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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un 11.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어느 도인의 세상 뜨는 방식


2023. 6.11 오전 2:30분 죽하 조춘권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오칠 년 구월 이십일 생, 세상 나이로 보면 한창이랄 수도 있는 육십 중반에 세상 중력을 모두 소진시키고 가볍게 날아갔다. 벗이라 하기엔 친분이 모자라고, 도반이라 하기엔 배움이 짧아, 선생의 깊은 마음속을 헤아려 본 적이 많이 없었다. 그저 만나면 술 잔 기울이기 바빴고, 헤어질 때가 오면 언제가 될지 모를 선문답으로 파미르를 동행하자고 했던 선생이 서둘러 세상을 뜬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요 며칠 동안 한학자 허권수가 쓴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문'을 잠자리에 들면서 수면제처럼 읽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남명 선생의 세상 하직 모습인데, 어째서 남명 남명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어 벗들에게 소개해 올린다. 1572년 1월 죽음에 임박하여, 평생 화두로 삼아  매진한  경(敬) 과 의(義) 두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글자는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힘써 여기에 공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공력을 많이 들여 익숙하게 되면, 가슴속에 한 가지도 가리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서 가는구나"(남명 선생 편년에서) 이처럼 72세 죽음을 맞을 때까지, 평생을 한결같이 유학의 실천 즉, 행동으로서의 유학을 추구한 조식 선생을 '처사'를 넘어 '성인'이라 칭한다 해도, 하등 부끄러울 게 없는 분도, '삶은 결국 미완성'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어제 그제 저녁 무렵, 배움을 청하러 온 도반에 의해 발견된, 선생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조선 팔도에 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자 몇 명이었던가, 처음 배우던 자세 그대로 세상의 이치를 찾아, 바르게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 평생 홀몸으로 살았고, 누군가 챙겨야 할 동반이나 챙겨줄 누군가도 없는 선생이, 잠자리에 들어 뇌출혈을 맞이하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가 도술을 부려 애써 세상을 등지려 한 혐의가 너무 크지 않은가. 온종일 마음을 가다듬고 선생의 일생을 회고해 보니, 그런대로 심플하게 죽음을 넘어서려는 객기가 부러웠다. 

 선생은 세상의 이름 없는 수선꾼이다. 가방끈이 길면 겸손이 사라지고, 따르는 무리들이 넘쳐나면 새로운 종교가 싹튼다. 오로지 변변한 수선꾼이 되기위해선 끊임없이 순례를 계속하는 것에 일생을 걸었다. 저술하나 남기지 않고, 오로지 세상의 막힌 혈을 뚫어주고, 끊어진 맥을 이어주는 '너절한 세상의 정비공'이 되어, 동가식서가숙  살아온 죽하 선생의 일생이 조식 선생의 일생과 오버랩되었다. 선생의 세상 사는 미학은 무엇이었을까..무엇이 그토록 궁금해 자식이나 여인에, 관심 대신 '도반'이 사는 곳이 내가 사는 곳이고, 내가 사는 곳이 '그대들의 집'이요 하며 평생을 떠돌았다. 특별히 재물이나 재화를 탐한 일화는 알 수 없지만(일설에 의하면 옛날부터 만화책 모으기에 온갖 정성을 들여 수백, 수천 권의 절판된 만화책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바 있다) 현재 스코어, 선생의  변변한 재산이라곤  '제 발로 굴러가는  몸뚱어리 한 몸' 뿐이라는 건 도반들이 알고도 남는다.




내일모레가 장례식,  그의 평생 소원대로 하면 순례꾼이 수미산에 스며들기를 원하 듯, 그곳에서 몸을 날렸을 법한데 내공을 풀가동하지 않고, 자면서 가는 쉬운 방법을 찾아 세상을 뜬 걸 보면 그것도 사치라고 본 것은 아닌지, 내일 장례식장에 들러 소주 한잔하면서 에둘러 물어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슬프다거나 아쉽다거나 한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난 벗이 절절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 뿐, 선생의 명복을 빈다.    



공동 농장

  작업장과 인접한 반듯하고 잘 생긴 텃밭이  갑작스러운 주인의 변고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다. 이 딱한 처지의 밭을, 무상 임대 방식으로 빌려, 공동으로 작물을 심었다.  족히 300평 남짓한 밭을 경운기로 갈고, 거름을 뿌리고, 고랑을 만들어, 강원도 진부 식으로 3월 22 일,  '진부 씨감자'를 심었다. 이 종자가 특별한 것은 한번 맛보면 다른 감자는 국이나 끓여먹을까 거들떠보기가 시시해지고, 전분 함량이 억수로 많은 이 감자로 조제된 감자 전은, 빠삭하기가 풀 먹인 소창 같고, 입안에서 녹는 속살은 격하게 달금하다. 그렇게 잘난 감자를 심은 지 어언  50여일, 감자 꽃이 피었다. 무성한 꽃들이 온 밭을 뒤덮을 즈음, 공동 농장 대표의 호출이 있었다. 내일 출근 전 몇 시까지 농장으로 집합하시오, 할 일은 다음과 같소.. 하며 지시한 교시는  하얗게 올라온 감자 꽃을 따주는 작업. 이유는 감자는 꽃을 보기 위해 심는 작물이 아니고, 오로지 땅속 수북이 열리는 씨알을 굵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 하면서 사정없이 감자 꽃을 찍어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 감자밭이 이제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 옛날 춘궁기의 오뉴월은 쌀독이 비는 시기라, 감자 밭에 살며시 손을 집어눠 아직 여물지 않은 '붕알' 만한 감자를 캐서 먹었다고 동료들은 증언한다. 벗은 죽어도 산사람은 탐욕스럽게 먹거리를 챙겨, 풍진세상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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