 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억울했다. 회사 근처 병원의 의사가 무척 미웠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불행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새벽이 깊어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행에 원인이 있는 걸까?‘
살다 보면 주위에 훨씬 더 심한 불행들을 많이 목격한다. 때로는 부모가 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불행은 준비가 안 됐을 때에 삶에 들이닥친다.
불행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불운을 선사한 상대에 대한 원망, 상황에 대한 부정, 때로는 그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도, 행운도 딱히 살면서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삶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은 ‘탓’으로, 행운은 ‘능력’으로 착각하고 살곤 했다.
우연히 벌어진 나쁜 일에 감정을 싣게 되니, 상황해결보단 감정 해소를 위해 소모적인 생각들이 이어졌다. 반대로, 행운에 대해 ‘능력’이라 착각하니 행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어느 쪽이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의 태도였다.
잠들지 못하는 수술날 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두 번의 오진과, 두 번의 수술을 겪게 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다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
‘불행은 감정을 들어내야 하고, 행운은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이미 벌어진 안 좋은 일은 감정을 배제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을 하니 감정 아래에 감춰진 문제들이 보였다. 이번 경우에는, 오진한 병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소송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깨수술 전 세워놨던 계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와 ‘해결’만 남았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일은 살면서 수도 없이 반복한 일이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다.
또한, 행운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느꼈다. 계속 모르던 상태로 고통을 참아가며 살았으면 오른손과 오른어깨가 훨씬 악화될 수 있는데, 제대로 진단하고 수술해 줄 의사를 만나게 된 게 참 복된 일이라고 느꼈다. 알아보지도 않고 찾아간 병원에서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난 것이니 분명히 행운이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나를 걱정해 주고 돌봐줄, 아내와 가족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가엽게 여기고, 돌봐주려는 마음은 다시 말해 사랑이었다. 사랑받는 사람임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써서 정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글로써 나누고, 브런치 작가&독자들과 공감하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었다. 서로 혐오하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시대에, 공감해 주는 일은 무척이나 가치가 큰 것이었다. 최근 일을 마무리하느라, 수술하느라 소통을 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나 또한 늦더라도 그들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돌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든다.
수액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만 같은 새벽 5시. 비로소 내 삶에 또 한 번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단단한 삶은, 늘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