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버릇처럼 침대에 앉아 유투브를 열었다. 구독하고 있는 청주의 진돗개 전문가 채널에 들어갔다. 때마침 두 달 된 강아지들을 소개 하고 있었다. 강아지들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네눈박이 암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싸움에서 수놈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걸 보니 기질이 강하고 튼튼한가 보다. 주둥이는 두툼하고 앞으로 살짝 숙은 조그만 삼각형 귀가 야물딱졌다. 반듯이 선 꼬리가 당당했다. 그래, 진돗개라면 이런 녀석이지, 강아지를 골라 놓고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했다.
팔로우하는 용인 유기견 센터의 입양 공고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이 센터는 입양률이 전국에서 제일 높다는데도 언제나 입양 대기 중인 아이들이 넘쳐난다. 닥스훈트 닮은 체형에 까만 주둥이가 매력적인 믹스견 ‘노을’이가 눈에 들어왔다. 덩치 큰 녀석 중에도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녀석들이 있었다. 듬직하고 의젓한 큰 개들은 소형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러나 집에 이미 두 마리가 있으니 지금은 더 데려올 형편이 아니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살게 될 때를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느 날 남편은 내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무슨 개 욕심이 그렇게 많아? 하였다. 그 말에 나는, 당신은 음악이 위로가 된다면서요? 나는 개가 행복을 줘요. 핸드백이나 보석에 빠진 거 보다는 낫지 않나? 하고 대거리를 했다. 말은 그랬지만 엄연히 생명을 들이는 일이고 보니 남편의 걱정 어린 타박이 공연한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나는 개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는 걸까? 자문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처음 키웠던 개가 떠올랐다.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아버지는 암컷 셰퍼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개를 좋아했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개와 자랐다. 자신의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강아지는 흔히 알려진 독일산 셰퍼드와 달리 온몸의 모색이 검고 네 발만 갈색인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아지가 잡티 없는 검은 털에 흑진주 같은 눈동자가 이슬처럼 맑다고 오로(烏露)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클수록 점잖아지고 주인에게 충실했던 오로는 독일 셰퍼드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어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나는 걸음마를 할 때부터 오로를 졸졸 따라다녔다. 덩치는 컸어도 고작 한 살 남짓, 강아지만 면했는데도 귀찮게 구는 아기에게 맞대응을 하거나 이 한 번 드러낸 적이 없었다. 네 살이 될 때까지 동생이 없던 내게 오로는 유일한 친구이자 자매가 되어주었다.
내가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오로의 눈빛이 또렷하고 강렬하다고 했지만 나는 철장 안에 갇혀 나를 뚫어지게 봐라보는 오로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 몰래 개 우리 문을 열어 주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개는 미친 듯이 내달렸고, 뒤를 따라 나도 내달렸다. 달리던 오로는 갑자기 획 돌아서 얼싸안듯 나를 덮쳤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뒹굴었다. 오로는 내 얼굴을 핥고 비비며 낑낑거리고 나는 얼굴이 개침으로 범벅돼도 더럽긴커녕 즐겁기만 했다.
호기심 많은 오로는 자잘한 말썽을 피웠다. 뒤처리는 내 몫이었다. 개가 파 놓은 구멍을 흙으로 덮고 여기 저기 물어다 놓은 마당 살림을 제자리에 감쪽같이 가져다 놓았다. 오로 일이라면 귀찮을 것이 없었다.
내 맘대로 개를 풀어 주다가 어느 날 결국 사달이 났다. 그날 대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모르고 개장 문을 열어준 탓이었다. 오로는 집앞 골목으로 나갔다가 지나가던 가겟집 할머니의 다리를 물었다. 고소당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병원 치료를 해 드리고 용서를 구하니 할머니는 마음을 풀었다.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아버지는 나를 심하게 나무라지 않았다.
남은 음식을 모아 개를 먹이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날, 된장국에 밥을 말아 오로에게 주었다. 개입에 따뜻한 밥이 들어가면 내속이 다 든든하고 훗훗해졌다.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느라 큰 소리를 낼 때만큼 두렵고 외로운 순간이 없었다. 부모를 피해 개집에 들어가 오로를 한동안 부둥켜안곤 했다. 답답하고 불편할 법도 한데 개는 꼼짝 않고 어린 주인의 품에 안겨 체취를 맡으며 주인의 기분을 감지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멀리 사는 친구가 놀러 온 날이었다. 그 애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삐쳐서 골을 부리다가 일찍 집에 가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얄미운 걸 꾹꾹 참고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집에 돌아와 오로에게 목줄을 매어 둘이 마당을 빙빙 돌아 다녔다. 혼잣말로 그 애에게 말했다. 네까짓 것, 필요 없다, 다신 너하고 안 논다, 나는 오로가 있다.
오로는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일화를 남겼다. 김장 날 이모가 도우러 왔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 이모는 금반지를 잃어버렸다며 울상이 되었다. 모두 나서 온 집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체념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이모에게 오로가 슬며시 다가왔다. 입에 뭔가 물고 있었다. 반지였다. 평소 개를 싫어하던 이모는 이 사건 이후로 오로 예찬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오로가 열 살이 넘자 시골 큰집으로 보냈다. 오로는 그곳에서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생을 마쳤다. 어쩌다 한 번씩 보러 가면 늙은 개는 뒷다리를 절룩이며 달려와 옛날같이 나를 반겼다.
오로와 함께 자라면서 나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배웠다. 오로와 함께 한 시간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는 말의 온전한 의미 그대로 ‘반려’의 관계였던 것이다.
오로와의 인연 덕에 나를 개를 떠나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다. 개를 키우다 보면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게 되는데 그 상처는 결국 새 인연이 채워 줘야 아물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는 어찌된 일인지 줄곧 수놈만 키우고 있다. 지금 옆에 있는 괄괄한 두 녀석들은 건강한지만 어느새 노령에 이르렀다. 얘들과 끝까지 재미나게 잘 살아 볼 테다. 그 다음은 글쎄, 장담은 못하지만 내 기운이 그때도 괜찮다면 오로같이 참하고 예쁘장한 여자애와 함께 살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