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생 음악인의 술자리
오랜만이다. 뭐하고 지내? 아직도 음악인가 하고 있니?
그래. 아직 음악하고 있어. 나는 음악 하고 살고 싶어.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함께면 너무 행복할 거 같더라고.
음악? 그거 돈벌이도 안되는데. 그럴 바에 취직할 자리 나 알아보는 건 어때?
그럼 난 죽을 때까지 마음 한편에 후회를 가지고 살 것 같아. 난 지금처럼 고생하더라도 음악 하고 싶어.
남들 돈 벌어서 저축하고 집 사고 차 살 때 너는 오히려 돈 써서 음악하고 있잖아. 근데 지금 뭐 한 거라도 있어? 돈은 돈대로 쓰고 음악으로 치킨은 사 먹을 수 있니? 나이도 있는데 좀 현실적으로 바라봐.
너는 취직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꿈일지 몰라도 나는 그게 잘 안돼. 음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행복들이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더라고. 돈? 아직은 차나 집 욕심 크게 없어. 적어도 먹고살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 할 수 있을 만큼은 있거든. 물론 남들처럼 직장은 아니니깐 그 액수가 적긴 하지만 난 음악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
그러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돈은 돈대로 없어서 어디서 일하기도 애매해져. 음악으로 커리어 쌓은 거 한 번에 무너져봐. 그리고 지금까지 했는데 안 되는 거면 냉정하게 말해서 너는 가능성이 없는 거야.
나는 이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너도 알다시피 좋은 길 포기한 게 많아. 왜냐면 나는 확신이 있었어. 이 길 아니면 안 되겠기도 하고 내가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이 바닥에서 너처럼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음악 접고 떠난 게 한둘이 아니야. 하지만 꼭 본인이 만든 음악으로 뜨지는 못할지언정 겪어온 수년간의 경험 그리고 만난 인연들은 남아 있잖아. 음악이란 분야가 넓은만큼 어떻게든 길이 있을 거야.
참 미련한 건지 낙천적인 건지 모르겠네. 너 2년만 지나 봐. 격차는 더 벌어져있을걸? 접을 거면 빨리 접어. 남들처럼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왜 굳이 그 틀을 벗어나려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인생의 목적이 행복? 그거 배부른 소리야. 부모님 아프시거나 결혼해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이 원수가 될까 봐 걱정된다.
후.. 나도 생각이 있어. 적어도 부모님 아프실 때 드릴 돈 있고, 내가 음악 하기 위해서 돈벌이 알아서 잘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내가 음악을 사춘기 온 것처럼 낭만에 심취해서 하는 줄 알고 있구나. 이거 하려고 얼마나 공부하고 연습하고 밤을 지새웠는지는 알아? 네가 이렇게 술자리 안주로 삼기에는 너무도 멋있는 이야기야. 여기서 멈추면 너 말대로 어디 회사 들어가서 늦게나마 막둥이 생활하는 건데, 그러기에는 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보이려고 하고 있어.
어후 고집만 더럽게 세네.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넌 사회생활했으면 큰일 났어. 한번 잘 생각이나 해봐. 원하면 내가 자리라도 알아볼게. 우리 회사도 나쁘지 않아.
나는 이미 다른 세상을 보고 와서 못 본척하고 살기가 힘들 것 같아. 이게 내 인생이었고 삶이어서 도저히 떠날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