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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Jun 17. 2024

말과 글에 대한 생각

정리가 필요해

  지인이 책을 썼다고 연락이 왔다. 나 역시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 작은 소망을 지닌 자이지만 나보다 조금 어린 지인의 연락에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지인의 책 목차를 보니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주제와 내용이 너무 이른 감이 느껴졌다. 과거 팀원으로 함께 일했던 친구가 직장생활 3년도 안되어 어떤 책을 쓰고 난 뒤 5년이 지나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창피하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설익었고, 지금 보니 여기저기 책에서 본 좋은 말만 짜깁기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책으로 출간된 이상 주어 담을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누구나 자기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지인이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제가 내게는 너무 변수가 많은 주제처럼 느껴졌다.


  글보다 순간적인 파급력이 큰 것은 '말'이다. 글은 생각을 한 번 거쳐 정리가 된 것이기에 적어도 최대한 논리 정연한 구조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말은 글에 비해 좀 더 짧은 시간 생각을 거쳐 나오기도 하며 생각과는 다르게 헛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어 검증되지 않은 말을 하기도 하고, 비언어적 요소와 더불어 좀 더 극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30대 초반 회사에서 주어진 기회로 강의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고 희열에 빠졌다. 점점 관심이 늘어나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30대 중반에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다양한 영역을 다뤄야 수익이 생길 수 있다고 여겼고, 전문영역이 아닌 주제를 생각 없이 다루게 되는 일도 생겼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음에도 이런저런 논문과 책을 짜깁기하여 마치 내 생각인 양 떠들어댔다. 또 잘 나간다는 강사의 교안을 일부만 수정해 마치 내 것인 양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점점 나는 마음이 피폐해졌고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결국 사업을 1년도 안되어 접게 되었다. 내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과 인생에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말로 뱉어내기 위해서 더 진실하고 확실한 정리가 필요한 것을 그땐 미쳐 알지 못했다.


  누군가 '너는 자기검열 수준이 너무 높아'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난 그 정도의 인간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강의를 하면서 불안해하지 않을 만큼 해당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정리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 역시 최대한 쌓아야 한다.


  이제는 나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스스로에게 질서 정연하게 정돈하여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쓴다. 난 정리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 적어도 정기적인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사실과 공간까지 더해주면 금상첨화란 것도 느꼈다. 나이 40대 중반이 되어서 겨우이지만 더 이상 설익지 않을 수 있으니 그마나 다행이다. 오늘도 여전히 두서없지만 글을 써 본다. 스스로가 좀 더 정리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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