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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 Jun 28. 2024

어색한 자기소개

Uncomfortable introduction


8월 어느 아침, 쌍무지개가 떴다. 다 잘 될 것이다.


3편, 어색한 자기소개


그렇게 나는 자유 계약 선수로 시장에 나왔다. 미디어에선 차갑게 식어버린 시장과 연일 시장에 대형 자유계약선수 (a.k.a. 빅테크에서 레이오프 된 사람들)가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정해 둔 네 가지 원칙에 맞는 회사들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운이 좋게 몇몇 리쿠르터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이야기 중에 항상 리쿠르터가 물어본다. 지금 너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며. 그럼 난 백수와 구직자 그 사이에 있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리쿠르터는 그렇게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한다.





10월 중순, 내가 속한 스터디 그룹에서 지난여름 계획했던 뉴욕 투어가 있었다. 40여 명의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의 다른 도시들, 아일랜드, 독일 등에서 모였다. 온라인에서 자주 소통했던 분들도 있고 하지만 실제로 뵌 건 처음인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첫날 첫 행사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는 미국 IT회사 OOO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있는 찬이라고 소개했을 텐데, 마땅히 나를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심 끝에, 생각난 어색한 소개.


저는 BBC에요.
브루클린 백수 찬이라고 해요.



바로 이어서, 전에는 "실리콘벨리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했다"라고 설명했고 조금 더 궁금해하는 분들에게는 "B2B SaaS 회사에서 10년 이상 UX/UI디자인을 했어요"라고 이어갔다. 나라는 사람을 수식할 수 있는 게 전 직장과 역할이라니...





오늘자 뉴욕타임스 신문에 은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아직 내게 은퇴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신문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이 사이 기간에 느끼는 감정과 사뭇 닿아있었다.


은퇴는 많은 응답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게 만든다. 그들은 더 이상 직업이나 경력으로 자신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되자,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커뮤니티와 목적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라고 대답했다.


공허하다는 말이 맞을 수 있겠다. 나를 이뤘던 무언가가 혹은 나를 설명하는 무언가 사라진 느낌이었으며,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또한, 아이와  아내가 등교/출근하고 난 뒤의 혼자 있는 시간이 처음에는 꽤나 낯설었다.




채용 시장은 팬데믹 전과는 다르게 많이 경색되어 있었다.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다음 커리어를 선택하려고 했던 오만한 생각에 시장은 거절과 무응답으로 반응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조해졌다. "일단 다 되고 나서 결정하라"라는 친구의 조언에 매니저 포지션과 IC포지션과 상관없이,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일단 지원을 했다. 그리고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머물렀던 제품인 Trello를 통해 정리했다.


지난날, 성적표. 여기에 기록하지 않은 지원도 사실 많이 있다.



사실, 대외적으로는 일을 쉬고 있는 백수였지만, 그 사이 타입 캐스트의 모바일 버전을 디자인하고 아나플래시의 글로벌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일을 프리랜서로 했고, 달리기와 근력 운동을 꾸준히 했으며, 그동안 읽고 싶던 책들도 열심히 읽었다. 내 나름, 이 사이 시간을 꽉 채워서 보냈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아빠가 아이의 눈에 낯설게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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