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빕니다.
늘 에너제틱하시던 엄마의 건강에 삐뽀삐뽀 이상 신호가 왔다. 엄마의 오랜 고질병인 메슥거림을 동반한 어지러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반드시 따라오던 증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연말에 많은 성당 행사들로 무리를 하신 듯하다.
며칠간 제대로 못 드시고 병원을 오고 가시더니, 오늘 좀 낫다 하셔서 죽을 사들고 엄마네로 갔다. 조잘조잘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거의 다 나으신 것 같다. 화장품과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가고 싶다 하셔서, 오랜만에 내가 기사를 자청했다. 40대에 접어들어서까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던 나도 작년부터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고, 가끔씩 부모님의 운전기사 역할을 할 때마다 그리 어색할 수가 없다.
마트 이곳저곳에서 식료품을 척척 담으시는 엄마를 보니, 나는 10대 소녀, 엄마는 40대 중반즈음의 주부의 모습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종종걸음으로 필요한 물건을 찾아다니시는 엄마의 걸음을 뒤에서 보는데 와락 눈물이 고인다. '우리 엄마 많이 늙으셨네'라는 기분보다는, 경쾌한 엄마의 뒷모습을 얼마나 오래 볼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불현듯 찾아왔다. 평생 하하 호호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누구도 모르는 우리의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 친구들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들을 간접적으로 들으며, 작별인사 없이 가까운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그들의 슬픔에 온 마음 담아 위로를 전한다. 혹여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다면 최대한 서로 덜 아쉬울 수 있도록,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모든 순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