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선택지
강남에 갈 때마다 그저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로라하는 성형외과는 강남에 모여 있다지만 평소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2주 동안 5군데의 병원에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한 곳에 수술 예약을 잡았다.
병원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앉을자리조차 없는 대기실을 둘러보며 상상했다.
이들은 무엇이 불만이고, 어디를 고치고 싶은 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수술할까?
'눈이 작고 무꺼풀인걸 보니. 저 친구도 쌍꺼풀을 수술 상담하겠군.'
'저 사람은 코 수술을 한 것 같은데, 마스크에 가려져 있는 흰 붕대는 수술 자국이겠지?'
'코 수술은 많이 아프다던데, 수술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한눈에 미인인 사람도 보인다.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몸매도 야리야리한 게 엄청 예쁜데, 더 예뻐지고 싶은 걸까?'
'지금처럼 예쁘게 수술의 힘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우리처럼 엄마와 함께 온 또래 친구도 있었다.
'무쌍의 작은 눈이군. 저 친구도 쌍꺼풀을 하러 왔겠군.'
2시간을 기다려 상담실장, 의사, 다시 상담실장과 면담을 했다. 그리곤 원하는 수술 내용, 수술 방법, 비용 안내를 받았다. 의아한 것은 후기를 올리는 이벤트와 할인이었다. 수술을 흥정하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는다. 높은 가격을 부르고 30~50%씩 할인을 해 준다고 하니, 재고상품 세일과 뭐가 다른 건지.
연이는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작은 눈이다. 두 아이 모두 아빠를 닮아 눈이 작다. 남편은 눈 두 덩이에 살이 많아 가만히 있으면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혼 초 TV를 볼 때 조용히 있으면 꼭 잠이 든 것 같았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방에 들어가 편히 자라고 하면 내게 화를 냈다.
"TV 잘 보고 있는데, 나 잠 안 잔다고."
"잠든 줄 알았지"
" 가만히 있으면 자꾸 자느냐고 물어봐.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던진 분필에 맞기도 했어."
"왜?"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나는 수업에 엄청 집중하고 있는데 날벼락이잖아. 그럴 때마다 진짜 기분 나빴어."
"진짜? 분필 맞으면 화나겠다."
"안 졸았다고 해도 내 말을 안 믿더라고. 나중엔 친구들이 '재는 눈이 작아서 선생님들이 그런 오해를 한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더 기분 나쁘더라고."
남편의 말에 나는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남편의 웃픈 현실이 딸아이의 유전자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외모에 신경 쓸 시기에 작은 눈에 대한 투덜거림이 이해가 된다. 나는 늘 예쁘다고만 했는데, 이건 내 생각이었다.
연이는 조산으로 한쪽 시력이 발달하지 않았고, 발달하지 못한 한쪽 눈이 힘이 없어 사시 수술을 받았다.
최근 들어 눈이 몰리는 모습이 자주 보여 안과를 갔더니 사시는 아니란다. 워낙 미간이 넓고 눈 앞꼬리가 밑으로 쳐져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의사의 앞 트임 수술 권유에 딸아이의 쌍꺼풀 수술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쌍꺼풀을 노래하는 딸을 무한정 뜯어말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 걱정은 되지만, 눈 성형은 12세 이상이면 무리가 없다는 설명에 고등학생이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눈 쏠림 현상은 개선이 시급했다.
"인아웃으로 하고 눈매를 좀 화려하게 하고 싶어요."
"화려하게 하려면 인라인은 어렵고, 아우트라인이어야 하겠는데. 절개보다는 매몰(자연유착)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네."
"몽고주름이 아래로 쳐져있어서 수술을 잘 못하면 소시지처럼 될 거야."
연이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수술 설명에 소시지는 왜 등장하고, 인라인/아우트라인의 차이는 뭔가?
화려한 눈매라는 말은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들어도 차이를 모르겠다.
의사는 딸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수술 방법과 한계점을 설명했고, 내가 모르는 것도 딸아이는 진지하게 질문하며 체크했다. 개인적 특징에 원하는 것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전체적인 조화와 문제점, 부작용 등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하는 모습은 신세계였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다른 의견이라 고민도 되었지만 성형은 상처나 질병치료가 아니므로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신뢰가 가는 병원을 선택했다.
상담 후 뱃속의 허기를 달래려 주변 식당을 둘러보니 죄다 성형외과다.
어느 건물이든 성형외과 간판이 줄지어 있었고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 중에는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병원은 많았고, 종사자들도 많았다.
대한민국 강남은 성형천국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2주 동안 다섯 군데의 병원을 다녀보고 1월 수술 예약을 했다.
외적인 미의 기준에 맞추며 타인 시선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불만족한다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에 연이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친구관계로 힘들던 시기를 이제 막 벗어났으니, 수술이 자신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내면을 키우는 것도, 외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결국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 같다.
인생 뭐 있는가?
본인이 원하는 걸 하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