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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래원 Feb 16. 2024

요나가 고래 뱃속을 나오기까지

박완서 읽기 1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박완서 읽기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내가 읽은 박완서는 에세이집 두 권, 단편 서너 개, 장편 한 권 정도였다. 책에 실린 사진 속  박완서는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을 가진 무던하고 말 없을 것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작품을 통해 엿보게 된 작가 박완서의 성품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내면에 숨겨진 부조리와 비의, 사랑을 간파하고 그것들을 핍진한 서사 속에 살려 내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마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살아 숨 쉬는 문체와 능수능란한 어휘구사가 더해져, 오묘한 말의 맛과 풍성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재능까지 겸비하고 있다. 

요즘 들어 예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으면 공감되는 부분이 훨씬 많음을 느끼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며 박완서가 다룬 여성 인물들의 인생이 나의 삶과 멀지 않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고 혼란과 상실의 시대를 살았다. 그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증언하고 고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박완서의 글쓰기와 세상을 보는 눈을 닮고 싶었다. 부족한 나의 문장을, 상상력을, 감각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공부하듯 그녀의 글들을 차근차근 읽기로 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써서 매거진으로 묶어 볼 생각이다. 이미 다수의 독자들은 박완서를 아시겠지만 내 글을 계기로 다시 그녀의 단편들을 찾아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젖먹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에 올라와 학교를 다니면서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가는 성장기를 지낸다. 전쟁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자수 성가한 책임감 강한 남편과의  결혼으로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놓은 마흔 살에 이르러 글을 쓰기 시작해 처녀작 <<나목>>으로 등단을 한다. 그러나 평탄하던 '나'의 삶은 석 달 간격으로 남편과  장성한 아들을 잃는 사건으로 고통과 혼란의 가시밭 길이 되었다. 그 후 긴 시간 동안 '나'는 아들이 부재하는 집에 부재하고 싶어서 설렘도 목적도 없는 해외여행을 이리저리 다니며 방황의 세월을 보낸다. 소설은 마지막에 쓴 여행 후에 달라진 '나'를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박완서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 속의 '나'는 작가 자신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파격적인 사랑을 주고 품격과 학문의 맛을 느끼게 해 준 할아버지와, 명문 학교에 들어가서 현대 교육을 받은 여성이 되도록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한 어머니는 소설 속 중요 인물로 그려진다.  이들 두 사람은 박완서라는 한 인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녀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증언의 욕구 때문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녀에게 수모를 주었던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악인으로 등장시켜 징벌하겠다는 복수심이 소설을 쓰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깊은 사랑이 글을 쓰게도 했다. 죽어간 피붙이의 생명이 고유한 우주였음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세상에 화나거나 불만이 있었을 때 내게 해결할 힘은 없고, 글로라도 써서 누군가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뿐 아니라 인간사의 비굴함, 허위를 꼬집어 내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박완서의 소설과 에세이가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들을 더 많이 알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후회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글을 쓰면서 그들을 자세히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나'인 박완서는 자신의 가족이 전쟁으로 피붙이를 잃고 극심한 가난을 겪었지만 그것은 평균치의 화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희망으로 가득하던 시절 이십 대 중반의 장성한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는 참척을 당한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가 분노로 몸부림을 치며 신을 원망했고 신과 정면대결을 하며 차라리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신은 침묵했고 그녀는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었다. 

 

 아들을 잃고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는 조문의 말이 '저 여자는 뭘 잘못했기에 그 외아들 하나 지니지 못했나' 하는 비아냥으로 들렸다.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의 아픔은 당연하지만 내 것을 지키지 못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고백은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때가 생각난다. 참척의 경험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잘 회복되실 것이라 확신하며 간호했는데 어이없이 돌아가시고 말았을 때 내가 느낌 감정은 슬픔을 넘어 패배감으로 인한 분노와 설명하기 힘든 수치스러움이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넉 달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자식 노릇을 어찌해서 이런 일을 겪냐는 주변의 비난이 들리는 것 같아 알리 것조차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 대목을 울면서 읽었다.


