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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24. 2022

워킹맘의 시간관리는 달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기

프리랜서 워킹맘에 된 이후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화두는 '시간관리'였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일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새는 곳 없이 계획대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워낙 계획 세우기 좋아하는 나는, 이미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은 후의 커리어 계획까지 모두 세워두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큰 줄기는 얼추 비슷하게 실현되었지만, 세부적인 계획들은 거의 대부분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하거나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건강 악화와 번아웃, 아이와의 유대관계 약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워킹맘으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더 확실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내게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모두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아무리 '해야할 일' 목록을 다듬고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보아도, 시간을 아무리 쥐어 짜내 보아도 내가 원했던 결과에 도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항상 예기치 못했던 사건들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집안의 경조사가 생긴다거나, 나의 면역력이 박살나거나... 등등. 


여러 시행착오 끝에야 나는, 이제껏 내가 결혼 전 온전히 나 '개인'일 때의 패턴 그대로 시간관리를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있는 '워킹맘'의 계획표는 달라야 한다. 계획하고 관리하려는 대상은 미혼 때처럼 물리적인 '시간' 아닌, 내가 가진 '에너지'여야만 했다. 


이건 꼭 워킹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마흔이 넘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내 에너지와 열정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매일 와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처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 남겨두고 과감히 정리하여, 최대한 중요한 것들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건 정말 진지하고 깊게 고민해봐야할 물음이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가치와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된다. 내 마음이 진심으로 끌리고 진정 소중한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큰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1순위: 아이 양육 및 교육, 가정의 건강과 화목, 나의 커리어 성취와 공부(독서와 운동 포함) -> 매일 매일 정해진 루틴대로, 세심하게 신경써서 하는 일 

2순위: 요리, 장보기, 설거지, 빨래와 청소 등 매일매일 필수적으로 해야할 집안일 -> 가끔 외주를 줄 수 있지만 습관처럼 매일 하는 일

3순위: SNS(핸드폰 보기), 동네 엄마들과의 친목, 친구들 만나기 -> 분기에 1-2회 정도로 줄이거나 안해도 되는 일 

4순위: 피아노 연주, 여행, 와인 마시기, TV 및 영화보기, 쇼핑 및 미용실 가기 -> 1년에 1-2회 정도로 줄이거나 안해도 되는 일



1순위와 2순위는 매일매일 하는 일에 속하지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하는 일은 1순위에 있는 일 뿐이다. 2순위는 크게 집중하지는 않지만 매일 해야할 일들이고, 3순위와 4순위는 크게 중요치 않으므로 여가 시간이 날 때만 하는 것으로 빼놓는다. 


사실 1순위 하나만 해도 하루가 숨가쁘게 흘러간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건강, 생활습관, 영어 노출, 독서 습관 정도만 잡아주는 루틴이 몸에 베도록 (나중에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실행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 동안에는 운동(싫어하지만 꼭 해야할 일을 제일 먼저!)을 마친 후 최대한 업무에 집중한다. 내 개인 공부와 독서는 아이가 자고 있는 새벽 시간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 


'가정의 건강과 화목' 카테고리는 한마디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말한다. 가족과의 여행, 외출, 아이의 체험을 위한 시간을 주 1회 정도는 꼭 내고, 남편과의 소소한 대화의 시간도 꼭 갖는다. 회사에서 워크샵을 가며 팀워크를 다지듯, 가족의 건강과 화목함을 위한 노력은 내게 너무나 중요하다. 


2순위에는 주로 집안일이 배치되어 있는데, 아이의 건강과 직결되는 요리 몇 개와 장보기 정도만 내가 직접 하고, 나머지는 적절히 외주(!)를 주기도 한다. 주로 1순위를 하고 남는 시간에 몰아서 후다닥 해치운다. 큰 집중을 요하지 않고, 퀄리티가 조금 떨어져도 삶에 큰 지장이 없으므로 과감히(?) 내려놓는다. 


