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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Mar 28. 2020

강아지에 대하여



강아지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적당한 덩치이다. 그의 발을 닦일 때 한 손으로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 닦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조금은 버거운 정도의 무게랄까. 그의 몸통은 흰색인데 왼쪽에만 검은 점박이가 세 개 있어서 왼쪽으로 누우면 흰둥이 같고 오른쪽으로 누우면 바둑이 같다. 그의 얼굴은 V 모양의 검정 가면을 쓴 것처럼 정수리 가운데와 주둥이를 제외하고는 새까매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곳일수록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강아지 주둥이는 길쭉하게 튀어나와 얼핏 보면 야생 너구리를 닮았지만 사람에게 길들여진 표정으로 분홍 혓바닥을 내밀며 헤헤 웃는 그를 다시 보면 너구리보다는 기분 좋은 아기를 더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집에 있을 때 주로 누워 지내는데 고급 개 쿠션이 방과 거실마다 구비되어 있음에도 사람 자리에 눕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그도 침대에 눕고, 남편이 소파에 앉으면 그도 소파에 앉는다. 그는 정말이지 사람이 하는 것은 뭐든 따라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우리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래, 이제 뭘 할 건데?” 중얼거린다(물론 강아지 언어로). 내가 가장 난처할 때가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갈 때인데 그가 어김없이 화장실 앞까지 따라오면 난 기다렸다는 듯 “안돼! 기다려!”를 외친다. 그럼 그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며 엎드린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그가 기세 등등하고 뭐든 마음대로 하는 강아지 같지만 어쨌든 내 말은 꽤 잘 듣는 착한 강아지라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가족이 있는데, “엄마”라고 부르면 그가 달려가는 사람이 하나이고(나이다), “아빠”라고 부르면 그가 달려가는 사람이 또 하나이다(내 남편이다). 그가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영원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한 가지는 나와 남편이 아침마다 밖으로 쑥 나가버린 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비몽사몽일 때! 그럴 때 나가버리면 그가 “나도 갈래! 나도 밖에 나가는 거 좋아한다고!” 외칠 힘이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강아지에게는 참 안된 일이다.


가족들이 사라지면 강아지는 순간 얼떨떨해하다가도 “휴.. 그래 항상 이렇지 뭐..” 하고는 다시 잠을 잔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난 강아지는 거실에 나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사료를 먹을까 고민하지만 집안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입맛이 없어진다. 그냥 문 앞을 서성이며 가족이 흘리고 간 냄새를 더듬어본다. 그리고 다시 엎드려서 허공을 응시하다가 어젯밤 먹은 고구마나 산책길에서 만난 시큼한 오줌 냄새가 났던 몰티즈를 떠올려 본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면 어느새 삐리릭 소리와 함께 내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그는 온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드는데 그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몸통까지 배배 꼬일 정도이다. 그는 내가 무사히 돌아와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강아지는 나와 다시 만난 것이 축복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매일 늦은 오후, 강아지는 동네 공원으로 마실을 나간다. 나와 남편이 겉옷을 찾으며 준비를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엉덩이를 마구 들썩이며 신발장을 급히 왔다 갔다 한다. 목줄을 채우려고 다가가면 영리한 그는 목을 길게 빼고 “자! 대충 걸고 어서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고, 그렇게 우리의 산책은 시작된다. 그는 첫 데이트에 나가는 들뜬 청년처럼 설렘과 흥분을 길바닥에 흘리며 공원으로 걸어간다. 그의 엉덩이는 적당히 절제된 채로 쌜룩이고, 귀 끝은 나비 장난감처럼 팔랑거린다. 이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공원에 도착하면, 그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한쪽 뒷다리를 들어 올려 참았던 오줌을 무아지경으로 휘갈긴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오줌을 참는다. 최대한 많은 곳에 오줌을 묻히고 자신이 이 공원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시절 나는 이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작성한 보고서에 상사 이름이 아닌 내 이름 석 자를 올리는 것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라고!”

“내가 싼 오줌이라고!”





강아지는 때때로 인간과 함께 하는 삶은 고통이라는 생각에 잠기는데, 나와 남편이 야근을 해서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있거나 날씨가 최악이라 산책을 나갈 수 없는 날에 그렇게 된다. 회의감이 심한 날에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그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와 하울링까지 하게 된다. 그는 외친다.

‘산책 없는 사랑은 거짓이다!’

하지만 다음 날,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회개하고 하루 종일 그의 옆에서 비위를 맞추면 그는 빠르게 삶의 회복력을 되찾는다. 길고 긴 산책 후, 특별한 날에만 주는 달콤한 수프를 끓여주면 그는 다시 사랑받는 강아지가 되었음을 느끼며 세상을 향한 분노를 거둬들인다.

“그래, 삶은 아직 살만해…… 이제 낮잠 좀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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