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공간의 미학 Aug 09. 2024

리더의 덕목

위르켄 클롭 감독

최근 홍명보 감독의 국가대표님 선임을 비판하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을 언급했었다. 평소 클롭 감독의 팬이기도 했지만 리더의 덕목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클롭이 생각났다. 나는 어쩌다가 '리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을 때 먼 타지의, 얼굴로 한 번 보지 못한 독일인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클롭 감독의 어떤 모습에 이끌렸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그의 생이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보고 싶어 그의 전기(엠마 네벨링, 2021, 위르겐 클롭, 서울 : 한스미디어)를 읽어보았다. 표현이나 대화 내용은 해당 책을 주로 참고하였다.

엘마 네벨링 지음

클롭 감독에 대해 조사하고 전기를 읽으면서 리더로서의 네 가지 덕목을 생각하게 되었다. 헌신, 겸손, 리더십 그리고 책임감이다.


1. 헌신

클롭은 마인츠, 도르트문트, 리버풀에 속해 있으면서 본인이 속한 클럽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랐다. 클럽이 잘된다는 것은 단순히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것을 포함하여 팬들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것도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건전한 재정적 관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상태로 클럽이 운영되어야 전반적으로 잘 운영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감독이라면(마치 주식회사에 선임된 전문경영인처럼) 성적을 위해 무리한 재정적 지출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으면 구단과의 마찰도 불사한다. 자신을 비판하는 팬들이나 기자들과 대립하기도 한다. 클럽 이전에 나 자신의 명성과 몸값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침해받는 것은 견딜 수 없어한다. 하지만 클롭은 다르다. 클럽의 장기적인 재정 계획에 따라 선수의 영입과 방출을 진행하며, 항상 팬들을 우선시한다. 선수들은 클럽의 가치 안에서 움직이도록 기강을 잡는다. 클롭은 자신이 클럽, 나아가서는 해당 지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단순한 한 명의 축구 감독이 아니라 클럽의 한 책임자로서 헌신하기로 맹세한다.  


"저는 제게 중요한 일에 신경 씁니다. 가족과 일,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 저로 인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p.246)

"이런 말을 하면 허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 비전은 제가 있는 곳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p.283)


클롭은 진심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조금 더 좋게 만드려고 했다. 선수들에게 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한 것만이 아니라 구단과 팬, 연고지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랐다. 그의 헌신이 가장 빛났을 때는 스스로 자진 사임하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아니라 구단이 잘되고 자랑스럽게 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그렇기에 구단 안에서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었을 때, 오히려 자신이 내려올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가 클럽을 위해 헌신하지 않았으므로 내려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사임하는 결정을 통해 클럽이 미래를 준비할 길을 마련함으로써 그의 헌신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2. 겸손

축구계뿐만 아니라 스포츠계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성과를 알릴 필요가 있다. 조세 무리뉴 감독은 스스로를 Special One이라고 표현했다. 무리뉴 감독의 성취로 보았을 때 결코 과한 수식어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위르겐 클롭 감독은 그와 정반대로 자신을 그저 Normal One이라고 표현했다. 왜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했을까? 단지 겸손해 보이고 싶어서일까?


"제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감독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가장 열정이 넘치는 감독일 것입니다."

이런 표현으로 보았을 때, 클롭 감독 스스로 자신을 Normal One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본인이 보여주는 겸손함의 미덕이 발휘하는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그에게 쉽게 다가오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무도 그를 Normal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 더 친근하게 생각하고 다가가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의 표현에 대해 아무도 동의하지 않겠지만 누구도 클롭이 영혼 없는 겸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은 진심으로 자신을 Normal One으로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기에 선수들과도 격의 없는 소통을 할 수 있었고, 팬들도 그의 소탈함에 믿음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이다. 최고 수준의 클럽, 최고 수준의 감독들은 성적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항상 받는다. 그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이는 단순히 감독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구단에도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 때론 감독도 구단도 스트레스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급해진다. 그리하여 1년, 2년마다 클럽의 감독이 바뀌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롭의 겸손은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도록 만들고 그가 자신의 팀을 만들고 안정화시킬 있는 시간을 벌어다주었다.


