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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21. 2024

마음이 일렁이는 모든 순간들

발리에서 건네준 위로

마음이 일렁인다.


너무도 쉽사리 일렁이는 마음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서 혼란스럽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나이지만 때로는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이게 되어 순간이 주는 행복의 잔상을 붙잡으며 떨춰낼 수가 없다. 항상 처음은 아무렇지 않게 시작이 된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이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가 없다. 큰 기대가 되지도 않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감정을 가진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생기고 정이 드는 건가 보다.


이렇게나 일렁이는 마음을 안고 난 또 한 번 내 마음속에서 지워내야 했다.

처음 알게 되어 저녁을 함께 먹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팠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싶었는데 어쩌다 조인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생선 요리를 먹었고, 연못에는 오리 가족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잔잔했던 밤이었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뭔가 출출해서 스무디 볼을 먹으러 아사이 퀸으로 향했다. 무려 5점 만점의 별점을 가진 카페였다. 난 정말 스무디볼이 좋더라. 그래서 발리를 좋아하나 봐. 내가 애정을 담는 것들이 많아서.


한참을 걸어서 아사이볼을 먹으러 갔다. 배가 고파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같은 속도를 맞춰오는 것이 신기했다. 최근 내 걸음이 빠르다고 하는 사람이 많던데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는 게 유쾌했다. 다음 날 티티바투라는 수영장을 가고 싶었지만, 다른 수영장을 추천받아 함께 가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 수영장에 함께 가는 것이 어색할까 봐 많이 걱정이 되었다. 한없이 벽 없는 사람 같아도 내적으로는 낯을 가리는 사람이기에 겉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는 꿈틀 거리는 부끄러움이 있긴 하다. 수영장에서 스무디볼과 샐러드를 먹으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꽤나 놀라기도 했고 재밌었던 이야기도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상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차분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기도 하고, 멋있게 느껴지도 했다. 삶에 굴곡이 많은 나이기에 때로는 부정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노력하는데도 상반되는 결과에 원망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한때는 아팠을 상처를 털어놓는 그를 보며 왜인지 위로를 받았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영을 마치고 명상을 하러 갔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누워서 어둠 속에서 조그마한 빛과 자연에 둘러싸인 채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결혼이란 무엇일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맞을까. 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을 그토록 하고 싶었던 나는 어떤 감정이었던 것일까. 전남자친구와 아침을 맞이하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며 매 순간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 정말 밑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어느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더라도 올라올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함께 한다면 하루하루 더 나은 내가 되고,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 안정감이 깊게 들었다. 너무나도 일상 속에 우리의 모습을 녹이고 싶을 정도로 내 인생의 전부였던 친구였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그를 떠나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때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여겼던 마음가짐을 아직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비혼이었던 나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그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 분명 그였기에 결혼에 결심이 선 것일 텐데 그럼에도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마치 당장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조급해하고 있다. 그게 요즘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최대 관심사이고, 어떻게든 기회를 얻고자 다방면에서 노력을 함에 틀림이 없다.


아무튼 여행지에서 우연하게 알게 된 그와 결혼관과 연애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고 재밌던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 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마는, 적어도 나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식사를 마쳤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머뭇거렸다. 밥을 먹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 몹시 아쉬웠다. 사실 특별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지만 평온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이후에도 술 한 모금 들이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건,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를 바라보며 그저 멍 때리는 것이 이렇게나 평온한 일일까. 마음이 다시 한번 일렁거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걸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삶이란 이렇게 저렇게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걸 담담하게 말해주어서 인지 가슴 깊은 곳에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자꾸 일렁여 가슴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쉬울까.



떠나면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된다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져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마시고 노래를 들었다.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노래가 마음에 하나 둘 스며들었다. 난 왜 이토록 위로받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웃음이 나왔던 걸까.



그럼에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용기는 없었다. 난 이토록 용기가 없는 사람인가 보다.

그래도 수없이 내뱉고 싶었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당신을 더 알아가보고 싶다고. 우연히 여행지에서 알게 된 당신과 사흘간 함께 한 시간은 왜 그토록 내 마음속에 내려앉고 있는지. 당신을 떠나보내고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으려 수없이 노력했지만 고요해지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나 봐.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나의 진심을 어딘가에는 남겨놓고 싶기에 적어놔.


뭐가 이렇게 힘들까. 누군가를 만나는 건. 재고 따져야 할 것이 왜 이렇게 많을까.

여전히 요동치는 마음이지만 꾹꾹 눌러 담아 활자로 풀어내니 마음속 답답함이 사그라든다.


그럼에도 당신과의 시간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

담담하게 나의 상처를 들어주었는데, 마치 빗물로 상처를 씻어내듯 응어리진 마음도 씻겨 내려가더라.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저 고마워서.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마음 깊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당신이라

그저 고마움과 애틋함 뿐이야.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용기는 없어서 글자 뒤에 숨어서라도 나의 마음을 전달해.


난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쉽게 일렁이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겠지

가진 마음의 전부를 쏟아내며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울어버리겠지

그럼에도 계속해서 일렁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게 삶인 건가 봐

앞으로도 요동치는 속에서 고요를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갈게


고마운 당신에게

언젠가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일이 있을까



당신이 떠난 발리의 노을은 오늘도 여전히 예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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