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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Dec 26. 2023

금사빠의 짝사랑 병이 도졌다

질척거리는 미련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플사. 또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이건 병이다.

11월 둘째 주 즈음 지난 사랑이 끝났다. 사랑인지 모를 정도로 휙 왔다 휙 사라졌지만. 사랑이라 표현한다면 사랑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애정하는 마음.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이해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사랑을 이루게 되니까.


아무튼 지난 사랑에서 헤어 나오는데 큰 다짐이 필요했다. 바보같이 유튜브로 회피형 남자를 검색해 보며 평생 공감하지 못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유튜브 영상을 20개 넘게 보고 꾸역꾸역 애써 삼키며 소화하려 한 결과,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나마 있던 조그마한 정나미마저 전부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3주간의 맘고생을 하고,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다. 11월 19일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전에 만났던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얼른 씻어내고 싶었고, 머리를 식히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떠한 기대도 없던, 말 그대로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 그가 말했다.


“자존감이 되게 높나 보네 “

“자존감이 되게 높아 보이네”


뭐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저런 문장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가 어떤 의미로, 어떤 느낌을 받고 저 생각을 한 건지 모르지만, 왜인지 그가 내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 알게 된 상대에게 저런 말을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너 예쁘다. 너 귀여워. 등의 외적 요소의 칭찬이 아닌. 나의 내면을 칭찬해 주었다는 것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더 사적으로 만나다 보니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외적으로는 내 이상형에 너무나도 부합했기에 이런 이상형을 내가 살아가면서 다시는 만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더 애걸복걸 매달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는 꽤나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해주는 사람이라 그런 점이 꽤나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커져갔다.


질척거리는 거 정말 싫은데 말이야.

한 달 사이에 벌써 고백을 두 번 했고, 두 번 차였다. 그는 아직은 솔로가 좋다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웃기지. 책임감은 갖고 싶지 않은데, 좋은 건 하고 싶다는 것이. 알면서도 끌려다니고 받아주는 나다.


솔직히 나도 그가 나에 대해 진지해진다면, 연애를 어떻게 시작하고 이어나갈지 자신이 없긴 했다. 그에게 끌리는 건 사실이고, 연애를 하면 투닥투닥 다투기도 할 테지만 재밌게 서로 조율해 가며 예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어찌 보면 내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5년 사귄 전 남자 친구와 비슷한 성격도 많이 갖고 있었고, 뭔가 이 사람이라면 진득하니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걸리는 건, (아무래도 내가 결혼 적령기이다 보니) 라이프 스타일, 생활 패턴, 커리어, 경제력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차가 있고, 상대는 차가 없기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지 않은 지방에서는 내가 그를 항상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어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물론 서로 정말 좋아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혼자 짝사랑하고 있는 관계인데. 그가 이 만큼 나의 감정, 시간, 에너지 소모를 deserve 하는 사람일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더라.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를 몰랐던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카톡도, 전화도, 인스타그램도 모두 차단하고 싶었다.

보면 자꾸 연락하고 싶고, 떠오르니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있기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리해 봤다. 나는 그에게 왜 자꾸 눈길이 갈까.

1. 피지컬이 내 이상형이다.

2. 솔직 담백한 성격이 좋다.

3. 앞으로 외적으로 이 정도 되는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다.

4. 그를 차단한다 해서 다른 남자가 갑자기 뾰로롱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이 정도 이유가 있어서 그와 피치 못하게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답답한 마음 반, 좋은 마음 반이다. 괴로움이 커지면 내가 먼저 이 짝사랑을 접을 수 있겠지.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그에게 카톡 답장이 없으면 카톡방을 들락날락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목소리 듣어 전화를 걸고 (그러나 그는 잤다며 받지 않고), 연락할 때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한데 그는 나에 대한 물음표가 없어서 조금씩 마음에 구멍이 커진다.


내 솔직한 속마음은 그에게 고백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너랑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다고. 이런 말을 기대하고 꿈꾸는 건 내 욕심이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고. 그걸 알기에 여기에 글이라도 끄적이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꽤나 금사빠라 한 두 달 후면 새로운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만, 그로 인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정신줄 잘 잡고 있자. 어차피 연애하기에는 서로 업무 스케줄도 너무 안 맞고, 나 자신을 챙기기에도 바쁜 현실이다. 다른 사람의 태도나 감정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자신을 충분히 챙겨주고 아껴주고 우선시 여기며 매일을 보내자.


그의 연락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는데 시간을 쏟지 말고, 나의 일상에 충분히 집중하고 하루를 가꾸자.


세상은 넓고, 할 건 많고, 사랑은 넘쳐나고, 시간은 유한하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나의 사랑을 고마워하지 않는 그대에게 모든 걸 투자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잖아.


그러니까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미련이 남을 것 같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쏟아내고, 내가 가고 싶은 길과 꿈에 집중하자. 내가 잘 살고, 좋은 사람이 되면 그런 인연이 찾아오겠지. 부단히 노력하며 살자.


부디 내 짝사랑이 금세 휘발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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