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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헤는나무 Jan 26. 2021

'글쎄요 세상' 벗어나기

지난밤을 새운 후유증이 길다. 오후 두 시경 간신히 정신을 차렸으나 두통에 몸이 무겁다.

카페인으로 정신을 깨우려 해도 여전히 몸도 마음도 무겁다. 역시 사람은 밤에 자고 낮에 움직여야 하나보다.


아래는 저녁이 다되어 읽은 책의 일 부분이다.


선택 앞에서 YES, NO를 외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를 [핑크 펭귄]의 저자 빌 비숍은 '글쎄요 세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문장이 참 멋있다.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칼자루를 쥐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후 칼자루를 휘둘러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갑'인 적이 거의 없다.'을' 또는 '병'이라 생각해 그런지 주도권을 쥔 내 모습을 상상하자 입꼬리가 올라간다.

상대는 남편.

가장 가까운 곳에, 그러나 먼 타인처럼 느껴지는 1순위가 바로 남편이다. 결혼 20년 차 부부지만 알다가도 모르는 게 상대의 마음이다. 기대했다 실망하며 사는 것이 부부 사이인가 싶다.


남편에게 작은 것도 상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추측하고 짐작하며 감정의 고저 변화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하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무심함으로 변질되어갔다. 거기다 사업을 하는 남편의 오판으로 힘든 시간을 거쳤으니 이제는 상의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를 세웠다.  


이런 말을 꺼내는 나는 칼자루를 쥔 사람이었다. '글쎄'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쐐기를 박았다.

잔소리, 혹은 참견이라 여겨져 못마땅할 수도 있으나 감수해달라 한 것이다. 경험상 '좋은 게 좋은 것' 혹은 '그러려니'라는 생각은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타이밍을 늦춘다. 대화 중 불평불만이 늘더라도, 그래서 다투더라도 20년 내공으로 큰 싸움은 만들지 않을 거라 믿었다. 투닥투닥하며 지내는 것이 대면 대면한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남편은 내 말에 피식 웃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는가? 나이들 수록 마누라의 의견이 진리인 것을.


이 말을 전하며 속이 뻥 뚫리는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글쎄요 세상'에서 벗어나는 하나시도였기 때문이다.

대단할 것 없는 요청이지만 나름의 배짱을 부렸으니, 일상에서도 호불호를 조금 더 드러내야겠다.


음식을 주문할 때 '아무거나' 혹은 ' 다 괜찮은데'에서 내가 먹고 싶은 육식 메뉴를 고르고,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나름의 'YES or NO'를 찾는 것이다.


 얼버무림은 긍정 신호가 아니다. '글쎄요'라는 단어는 당분간 멀리해야겠다.

애매한 선택은 애매한 결과를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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