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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Dec 24.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그해 각별했던, 당신의 근처 마켓 사용기


노가다판의 춘궁기가 시작하는 12월은, 춥고 배고픈 계절. 업계 동료들마저 왕래가 뜸해지면서, 본격적인 가사에 분주하게 참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와중, 생활 골동품처럼 수십 년을 함께한 식탁의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다릿발도 멀쩡하고, 상판도 아직은 짱짱한 편인데, 굳이 은퇴를 거론하는 주된 결점은, 서양인 기준으로 제작된 확장형 다이닝 테이블이라 키가 높고, 폭이 넓어, 쓸데없이 공간을 잡아먹는 게 흠결이다. 결국, 안주인의 강력한 은퇴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여러 브랜드별로 식탁의 견본 상품의 선을 보았다. 가성비 좋고, 견고하며, 거기다 적어도 오크(참나무)나 애쉬(물푸레나무) 급 원목을 찾다 보니 도무지 예산을 맞출 재간이 없다. 그러기를 일주일 정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거주지 당근 마켓을 넘어, 급기야, 강남의 부자 동네 당근 마켓까지 침범해,극적으로 '저를 아껴 줄 새 주인 구함' 책상 겸 식탁 매물을 발견한다.


 당근의 어원이 무엇인고?? 바로 '당신의 근처'라는 콘셉으로 시작된 마켓으로, 최대 두 지역에서의 거래가 가능한 반면, 거래 범위는 7~10km로 제한해, 동네 사람들 간의 친근한 거래를 목표로 했다 한다. 그러나 저러나, 매물을 발견하기만 했지, 그림의 떡 정도로 어찌해볼 재간이 없었다. 발품 팔지 않고 적당히 손에 넣으려 했는데 결국 실패, 드디어 이 몸이 매물 근처 당근 마켓이 작동하는 지점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인사말을 문자로 날린다.12시 01분에 시작해 12시 57분 상황종료까지, 새주인의 콩당거리는 당근 거래 현장으로 벗들을 초대한다. 



12:01분     당근 마켓에 올린 책상 거래 가능한가요? 저는 지방 거주자로 겸사겸사, 서울, 귀하의 동네에 올라와 연락드립니다. 보시는 대로 연락 주시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같은 시각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문자가 전송돼 왔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12:01분    네 가능하십니다~운반은 어떻게 하시나요? 쿵쾅거리는 격한 심장을 부여잡고, 태연한 척 답신을 날린다. 


12:07분     제가 지금 잠실 새내 역에 있습니다. 제 핸드폰으로 주소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12:07분     용달차 수배해 가져가겠습니다. 확신에 찬 답신을 날려, 우려와 염려가 전혀 없음을 상기시킨다. 약 3분쯤 뜸을 들이다가, 강남댁도 결심이 섰다는 듯 답신을 보내왔다. 


12:10분    안녕하세요, 트리지움 *** 동 *** 호입니다. 언제쯤 오시는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정리해 놓을게요. 그 순간 바로 이 몸은, 바싹 꼬랑지를 내린 채 감격하여(?) 바로 답신을 보낸다.(하마터면, 눈물 찔끔할 뻔)


12:11분    네네 감사합니다, 용달차 수배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12:16분    용달차 기다리고 있습니다.


12:31분    용달차 수배돼, 1시경 찾아뵙겠습니다.


12:56분  차 왔습니다.


12:56분  아!네네, 올라오시믄됩니다~ 같이 오시나요? 강남댁도 새 주인이 엄청 궁금했나 보다. 철자가 규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이 몸도 더 이상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듯, 틀린 철자로 다급히 전송한다. 


12:56분   냐  (네를 친다고 쳤는데 '냐'가 되었다)


12:57분   네네 (상황 종료)


이렇게 당신 근처 마켓을 농락하듯 재주를 부려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고, 밝고 경쾌한 물푸레나무의 잔잔한 문양의 테이블을 용달차에 싣고, 룰루 날라 콧노래를 불러가며, 용순아 어서 어서 달리자 하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메리크리스마스!!   







강남댁에서 입양한 의젓한 식탁



소위 말해, 원목 가구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일반적 기준은, 원목의 재질과 가공 상태 즉,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된 가구인가 아님 소목장이라 불리는 목수의 공방에서 수작업된 가구인가에 따라 구분된다. 또한 기성 가구회사들이 열대지방의 고무나무나, 참죽나무를 가공해 원목 가구를 만드는 데 비해, 공방 제품은 오크(참나무), 애쉬(물푸레나무) 등 밝고 단단하며 나무의 결이 고운 원목이 단골 재료로 꼽힌다. 특히 공방 제품들은 만드는 목수에 따라 결구 방식이나 다리의 상태가 특별해,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도 어딘가 티가 난다. 손재주 좋은 재주꾼이라 해도 식탁이나 책상, 의자 등은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적당하게 건조된 나무를, 가공하는 장비 시설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해서 이 몸 역시 매끈하게 쭉 뻣은 가구를 만들어보고자 십수 년 전 시도해 봤으나, 장비의 투자비용 없이 가구 만들기는 도둑놈 심보와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도달, 다시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 뒤 공방 제품들은 아름아름 부잣집 마님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값 또한 천정부지로 올라 공예 판에 이름깨나 알려진 목수의 가구는 부르는 게 값이라 언감생심, 꿈에서라도 사치스러운 물건이 되고 말았다. 한편 생각하면 이제서야, 목수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구나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바닥의 소목장들과의 교류가, 부담스럽게 느껴진 점 또한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로 남았다. 이 몸이 살고 있는 이곳 w 시에도, 몇몇 그런 장인 목수들이 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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