리버풀이 우승한 후 클롭은 자신을 기다려 준 팬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5년 전 저는 팬들에게 '의심하는 자에서 믿는 자로' 변해줄 것을 부탁했고,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줬습니다. 팬들이 우리를 챔피언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3. 리더십

1980년대 당시 하버드비즈니스 스쿨의 Kotter교수는 매니지먼트와 리더십을 구별했다. 코터의 구분에 따르면 매니저는 관리하고 유지하고 모방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조직의 통제와 안정성을 중시하며 결과를 의식한다. 한편, 리더십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방향성을 가지고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하고 무엇보다 조직의 지속적인 변화에 주안점을 둔다. 리더십을 가진 인물은 복사본이 아닌 원형이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한다. 코터의 이러한 정의로 비추어보면, 클롭은 리더와 매니저의 양 측면을 훌륭하게 연결시킨다.


클롭은 '게겐프레싱'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을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여 수행하지 못하는 선수라면 어떤 스타플레이어도 함께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단순히 자신이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도록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규율 안에서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클롭은 단순한 선수단 매니지먼트를 넘어선 장기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구단의 역사와 그 역사가 가진 의미, 그리고 앞으로 구단을 위해서 선수단이 함께 나아가야 할 비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비전은 선수단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구단과 팬들에게도 가감 없이 전달된다. 이를 통해 구단, 선수단, 서포터들은 하나가 되고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한다. 구단에 대한 존중, 선수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서포터들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뭉쳐서 모두가 한 팀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어려움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리더십. 그게 바로 클롭의 리더십이다.


4. 책임감

마인츠, 도르트문트, 리버풀까지 클롭이 맡은 세 개의 클럽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세 팀 모두 완성된 클럽이 아닌 재정 상황, 팀 스피릿, 객관적 성적 모든 부분에서 위기인 팀을 맡았다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감독 제안을 받은 마인츠를 제외하면, 도르트문트와 리버풀은 누가 봐도 완성된 팀이 아니라 한 때 대단했지만 지금은 아닌 과거의 영광인 팀이었다. 재정적으로 충분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팀들을 마다하고 굳이 위기 상황의 팀을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시작했다.


현재 상태가 열악하다는 불평불만을 하기보다 해당 클럽의 유구한 역사와 열광적인 서포터들이 너무 매력적이기에 자신이 이 팀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핑계를 대기보다 싼 값에 저평가된 선수들을 데려오고, 유스 선수들을 발굴해 내고, 서포터들에게 항상 열광적인 응원을 요구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여 패배감을 조성하지 않았고, 지나친 낙관주의로 현실에서 동떨어진 판단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여 성과로 보여줬다. 때론 키워낸 선수들이 이적하고, 연속된 준우승과 성적 하락하는 시련의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성적으로 보여줬다. 클롭 감독을 보며 책임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현실인식과 긍정적인 행동 이행으로 증명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클롭이 책임감을 보여준 가장 큰 사건은 바로 리버풀에서의 자진 사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헌신에서도 말했지만 조직이 잘되고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려와야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했다. 자신이 리버풀이란 팀보다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고, 자신의 영향력이 이 팀에서 지배적이 되었다고 판단한 순간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팀이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도록 만들었다. 리버풀에서만 자진 사임한 것이 아니었다. 도르트문트에서도 그랬다. 도르트문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결정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도르트문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팀에 더 긍정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더 이상 도르트문트를 위한 이상적인 감독이 아닙니다. 도르트문트라는 위대한 클럽에는 나보다 더 어울리는 감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누군가가 떠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이 사회에 제대로 된 리더가 참으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부하 직원이 알아서 한 일이다' 등과 같은 말들만 반복한다. 권위와 지위만 누리고 명예와 책임은 개나 줘버린 이들이 너무 많다. 헌신, 겸손, 리더십, 책임감 중 하나라도 있다면 과연 그런 사람들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클롭 감독에게서 본 네 가지의 가치가 엄밀하게 구분되는 가치들도 아니고 학술적인 정의도 아니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었던 우리 사회에 클롭이 보여주는 리더로서의 덕목이 조금 더 강조되었으면 좋겠다. 클롭 감독이 말한 것처럼 '내가 있는 곳을 조금 더 좋게 만들겠다'라고 다짐하는 리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클롭 감독의 업적]

1. FSV 마인츠 05 (2001~2008)

분데스리가 1부 승격(20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2008~2015)

분데스리가 우승(2010-2011 시즌, 2011-2012 시즌)

DFB 포칼 우승(2011-20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3-2014 시즌)

리버풀 FC(2015~2024)

유로파리그 준우승(2015-2016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7-2018 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2018-20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2018-2019 시즌)

FIFA 클럽월드컵 우승(2019년)

프리미어리그 우승(2019-2020 시즌)

FA컵 우승(2021-2022 시즌)

EFL컵(2021-2022 시즌, 2023-2024 시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