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스리랑카 Jun 22. 2022

노가다는 나의 벗

임도관리원의 하루​



  2022.5.19. 오후 1시경 산삼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아뢰자면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아작아작 씹고 또 씹어, 입안에 건더기가 흐물흐물 술술 넘어갈 때까지, 또 씹고 씹었다. 사연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임도 관리원의 하루는 산에서 시작해 산에서 끝을 맺는다. 특별한 민원이 발생해 저잣거리로 출동을 하지 않는 한, 임도 내의 순찰, 수로 정비, 기타 특별한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것이 주임무. 그럼에도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비우자마자, 이내 산속으로 스며든다. 전생에 얼마나 넘쳐나는 복을 타고 이 풍진세상에 나왔는지, 이때처럼 행복하게 산속을 누벼 본 적이 없다. 전체 산림바이오매스 팀(임도 관리원도 그 일부이다)의 팀장은 60대 초반의 건장한 산꾼, 무엇보다도 산을 사랑하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귀신같이 아는 카리스마 대장이, 곁에 다가와 한마디를 건넨다.





 "요렇게 다섯 닢이 잘 생긴 놈이, 입니다, 잘 보시라요, 이 근처가 옛날 삼밭이 있던 데라서 분명 새들이 물어다 논 삼이 자라고 있을 겝니다''하고는, 어느 세월 모월 모시에  발견했다던, 증명사진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림의 잔영이 사라질세라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찾았건만, 초짜 임도 관리원에게는 언감생심, 지천이 삼밭이라 해도 나의 눈에는 그저 그런 풀밭일 뿐이다. 대장은 절대 50보 시야에서 사라지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산기슭을 오른다. 임도를 벗어난 산속 길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그러다 햇살이 빛줄기처럼, 수목들 사이로 내려앉는, 풀들이 보슬보슬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산속 초원지대(대부분의 고급(?) 식물들은 이런 곳에서 살기를 좋아한다)를 만나면, 이내 그곳에 벌써 와 새싹들을 살피는 대장이 있다.






 오후 근무가 시작할 무렵, 대장은, 난데없이 깨끗이 털어낸 삼뿌리를 나에게 건넨다. 그것은 마치, 방문한 농장에 견학을 마친 실습생에게  농장주가 정성스레 키운 작물을 건네는 모습과 흡사했다. 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는 듯   "드시라요.. 이건 신참한데 주는 산신령의 특별 선물입니다, 바로 저 위에서 한 뿌리를 받았습니다. 잘 드시고 좋은 동료가 되길 바랍니다.. " 그날  그 순간, 임도 한 켠에 붉은 배낭을 깔고 부복하여 산신령의 선물을 받았다. 몸 둘 바를 몰라, 극구 거절하기를 수차례, 그러나 결국, 못 이기는 척  아동용 젓가락 굵기의 7년생 쯤의 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처럼 생각지도 않는 방식으로 산신령은 사랑의 펀치를 날린다. 그 순간만큼 따뜻한 환대에 감복해 경외스럽게 산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지금도,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생각만 하면 입안이 알싸해지면서 힘이 솟는다. 정말??.. 사랑하는 벗들아, 주제넘게 한마디 사족을 달자면, 산삼의 영험은 약효의 특별함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한 오관이 환하게 열리는 경험, 나는 그것이 '약발'이라고 믿는다.   







비교적 나는 시간과 날짜를 중시하는 편이다. 모월 모시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속된 말로 썰 풀기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작난 핸드폰의 일생을 추억한다. 3년간 충실히 보필한 핸드폰을 위로하자니, 오호통재라! 때는 바야흐로  2022.6.13(월)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바로 그날, 대략 시간은 오후 한시 경, 수입장(산물이 집하한다는 의미에서, 외곽에 위치한 시청의 작업장이다)에서 열서너 대의 예초기를 싣고, 임도 제초 작업을 떠났다. 그곳에서 부릉부릉 앵앵거리는 풀 베는 소리에 묻혀, 핸드폰의 발신음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작업을 종료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나는 핸드폰이 없어진 사실을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수입장 사무실에 두고 온 것으로 여겼다. 이때까지는 핸드폰의 분실을 단 한 모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다음날, 종료하지 못한 임도 제초 작업을 위해, 현장으로 바로 가면서도 핸드폰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까스로  작업 현장과 사무실이 있는 수입장과의 통화에서, 핸드폰을 찾을 수 없다는 동료의 통보가 오고서야, 조금씩 불안해졌다. 수입장과 현장을(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이다) 대장을 위시한 대원들과 함께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문제의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6.14일(화) 오후 4시경. 마지막 수단으로 핸드폰 가입 통신사를 통한 위치 추적 결과, 아주 엉뚱하고 의외의 장소에서 영면하고 있는 핸드폰을 발견하고는 난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조금 과장이 심했다~) 차량 운행 도중 잠깐 신호 대기 30초 사이에, 뒷자리에서 앞자리로 옮겨 탈 때  핸드폰이 주머니를 이탈하다 생긴 사고로 추정된다는 것이 검시관의 판단이다.  그 뒤 도로에서 차바퀴에 곤죽이 된 몰골의 핸드폰을 찾았다.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할까.. 어떻게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이탈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가사의, 해석 불능이다. 어쨌든 몽골의 산천을 누비던 필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유산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2022.6.15 (수) 오전 12시경 새로운 폰으로  이사를 했다. 빈손으로.  벗들아 그대들에게 연락할 재간이 없다. 조문 소식 접하는 대로 내 새 휴대폰에 위로 전화라도 한 번 해주렴, 황망한 가운데 급사한 핸드폰을 추모하다.        




작가의 이전글 노가다는 나의 벗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