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Apr 28. 2022

섹스로봇 이야기

아주 오랜만에 뻘글을 작성할 기회가 왔고 나는 놓치지 않겠다. 


마침 이런저런 기력과 시간이 있으므로. 트위터에서 자와자와한 이야기를 굳이 브런치에 쓰는 이유는 또 내가 어느쪽 의견도 아닌데다가 괜히 오독의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이다. 140자로 분절된 글은 아무튼 누가 허리만 베어다가 내걸기 좋고, 그리고 뭣보다 나는 주제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SF 작가가 아니고, SF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SF라는 장르에 대해서 잘 모르고, 나는 나의 이야기에 어떤 과학적 원리나 설명을 부여하는데에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SF작가는 아닐 것이다. 배경을 어쩌다 우주로 옮기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름. 


아무튼 이것은 엄청 일반론이다. 그냥 글 쓰는 사람이 흔히 할 수 있는 그런 일반론. 


논쟁의 발단은 섹스로봇 이야기가 SF공모전에서 배제 되고 있으며, 여성 작가들이 섹스로봇 이야기를 싫어해서, 편향된 취향이 시장에 반영되어 독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뭐 대략 그런 거였다. 그래서 이 섹스로봇이라는 소재가 어떠한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과거 문창과 입시를 할 때 왕따 이야기 자살 이야기 왕따 당해서 자살한 이야기 교수들이 개 지겨워하니까 절대 쓰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적 있다. 입시생이 쓰는 왕따 자살 학교폭력 이야기는 아마 대체로 비슷비슷할테고, 섹스 로봇 이야기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그만 좀 해라, 라는 말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별 소설이 갖는 가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괴로운 경험이 가치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누군가 쓰고 싶은 섹스로봇 이야기가 쓰기도 전에 쓰레기라고 낙인이 찍힌 것도 아니다. 


"흔한 섹스로봇 소재 식상…문제에 대한 답 이상의 질문 던져야” (mt.co.kr)


2017년 공모전에 이 심사평이 발표되고 나서 섹스로봇이야기는 정작 본 적이 없고,(노라 제외) 섹스로봇을 그래서 써도 되냐 안되냐 하는 이야기만 몇 년째 절기마다 반복되는 것을 보는데, 하여튼 섹스로봇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는 원래 공식적으로 발언 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여성작가들이 담합해서 섹스로봇 이야기에 밴을 때려서 출간을 막는 것도 아니다.  심사위원 구성 자체가... 여성 100%인 경우가 없을텐데? 


쓰고 싶으면 써야지. 섹스로봇이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무슨 섹스로봇인데 왜 만들어졌는데 그걸로 뭘 할건데.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겠는데, 하여튼 섹스로봇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더라도 2022년에 참신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기는 하다. 딴 사람들이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포르노와 SF양쪽에서 만들어대는 바람에 단물이 많이 빠진 것도 같다. 로봇과 인간의 사랑은 뭐 ... 식상하다. 이 로봇이 어떤 기능이고 로봇이 뭘 하는지에 대한 가벼운 SF적 이야기는 성인 만화에서도 한번씩은 시도를 한 것 같다. 또 이 설명이 구구절절 들어가면 아무래도 구차해진다. 


아무튼 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얻기는 어렵겠으나 반드시 섹스로봇SF를 써서 SF공모전에서 상을 타야만 섹스로봇소설의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인이 섹스로봇 SF로 SF공모전에서 인정을 받겠다! 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이런 목표는 섹스로봇 SF자리에 다른 무엇이 들어가더라도 난이도가 높아진다. 인생을 쉽게 살면 좋다.) 아무튼 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 조아라든 브릿지든 어디든 올리고, 평가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그렇구나 하면 된다. 아무튼 자신에게 의미있는 이야기이고 그것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만들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쓰면 된다. 자기가 진짜 하고 싶으면 남이 빻았대든 바이트 낭비라고 하든 하여튼 쓰면 된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안 쓰는 것 보다는 쓰고 실패하는 게 낫다.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해야 성불할 수 있다. 나도 그래서 이상한 거 많이 썼음. 


다만 상 받는 소설중에 섹스로봇SF가 하나는 있는게 당연하지 않느냐? 라는 말은 어떻게 해도 이상하다. 내가 얼룩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올해 인기작 중에 얼룩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이 하나도 없는 것은 뭔가 기형적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냥 망상이 심한 사람이 된다. 그게 굳이 섹스로봇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뭐든지 간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주로 잘못된 현실인식에서 기인한 판단일 때가 많다. 내가 올해의 음식으로 애호박을 선정한다고 해서 남들이 그것을 다 받아들여주진 않을 것이다. 내가 애호박을 좋아하는 것과 요식업계의 입장은 당연히 다르다. 요식업계가 무슨 음모를 갖고 내가 사랑하는 애호박을 핍박할 리는 없다. 보통은... 전문가들은 그렇게 소소한 일까지 관심이 없다. 


아 물론, 섹스로봇 소재를 쓴 것 만으로도 업계인의 비난을 받을까봐 걱정될 수는 있겠다. 근데 그건... 소재가 섹스로봇이라서가 아니라 소재를 다루면서 자신의 성욕을 잘 갈무리하지 못해서 아이쿠 소설 보다가 남의 이런 면까지 보고 싶지 않은데! 라는 면을 드러냈거나, 다루는 방식에서 '어 님 좀 사고 방식에 문제가 있나요?'같은... 측면이 드러났을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섹스로봇 탓은 아니다. 원래 성적인 이야기를 다루다보면 너무나 많은 욕망이 비죽비죽 튀어나오는데, 샤인 머스캣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면 적당히 감춰졌을 게 섹스로봇 소재를 다루면서 너무 많이 보여졌을 수 있다.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쓰다보니까 좀,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남이 나를 오해하고 오해하지 않고는 또 내 소관이 아니라서, 그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섹스로봇 소재라는 것 만으로 인간관계가 박살이 나거나 사회적 평판을 크게 잃거나 업계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그런 건 너무 걱정이 과하다는 것이다. 그냥 써서 어디 온라인에 올린다고 치면 조회수가 뭐 80이나 나올까. 


대한민국인구 5천만 중에 80명 정도가 당신이 쓴 섹스로봇 소설을 읽는다고 치자. 그 중에 70명은 '그렇구나.'하고 창을 닫고 5명 정도가 에 개별로네 ㅎ 하고 생각을 할 것이다. 1-2명이 잘 읽었습니다. 라고 덧글을 달거나 그냥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된다. 그리고 또 쓰고 싶은 걸 쓰면 된다. 그리고 굳이 섹스로봇이 아니더라도 원래 글쓰기는 시비가 걸릴 위험성이나 지나가는 남이 침을 퉤뱉으면서 님 소설 개쓰레기임 ㅎ 할 가능성이 있는 작업이다.  


암튼 강조하고 싶은 건 섹스로봇 소재로 소설을 쓰는것과 그것으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나 공모전 수상, 혹은 주위의 평판 같은 것은 다 엄청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을 꽉 묶인 한 세트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엄청 복잡해지지, 당연히. 


결론. 


1. 남이 비웃거나 말거나 하고 싶으면 해라.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 

2. 그것으로 특정한 결과가 당연하게 따라오지는 않는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끗.  


PS. 나도 이거 아무도 내 의견 안 물어봤는데 썼다. 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는 건 이런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단문학의 자존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