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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헤는나무 Jan 14. 2021

그녀는 아름답다(2)

아름다움이란?

소싯적 예쁘다는 말 한 번쯤은 들어봤다지만 그녀의 흑백 사진을 보면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단정한 투피스에 우아한 웨이브가 있는 단발머리, 동란 눈과 얼굴. 인기 좀 있었겠다.

그런데도 공장에서 일하느라 데이트 한번 제대로 못했다 한다. 

별다른 연애도 못해보고 중매로 만난 남편과 몇 개월 만에 결혼했다. 

깨소금 같은 신혼생활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홀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세트로 묶인 가족과 적응하기 바빴다. 거기다 시동생을 챙기며  대가족의 맏며느리 역할은 작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은 18년 동안 4명의 시동생을 시집 장가를 보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늘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해서 이것저것 여러 일을 쉬지 않고 했다. 지나고 보니 그 역할을 해낸 시간들이 그녀의 인생이었고 전부였다.


새벽부터 다니는 일이 힘에 부치던 어느 날 어머님이 식사 준비를 할 테니 집안일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청소며 빨래를 해 놓으신걸 보니 웬일인가 싶었다. '힘들었겠다. 얼른 밥 먹어라.' 면서 밥상을 차려주시니 몸도 편하고 마음도 노곤해지곤 했다.


무슨조화인지 갑자기 절에 가셨던 시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쓰러지시면서 의식을 잃으셨고 그날 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이 모였다. 병원에서 집으로 모셔오고 새벽에 작고하셨으니 하루 사이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말과 행동으로 의아했던 것이 이런 이유였나 싶어 억장이 무너졌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실 분이었다니. 근래 살갑게 건네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언제까지고 옆에 계실 거라 생각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 동안 힘들었다.


시집살이라는 게 생각하기 나름일지 모른다.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으니 그 안에 미소 짓는 예쁜 추억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무너지기도 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시어머님이 떠나자 쓸쓸함이 몰려왔다. 한동안 우울함에 몸서리쳤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의 심장병이 재발해 입원을 했다. 상태는 자꾸 악화되어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에도 시동생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다. 상을 치른 지 두어 달. 철렁하는 마음으로 달려와 병실 앞을 지켰다.


시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남편은 그리 쉽게 떠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특히 아들을 끔찍이 챙기던 시어머니가 어딘가에서 지켜줄 거라 생각했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주문했다.

'당신 아들을 함께 데려가지는 않을 거잖아요.' 

중얼중얼 거리는 모습에 반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으면서도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며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천만다행으로 남편의 의식이 돌아보고, 위험했던 고비를 넘겼다. 꼬챙이처럼 마른 몸에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생명의 빛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은 그렇게 혹독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해 막내 시누이가 결혼을 하며 18년 시동생 뒷바라지를 끝냈다. 

방학이면 외가댁에 조카를 돌보던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친정엄마가 없는 친정은 전처럼 좋은 쉼터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아이 돌보는 일은 뜻 밖에 다른 일로 이어졌다. 

이번엔 친정 조카였다.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동생이 아이를 출산했으나 형편상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몸이 좀 편해지나 했더니만 졸지에 다시 보모가 되었다.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밤마다 분유를 먹이고 똥 기저귀를 갈며 업어 키웠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이 조카를 예뻐했다. 아이가 예뻐 정이 들며 늦둥이 키우는 마음도 들었다.

조카는 꼬박 5년을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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