 소설 뒷부분에 나오는 이태리 여행 역시 설렘도 목적도 없이 떠났다. 여러 도시를 일행과 강행군하는 내내 박완서는 독감으로 인한 고열과 오한이 심해 타지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소렌토로 가는 해안 도로에서 파바로티의 음악을 듣고 황홀경은 목놓아 울고 싶은 격정으로 뒤바뀐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외여행을 와서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에 젖어 있는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 같고 아들이 살았던 과거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착란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나 싶었다. 진실이기에 가장 슬프고 최고로 아름다울 것이다.  

 

 일행이 탄 기차가 큰 배에 통째로 실려 시칠리로 향할 때 그녀는 구약성경에서 고래 뱃속에 갇혔던 요나를 상상한다.   


 만약 지금 기차가 배 안에 있는 거라면 배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를 상상했다. 사람을 삼킨 게 큰 물고기였다면 기차를 삼킨 건 고래 뱃속일 것이다. 고래 뱃속의 환상은 기차가 다음날 아침 시칠리 섬 시라쿠사에 도착할 때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됐다. 그 모든 새로운 풍경이 고래 뱃속의 일로만 여겨졌다. 시칠리 섬에서 삼 박이나 하는 동안도 열은 내리지 않아 혼미한 상태에서 환상도 계속됐다. 
(중략)
항구에 정박해 있는 빌딩만한 배를 보고도 내 혼미한 의식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이 고래 뱃속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아픈 몸을 끌고 나머지 일정을 간신히 마치고 그녀가 마침내 인천공항에 발을 디디고 느끼는 감정을 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본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내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 찾는 아래층에 안전하게 발을 디디자 비로소 고래 뱃속을 빠져나왔구나, 하는 현실감이 왔다. 이번 여행길을 통틀어 방금 내린 비행기까지가 다 고래 뱃속의 일로 여겨졌다. 어쩌면 지난 이십 년 동안의 설렘도 목적도 없는 여행이 다 고래 뱃속 안에서의 헤맴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내 땅에 첫발을 디딘 착지감은 눈 감고도 느낄 수 있는 첫사랑과의 터치처럼 에로틱하기조차 했다. 죽어서도 당신에게 스미고 싶어. 그런 황홀경이었다. 
재작년에 그러고 나서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가장 평화로운 한 해였다. 신종플룬가 뭔가 하는 독감이 유행할 때도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해마다 맞던 독감 예방 주사도 맞지 않았다. 유럽에서 그 정도로 독하게 감기를 앓았으니 적어도 몇 년은 갈 면역이 생겼으려니 믿고 있다. 남이야 믿거나 말거나, 설렘도 볼일도 없는 여행은 다신 안 할 것이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는 보통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터널도 아니고 이십 년 세월을 고래 뱃속에서 헤맨 것 같았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아픔으로 그녀가 탈출구 없는 고통의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 짐작케 해 주는 표현이다. 고래 뱃속을 헤맨 것 같은 여행에서 돌아와 집이 있는 한국땅에 정주할 힘을 얻게 된 것은 이제 비로소 가슴에 묻었던 아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평안을  요나는 제 힘으로 고래 뱃속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통로시라는 요나의 기도가 있은 후, 하나님은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내게 했다. 신이 고난을 주었다고 믿고 원망하며 대들었던 박완서가 자기를 요나에 비유한 것은 자신도 구원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구원받은 자는 평안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박완서의 신앙심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박완서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라는 제목이 말하듯 저무는 나이에 자신이 앞에 놓였던 일들을 짚어 보는 글이었다. 소설을 쓴 후에도 그녀의 삶은 계속되었지만 인생의 지난했던 한 국면이 정리되자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 자전적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단편 안에 긴 인생을 풀어낸 솜씨에 경탄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을 적절히 취사선택해서 문학성 넘치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짧은 글 한 편으로 감히 박완서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자서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달라졌다. 좋은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하고 내가 살아온 날들을 이 정도 분량으로 써 보고 싶다. 박완서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이 준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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