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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Jun 13. 2024

집 나간 감성이 어디 갔니

스스로를 깨우는 힘

  이성의 끈을 거듭 붙들어 매고 또 매며 살아가는 삶이 계속되 사라져 가는 것이 감성이다. 사전적 의미로 감성은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말한다. 이성(理性)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외계의 대상을 오관(五官)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말한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한 유명강사는 내면이 건강한 사람의 특징으로 계절의 변화를 잘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하는 것이 나 또한 계절의 변화를 '춥다, 덥다, 눈온다... (아씨 차 막히겠네)' 느껴온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더워진 날씨에 괴롭다는 생각만 하고 녹색으로 뒤덮인 아파트 화단을 보며 그저 지나치곤 했다. 그 싱싱한 아름다움을 그저 바라보기만 아니 바라보지도 않고 멍한 머리를 세우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여름은 가을로 그리고 겨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 감성이 집 나가는 줄도 모르고.


  백수가 된 후 등원 전과 하원 후 육아시간을 제외하면 제법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멍 때릴 시간도 있고, 책을 보다 창 밖을 바라볼 수도 있으며 좋아하던 혹은 듣고 싶었던 음악을 듣고 흥얼거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 여유가 문득 어린 시절 나의 모습 떠올리게 했다. 맞벌이 부모님의 영향으로 혼자인 시간이 많았던 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하고자 열심히였고, 1인 다역을 하며 피규어 장난감가지고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이기도 하였다. 당시엔 외롭다는 생각보다 상상의 바다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즐기는 감성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생각도 해보았고 사물을 유심히 관찰해 보기도 하였는데 그런 시간들이 내 감성을 더 풍성하게 채워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큰 자극이 자주 생기진 않는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고 자극이 아무리 충격적이라도 똑같은 자극에는 무뎌지긴 마련이니까 더 큰 자극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자극에 무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행복한 자극에도 어린 시절과 다르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감성을 깨우는 일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고, 리프레쉬할 수 있다.


  이성적 인간에 대해 강조하던 시대가 꽤나 길었다. 물론 감성의 중요성이 2000년대 들어서 중요하게 대두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이성적 인간을 후하게 쳐주는 관성이 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된 인간이 가장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감성을 선택하고 싶다. 감성을 깨우면 나를 스스로 움직이게 하지만 이성은 나를 의무로 이끄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이 된 내가 감성을 논하고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알겠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이끌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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