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스리랑카 Nov 19.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벌판에서 보낸 침묵의 날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의 기약은 터무니없다지만, 또 봅니다 하며 작별을 고한다. 11월 17일 산사태 팀이 사업 종료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예산이 소진되는 대로 각각의 팀들이 보따리를 쌀 것이다. 여기저기서 수백 명의 노가다 집단인 기간제 잡부들이, 계약이 종료되는 11월은 수선스러운 계절, 잘 아껴 쓴다 해도 과연 잔존가치가 남을지 알 수 없는 고장 난 몸을  고치고 추스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범 바이오매스팀 즉, 여러 팀들이 합동으로 치러낸 2023년도 '사랑의 땔감 나누기 행사'는  9월 6일 엔진톱 팀, 유압 도끼 팀, 운반 팀 등으로 업무가 분담되면서 시작했다. 곳곳이 장작 공장으로 돌변해 가동을 시작했다. 날리는 톱밥과 나무 먼지, 피곤이 겹쳐 여기저기서 죽겠다고 곡소리를 내긴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누구 하나 다친 몸 없이 무사히 화목 작업이 마무리를 지으면서 11월 중순을 맞는다. 십시일반으로 추렴한 '싸리나무 삼겹살 구이' 파티가 주무관 묵인하에 딱 두 번 벌건 대낮, 낮술과 함께 현장에서 열렸다. 그 덕분에 여세를 몰아, 가로 30m 세로 5m 높이 1.5m의 거대한 화목 성채, 몇 동이 완성되었다. 대략 톤수로 계산해 250톤 정도(500루베) 규모이다. 시 관내 화목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를 엄선 선발(?) 해  개인 78여 집, 단체 23기관 총 도합 100여 집에 안전하게 입양되었다. 곳곳에 수북이 쌓인 톱밥이 여기가 바로 격전지였음을 알려주지만, 다시 수입장은 황량한 벌판으로 되돌아갔다.



벗들이 알다시피 이 몸은 꿈으로 다져진 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일단 이미지를 완성하면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고, 용도에 맞게 각색하며, 지도를 그려나간다. 나의 꿈 파미르에는 얼마큼 다가갔을까.. 일을 마치면 부지런히 수영장을 향해, 엔진톱으로 시달린 관절들의 피로를 어루만지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이곳저곳, 카페에 불용품으로 헐값에 나온 명품 등산용품을 수집해 쟁여 놓는다. 블랙야크 오버트라우저, 마무트 고어텍스 재킷, 오스프리 스트라우스 배낭, 피엘라벤 오일 칠한 바지 등이 그것이다. 어쩌면 이미 나는, 너무 멀리 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적당히 지쳐있기도 하다. 그 증거로,아치스 내셔널 모뉴먼트(arches national monument)에서 기간제 공원 관리원으로 근무하면서, 황야에서 보낸 침묵의 날들 기록인 에드워드 애비의  '사막의 고독'(Desert Solitaire)를 보며 잠을 청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다음날이면 그곳이 두려워 애써 지운다. 벗들의 건투를 빈다.       


     

   





출하를 앞둔 화목용 장작더미들


   십일월 초순경 바이오팀, 산림조사팀, 임도 관리팀, 산사태 팀, 도합 십수 명이 얼추, 2달 여간 합동으로 작업한 화목 더미가, 두터운 성벽처럼 길게 늘어서 햇볕을 쬐고 있는 광경을 찰깍. 어느 곳에서 온 나무들일까, 제각각 출신이 다른 나무들이 벌목공 손에 잘려, 마지막 정차 지점인 이곳,수입장에 모여 친구가 되었다. 여름내 수입장 벌판에서 때로는 비에 젖고, 또 때로는 뜨겁게 내리는 뙤약볕에 온탕 냉탕을 사이좋게 경험한 나무들은 55cm의 규격대로 잘려, 유압 도끼의 마지막 세례를 끝으로, 운반하기 좋게 비닐끈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차례차례 줄을 맞춰 대오를 이룬다. 이제 남은 일은, 어느 집 아궁이에서 온 생애를 바쳐 하늘길을 향해 오르던 젊은 날의 추억을 뒤로 한 채, 마지막 불꽃을 꽃피우는 일만 남았다. 모두 안녕 다음 생에서 봅시다~ 서로의 안부를 격려하며 떠날 것이다. 화목들은, 11월 13일 사랑의 땔감 나누기 행사를 시점으로, 11월 17일 행사 종료와 함께 입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노가다는 나의 벗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