3순위와 4순위는 말 그대로 안해도 되는 일이지만 본능적으로 '하고 싶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스케줄에 넣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된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다. 


대표적으로 '핸드폰 보기'가 그렇다. 스마트폰의 노예가 아닌 현대인이 과연 있을까? 평생 책과 신문을 항상 가까이 하던 우리 엄마도 폰을 한번 잡았다 하면 2-3시간이 훌쩍 간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믿지 않기로 해서, 인터넷이 되지 않는 3G폰을 하나 구입해 메인폰(업무 연락 및 아이 기관 연락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도 병행해서 쓴다. 대신 정해진 몇 시간(주로 저녁 이후로 2-3시간) 정도만 몰아서 사용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는 남편과 나 모두 핸드폰을 보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정도만 했는데도 나는 폰 중독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스마트폰만 없어졌는데도 여유 시간이 상당히 많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스마트폰에 관심없어진 것은 덤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잠이 든 이후에만 핸드폰을 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1시간 넘게 각자 폰만 들여다 보기 바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마저도 안하게 되었다. 일단 핸드폰하는 시간이 제약이 되다보니 연속성이 떨어져 재미가 없고,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꼭 필요한 톡 답장과 메일 확인, 아이 교육관련 정보 확인 및 온라인 장보기를 제외하면 거의 볼 일이 없다. 업무상 필요한 정보 써칭은 어차피 노트북으로만 한다. 


습관적으로 폰을 보지 않으니 아이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더 부드러워졌다. 폰이 없어 심심하고 허전해지자 어쩔 수 없이(!) 책을 더 많이 읽었고, 남편은 그림을 더 많이 그렸다.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던 사람) 아이는 그런 부모를 보며 자신도 그림을 끄적이고, 괜히 책을 펼쳐본다. 


백마디 잔소리가 필요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은연 중에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 내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폰을 적당히 보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아이에게 책 좀 보라고 할 수 없고, 내가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3순위 중 동네 엄마들과의 친목과 친구 만나기 항목의 경우, 스마트폰처럼 주의력이 낭비되고 해롭다고 생각되서 3순위에 넣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일단 발을 들이면 정기적인 만남과 친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번번히 모임을 거절하기가 민망해지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거나 오해를 사는게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저 엄마(또는 친구)는 원래 바쁘고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고수하기로 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대한 포기가 좀더 수월했다. 나도 동기들과 친해지고 같이 스터디도 자주 하고 싶었지만, 내 상황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어느 선 이상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동기들에겐 '밥 한끼 먹는' 정도의 가벼운 여유 시간이, 나에겐 왕복 4시간의 통학 시간과 나 대신 아이를 봐주는 가족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한 시간이었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나면 엄마들에겐 커피타임이 오지만, 나에겐 출근 시간이었다. 전업주부와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중간 쯤에 어설프게 걸쳐진 프리랜서이기에, 친목 부분은 그냥 손을 놓았다. 거기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다가올 사람은 다가오고 친해질 사람은 다 친해지더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4순위는 주로 결혼 전 내가 하던 취미들이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20대~30대에 실컷 해서 예전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아서 뒤로 밀려나 있을 뿐이다. 아이가 다 크고난 후 남편과 오손도손 해외여행을 다니는 로망을 품고는 있지만, 과연......?


3순위와 4순위에 있는 일들을 거의 못하다 보니 재미없게 살 것 같지만 의외로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활기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 비슷한 루틴이 주는 안정감과, 습관의 힘으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하루 하루 알차게 굴러가는 느낌이 참 좋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운 365일을 선물받는다. 그 365개의 하루 하루를 채워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돈보다 시간이 소중한 나에게는, 매년 새롭게 선물받는 365일의 시간이 참 설렌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설레고 기분좋은 순간이다. 어떤 한 해를 보냈든, 신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새해를 선물하며 새롭게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품을 기회를 준다. 


우리 모두 더 많이 사랑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냈으면 좋겠다. 하루 하루를 성공시키며, 더 많이 집중하는 2023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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