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사랑'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부부 관계에 대하여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고 있다. 아, 이젠 이혼을 소재로도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구나, 이미 헤어진 마당에 왜 저런 걸 찍을까 싶었는데 보다보니 결혼 생활과 부부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정말 많이 싸우셨다. 안방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고 집안이 조용할 때조차 언제 또 싸움이 시작될까 두려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부모님의 동태를 살피느라 나는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불안한 마음으로 볼륨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질까 늘 불안해했다.
엄마 아빠의 싸움 레퍼토리는 늘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12살 때부터 엄마에게 제발 이혼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엄마가 그렇게 슬프고 괴로우면 그냥 아빠랑 헤어지라고, 가난해도 좋으니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엄마는 경제적인 이유와 '너희들' 때문에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대답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녀들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어째서 자녀들의 마음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싸움을 계속 하는 걸까.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님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은 덕분에 경제적인 지원과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충분한 교육과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란 여자'로 보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겉으로나마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싸우는게 너무 괴롭다고,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하자 다른 집도 다 이 정도는 싸운다고 했다. 부모가 싸울 수도 있는 거라고 했다. 부모님은 '부부싸움'에 대해 별로 미안해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상처럼 싸웠고, 똑같은 주제로 똑같은 싸움을 아주 '심하게' 반복했다.
부모의 싸움은 아이에게 전쟁과 같은 공포감을 준다고 하는데, 겪어본 바로는 그 이상이다. 그냥 '지옥' 그 자체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귀를 아무리 막아도 들려오는 고함 소리, 깨지고 부서진 가구, 부모가 우릴 떠날 수도 있다는 공포... 하루 빨리 커서 이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늘 어른이 되고 싶었고, 나 자신이 힘없는 어린 아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슬픈 건 나도 모르게 부모의 싸움 패턴을 답습한다는 사실이었다. 결혼 후 첫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에게 소리치는 내 모습이 꼭 우리 엄마 아빠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 왔다. 아, 내가 보고 배운게 이런 방식 뿐이구나. 내 화법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구나. 마음은 정말 그렇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향해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을 들이댔구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틀린 것 같다. 사람은 노력으로 변하기도 한다. 바뀌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내 표현 방식과 화법을 바꾸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다다다 쏘아붙이고 싶은 욕구가 잠재워지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자리를 피했다. 열기가 식을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갖고나면, 어느새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슬며시 올라왔다.
부부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둘 다 지는 결과일 뿐이다. 부부 간의 신뢰가 쌓이고 나면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이미 '내편'인 사람과 싸워서 얻는게 뭐가 있겠는가. 부부 사이에 이성과 논리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올해로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직접 결혼 생활을 해보니, 남들도 다 이 정도는 싸운다는 부모님의 변명이 틀렸다는걸 알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남편과 결혼 초에만 좀 싸웠을 뿐, 지금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서운했던 점을 얘기하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특히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흔히들 아이가 어렸을 땐 부모의 행동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의외로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부모의 싸움을 바로 어제 일처럼, 마치 플레이 버튼을 누르듯 곧바로 머리 속에서 재생할 수 있다. 그 모든 이미지, 냄새, 분위기, 소리, 어둡고 우울했던 내 마음, 폭발하기 직전의 기분까지. 그런 것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부부싸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부싸움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관계가 더 돈독해지기도 한다. 부부싸움을 한다는 것은 그래도 애정이 남아있고, 뭔가 내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 말도 없이 냉담하게 지내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오해와 무관심이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싸움에도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분풀이나 비난을 쏟아내는 식의 싸움은 의미없는 감정 소모일 뿐, 서로의 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혼 초 남편은 나의 직설적인 화법을 힘들어했고, 나는 남편이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것에 답답해했다. 알고보니 남편은 대화가 많지 않은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시시콜콜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같이 살아보니 말로 하는 표현은 좀 부족해도 행동이 늘 자상했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다보니 자연스레 남편의 진심이 읽혀지고 이해가 되었다.
나는 아주 작은 감정도 말로 다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기쁨도 크게, 슬픔도 크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예민한 성격답게 작은 일에도 파고들며 의미부여를 하고 생각에 골몰하는 나를, 남편은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젠 남편이 오히려 완충 역할을 해준다. 늘 불안과 걱정이 많은 나에게 남편의 단순하고 초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신선한 자극과 웃음을 준다. 생각 좀 그만하고 그냥 해보라고 등 떠밀어주고, 내가 하는 일이나 공부를 적극 지원해주는 사람도 남편이다.
어렸을 때는 완벽하게 갖춰진 사람을 만나 결혼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착각이었다. 그저 미숙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멋모르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맞춰가며 살아가는 과정이 결혼인 것 같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부모의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틀었고,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보니 연민의 감정이 든다.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20대 중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를 어린 나이에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고군분투하며 우리를 키웠던 부모님의 인생을 생각해본다.
결혼도 일종의 사회생활이다. 회사처럼 일정한 규칙과 문화와 패턴을 갖고 운영되는 경제 공동체이다. 규칙을 지키고, 서로 조금씩 희생하며, 맡은 바 의무를 다 해야 가정이 돌아간다. 결혼한 사람이 미혼 때만큼의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배우자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 그만큼의 의무와 고단함을 대신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더 많이 참고 희생을 하는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다.
타인과 같이 사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그렇다. 그렇기에 생판 모르던 남이 부부라는 연을 맺고 함께 사는 일은,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다. 책임감, 경제력, 믿음, 희생, 의리, 연민, 존중, 끝없는 대화... 이 모든 것이 뒤섞인 관계가 부부관계인 것 같다.
나의 바램은 남편과 지금처럼 오손도손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릴 때는 특별하고 좋은 일이 짠 하고 생기길 꿈꿨었는데, 어른이 되고나니 그저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저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가정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노력과 희생으로 간신히 일구어 낸 평안함일 수 있다. 나는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음에, 소박하고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매일을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