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디자이너의 건설현장 도배사 도전기>를 읽었다.
타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그 전부터 했다.
취업하려고 서울 올라왔는데 두 번이나 잘렸다.
저자도 두 번인가, 세 번 잘리고 나서 도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을 그래도 나쁘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조직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고.
내가 잘하는 일에 대해서도 좀 자신이 없어지고,
월급 받으면서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글은 계속 쓸건데, 데이잡으로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게임회사 시나리오 라이터? 그걸 지금 하고 싶진 않다
지역 공공기관 홍보영상 작가는 지금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사실상 내 진로는 두 개 뿐이다.
지금은 그냥 텔레마케터 일을 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텔레마케터라고 딱히 더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안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같다.
좋은 점도 있고, 좀 이상한 회사기도 하지만.
생각을 너무 많이 안하면 다닐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튼 돈을 모아서 타일을 배우고 싶다.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글쓰기 하나만 할 줄 아니까 세상이 무섭고
영 못 살 만한 데인 것 같고, 글쓰기는 십 년을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 경력은 어디 쳐주지도 않고 하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글쓰기랑 가까운 사람들은 글쓰기를 정말 많이 무시한다.
마지막에 있었던 회사도 그랬다. 모든 건 피디 머릿속에 있고,
나는 그들이 시간이 없어서 쓸 수 밖에 없는 시다인 것 같았다.
피디들이 다 그렇다면 나는 영상 작가는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편집을 배울거냐 하면, 그렇게까지 영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까지 내 글만 고집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제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해도 욕을 먹는다.
질문이 많다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불명확한 지시사항을 질문하지 않고
독심술로 파악해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거다.
뭐 해먹고 살지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가 타일을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격증도 이것저것 따고, 뭐든 갖추면 저임금이나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회사보다 훨씬 낫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프리랜서로 일할 때의 인간관계와 회사 인간관계는 정말 다르다.
그리고 나는 프리랜서일때의 인간관계를 더 잘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저 <5년차 디자이너의 건설현장 도배사 도전기>를 읽게 됐다.
저자 이야기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도 않구나 싶었다.
내가 정말로 타일 현장에 가게 될지는 아마 모른다.
(아마 갈거다 성격상 하고 때려치우더라도)
그 책 역시도 도배 말고 또 다른 일로 넘어가게 되는 엔딩이 나는데,
저자분은 아마 뭘 해도 잘 살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세상에 정착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원래 힘들다.
그래도 이럴 땐 친구들이 '그래도 넌 잘 살 타입이야'라고 했던 게 위로가 된다.
그 책 저자분도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겠지, 그런 상상이 됐다.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내일 텔레마케팅 회사에 가고,
여름 내내 돈을 모으고, 그리고 타일을 배워봐야지.
그러다보면 또 길이 보일수도 있고,
아니면 또, 싫은 일을 하게 될 기력이 생길 수도 있고,
어떻게 살아도 사실, 노후대비는 못하고 망할 것 같으니까,
오히려 그러면 아무래도 좋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