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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Mar 26.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계절의 시작 입춘을 필두로 우수, 경칩, 춘분을 지나 화사한 봄을 알리는 청명의 사월을 앞두고 있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았던 지난해와는 달리, 강원도의 봄은 아주 나이브하게 현재까지 순항을 하고 있다. 다소 인색한 봄비에 경미한 불만이 조금 있을 뿐, 산천은 의구하고, 세상은 태평성세(?).입만 열면 풍진세상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노가다 이 몸이, 강호 제현의 여러 벗들의 염려와 초사 덕분에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얻었다.

 이름하여 '산림 바이오 매스 수집단', 즉 쉽게 사족을 달자면, 숲 가꾸기 사업장에서 출하되는 산물의 수집 운반, 솎아베기, 천연림 보육, 임내정리, 산물수집, 덩굴제거, 임도 정비, 풀베기, 병해충방제, 산불진화 등 숲 가꾸기와 산림자원 조성 분야에 필요한 공공성 산림사업의 실행 등등이 주 임무.  계약기간: 2023.3.2~12월 사업 종료일까지, 급여 1일 76,960원, 주월차 수당 등 근무조건은 공공 근로자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이 근로 집단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주된 근무지가 깊~은 산속이어서, 세상의 별꼴을 멀리할 수 있으며,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저 멀리 바람과 함께 날아갈 수도 있는 천혜의 일자리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수년 전부터 산림 관련 민원처리가 의외로 많아, 속세의 부대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하지만, 오늘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때로는 예측불허, 흥미진진, 가히 노가다의 진수를 맛보고 있다. 

이곳에서 노가다 이 몸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저 남은 세월 날수만 죽이다가, 진짜 골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는 한다. 언제까지 기약할 수 없는 지루한 세상살이에 좀 신물이 나긴 한다. 노년층이라도 엄밀히 말해, 같은 잣대로 그들의 삶을 재단할 수는 없다. 팔자 중 상팔자는 무자식이라지만, 세상의 숭배 으뜸은 '배금'이 차지한지 오래다. 지천에 굴러다니는 돈다발과 함께 럭셔리한 비엠더블유 몰고, 정력 강장에 혼신을 다하며, 다가오는 죽음도 우아하게 맞아들일 수 있는 부류가  상팔자 일 순위( 사실 고백하지만, 나의 오랜 꿈이긴 했다). 있는 돈도 제대로 못 쓰고 전전긍긍 내일 걱정에 죽어라 주머니만 움켜쥐고 있는 하빠리 팔자에 비한다면,  나의 팔자는 어디쯤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오늘, 스스로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새봄에 중간 인생 결산을 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중 하나, 은밀히 '유언' 하나쯤 공개하자면 이렇다. 아마도 노가다 이 몸이 천수를 다해( 사실 이 몸은 천수를 지났다) 세상을 뜨는 날이 온다 해도, 결코, 장례식에 벗들은 초대받지 못할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라. 그 이유는  나의 몸뚱이는 어느 곳에 기증되어 째고, 부수고,  굴러다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다음,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난 다음, 유족 손에 들어갈 것이다. 즉 쉽게 말해, 이 몸이 '재활용'의 화신이 된다는 말이다. 그 흔해빠진 냄비도 재활용한답시고 쓰레기통이 아닌 고철 통에 담기는 세상에, 살아생전 제대로 된 보시 한번 못한, 이 몸의 활용은 그런대로 나답다. 태어날 때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왔다지만, 갈 때는 미리미리 그대들과 친교를 나누고, 사랑에 친절을 범벅해 기꺼이 베풀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아니 어쩌다 이 따스한 봄날, 이런 망측한 생각을 벗들에게 고하는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새 생명이 움트는 이 눈부심에 눈이 멀어, 가슴이 저려와 극단적인 고해를 하는 셈이라 치자. 벗들의 건투를 빈다.    


                              





         

    

상서로운 2월 중순경, 첫 손자를 보았다. 드디어 세상 첫 나들이를 시작한, 애칭 태명 '꾸꾸'를 보고 있자니 온갖 세상 봄눈 녹듯, 걱정 시름이 녹는다.  불온한 세상, 곁을 둘러보면 어느 하나 태평을 담보할 수 없는 시국이라지만 아량의 틀을 키우면, 어느 세월, 어느 한때, 어느 순간, 세상은 늘 평화를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큰 아들 내외는 굳은 희망을 담아 꾸꾸의 출산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고, 육아용품을 준비하고, 꾸꾸가 나올 세상에 행여,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노심초사 준비하면서 꾸꾸의 탄생을 기다렸다. 드디어 출산, 그 모든 걱정이 환희의 순간으로 바뀌고, 천연덕스럽게도, 꾸꾸는 부족한 잠을 자고 있다. 바쁠 것 하나 없는 천하 태평의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축하한다 꾸꾸!! 너는 어느 별에서 온 왕자님이니, 이곳은 지구별이라고 해, 이곳 사람들  모두 너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어!!!. 십수 년간, 주변 친척들 모두를 둘러봐도 애 울음소리 들어본 적 없는 작금의 세태에, 아들네의  출산은 그야말로 경사였다. 더불어 철저하게도,  현대판 금줄의 표식으로 병원 방문은 원천적으로 불허하고, 퇴원과 동시, 산후조리원으로 직행해 그곳에서 이십여 일을 몸조리한 뒤에나 만날 수가 있다고 기별이 왔다. 그리고 달포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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