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블루칼라

The docuphile

by 매버지

AI의 습격으로 많은 일자리가 대체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는 "앞으로 10~20년 내에 로봇과 자동화로 인해 노동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즉, 사람들이 몸을 움직여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이분화된 직업의 구분이 아예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보이는 로보틱스 기술을 보았을 때 정밀한 작업을 하는 블루칼라 직무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인지 블루칼라의 어원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연봉 $100,000 이상인 '고소득 블루칼라'가 늘어나며 젊은이들의 직업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 방문했던 일본에서도 비슷한 점을 느꼈다. 고령화와 기술인력 부족 현상이 맞물리면서 오히려 정년을 늘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화이트칼라 직업을 선호하던 아시아 국가들 역시 높은 연봉과 안정성, 워라벨(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적음)을 이유로 블루칼라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블루칼라 정의(출처 : KBS)


KBS 다큐 인사이트 [역전의 블루칼라]는 이러한 사회현상을 현장에서 뛰는 기술직들을 직접 만나 파고든다. 다큐는 과거 소위 '3D 업종'으로 여겨졌던 블루칼라 직종이 AI가 대체하기 힘든 인간만의 '손기술', '노하우', '현장 감각', 즉각적인 판단력' 등을 가진 전문가로 재조명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산업과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술 노동'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 현실적인 커리어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블루칼라 늘어나는 수요 대비 떨어지는 구직 증가율(출처 : KBS)


다큐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직 체감적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는 다르게 기술직에 종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런 이들 중 성공적인 모습이 유튜브나 언론에서 많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변했을까? 직업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느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술명장, 장인과 같은 분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은 훌륭하지만 그들 역시 처음 일을 시작하며 느꼈던 사회적 편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기술직 종사자들에게는 여전히 '낮은 위신의 직업'이라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숙제이며, 직업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일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개인의 인식은 개선되고 있지만,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출처 : KBS)


또한, 기술 노동에 대한 숙고 없이 숙련 기술자의 높은 연봉만 생각하고 도전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제 다큐에 출연한 배우 출신 5년 차 석공 고윤후 님(45)은 단순히 돈만 보고 선택하였을 때 당황할 포인트들을 짚어준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위험한 상황과 컨트롤할 수 없는 자연, 준비단계에서 실수할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일까지. 늘 신체적, 정신적으로 긴장되어 있는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함을 말한다.

5년 차 석공 고윤후 님의 우려(출처 : KBS)


결국 한국 사회가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기술직의 재평가’가 아니다.


우리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던 노동의 위계 [머리를 쓰는 일은 높고, 손을 쓰는 일은 낮다]는 고정관념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자동화가 빠르게 진화하고, AI가 우리의 책상 위 일을 한 겹씩 벗겨 내는 동안, 오히려 산업 현장은 사람의 손을 더 강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정교한 판단,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쌓인 손끝의 기술은 그 어떤 알고리즘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필요한 자리’로 불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블루칼라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직의 임금은 빠르게 오르는 추세이고, 숙련 전문가의 가치는 희소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경계가 뚜렷한 일’, ‘관계 스트레스가 적은 일’, ‘기술을 쌓아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바라본다. 다큐 속 장인들이 말했듯이 이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모두 단단해야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자체가 이 일을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기술이자 업(業)’으로 만들며, 미래의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축으로 자리 잡게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변화는 거대한 전환의 서막일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일이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이제야 천천히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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