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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ul 29.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임도 풀베기 현장에서



7.26일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장마가 종료되었다. 장마 기간 31일, 누적 강수량 648.7mm,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최소 사망자 48명, 실종 4명으로 집계되었다. 집중호우라지만 어처구니없게 인명피해가 막심하다. 그 여파로, 막강한 국유림, 공유림을 보유하고 있는 강원도에서도, 지자체 휘하의 관련 근로자들은 칠월 중순까지 특별 주말 근무가 이어졌다. 즉, 산사태 발생 현장, 실시간으로, 민가를 덮친 위험 수목의 제거 등, 크고 작은 일들이 꼬리를 물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족히, 50년이 넘은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등이 맥없이 쓰러진 현장에 가서 보면, 생각한 것보다 나무의 뿌리가 '이 정도 밖에 안돼?'하며 놀라곤 한다. 척박하고 경사진 산림 토양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슬프지만,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보단 얇게 잔뿌리 위주로 양분을 섭취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장마가 끝나면서 다시 정상적 루틴 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하나 '임도 풀베기'를 벗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여름철 풀베기 작업은 위험하지만 낭만이 있고, 지루하지만 매력이 가득하다. 보통 풀베기 작업은 임도관리원, 산사태 감시원, 산림조사원, 바이오매스 수집단이 합동으로 벌리는 대대적 이벤트. 차량 두 대에 혼다 4행정 예불기(예초기로도 불리는), 고지 톱, 엔진톱, 연료, 안전장구, 식수 등을 싣고 험한 산길을 오른다. 시작점에 도달하면 장비 점검을 마치고 안전장구를 착용한 다음, 안전교육이 실시된다. 서두르지 말 것, 작업자와의 거리는 최소 10m를 유지할 것, 칼날은 지면과 10cm 정도 유지할 것, 악셀은 수시로 조정하여 부드럽게 작동시킬 것, 톱날의 사각지점 (12시에서 3시 지점) 숙지 등 안전 교육이 끝나면 2인 1조 팀이 순번대로 차량에서 하차를 실시한다. 팀별 간격은 대략 200여 m, 5개 팀이 투입되면, 그 거리는 대략 1km 남짓하며 작업 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보면, 차량이 도착해 필요한 연료를 주입하고, 다음 작업구간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작업의 매력은, 억수로 쏟아지는 땀 범벅에 함몰한 몰아(沒我)를 경험하는 데 있다. 산속이라고 더위가 없는 게 아니고 약간 참을만할 뿐이다. 보호 장구를 다 걸치고, 연료 주입한 10kg 상당한 혼다 예불기를 둘러메고, 산길을 덮은 잡풀과 넝쿨을 향해 예불기를 휘두르다 보면, 그 옛날 삼국지의 조자룡의 헌칼 쓰듯 적들을 쓰러뜨리는 장면과 대치되면서, 무수히 쓰러진 풀들의 잔해를 밟고 전진, 또 전진. 그렇게 한 타임(구간을 말한다)이 끝난다. 오전에 두 타임이면 아주 기진 맥진. 물 맛은 한없이 달고 숨소리는 맑고 고요하다. 이윽고 점심... 점심이 끝나고, 물소리가 조근조근한 개울 옆에 넓은 호루를 펼치고, 단체로 오수를 청한다. 빠르게 여름이 가고 있다.      


        


    



싼값에, 세상 시름 녹여줄 취미를 찾다가 시작한 빵 만들기가 어언 일 년 하고도 육 개월이 지났다. 빵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 저마다 제 잘났다고 폼 재며 만들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세상이다 보니, 별것도 아닌 걸 갖고 대단스럽게 호들갑 떠는 모습도 많다. 그래도 몇몇 훌륭한 교과서가 있어 어떻게 자기만의 '시그니처 빵'이 탄생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찾다 보면 시중에 있다. 그중 하나, Ken Forkish 가 쓴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라는 베이커리 전문 서적. 이 책의 레시피를 인용하여 르뱅 발효종( 건조된 이스트를 대용할 수 있는 발효종) 을 만들어 빵을 만들어 봤는데, 독특한 풍미와 식감이 있어 제법 흉내가 그럴듯하다. 그 뒤 르뱅 발효종을 애완식물 키우듯 냉장고에서 재우고, 빵 만들 때면 발효종을 꺼내 먹이를 준후 절반을 덜어 빵 반죽에 쓰고, 절반은 다시 냉장고에서 재운다. 그런데 묘하게 이 방법이 재미가 있다. 결국 전통적인 효모 배양법인데 먹이주기, 재우기, 사용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스트가 생물로 보이기 시작하며,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는 애완동물과는 달리, 소리 없이 냉장고에서 잠자다, 활동 개시 사인과 함께 먹이가 투여되면, 허겁지겁 새로운 밀가루를 먹고 몸집을 부풀리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그리고 그 부산물은 사워도우(sour dough)라 불리는 시큼함의 원조로 변신한다. 언제까지 자급자족형  빵 만들기를 계속할지 장담은 못 하지만, 귀엽게 잡아먹는 이스트 맛이, 지겨워질 때까지 키워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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