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Feb 15. 2024

옷과 호두

과자를 먹다가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이 호두가 들어간 과자가 아니라 더 많은 호두라느 ㄴ생각이 들어서 호두를 한 봉지 샀다.

그 김에 오르조도 샀다. 오르조는 커피는 아니고 보리차인데, 오르조에선 커피맛이 나지 않지만 카누 디카페인에서는 오르조 맛이 난다.

요즘 돈을 존나 많이 쓴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자제력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건을 존나 사들인다.


전에는 호두가 먹고 싶어도 참고 오르조가 마시고 싶어도 참았고

건조기가 없어도 빨랫대에 널면 되고 에어프라이어가 없어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고,

그런식으로 살았는데 회사를 잘리고 한달쯤 지나서 한계가 왔다

옷이 없으면 같은 옷을 계속 돌려입고 거적때기같은 것을 걸치고

누래졌어도 옷이 찢어지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입었는데

낡은 팬티들도 전부 꼴보기 싫어져서 버렸다

생각보다 내가 이것저것을 참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이 없어서

그냥 그런데 돈 쓰기 싫어서

꼭 필요한데가 아니면 쓰기 싫은데

커피는 꼭 마셔야 하니까 커피에만 돈을 썼다

화장품도 안 사고 옷도 안 사다가

옷도 사고 화장품도 샀다

기분이 좋았고 쓸데없는 소비라거나 과소비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용도가 없는 장난감 같은 걸 산 게 아니라 내가 사회인으로 써야 할 껍데기를 너무 안 쓰고 살아서

여기저기 쫓겨다니는 것 같아서 화장도 하고 옷도 사람처럼 입으려고

남들이 싫어하는 나의 어떤 점을 개선해보려고 하다보니까

내가 쓰고 싶어하는 데까지 돈을 쓰게 되었다


깔끔한 옷은 필요한 것인데

호두는 안 먹어도 안 죽는데

호두를 사면서 내가 쓸데없는데 돈을 쓴다고 생각하면서

요즘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번아웃이 이것이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