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커리어 이야기
8월 말, 드디어 많은 우여곡절 끝에 회사의 Global Headquarters가 위치한 버지니아비치에 도착했다. 지난 5월 MBA 졸업 후 애틀랜타에서 취업준비를 하던 중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한국회사의 미국 법인에서 오퍼를 받았고 인터넷에서 미국에 있는 한국회사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음에도 다른 옵션이 없었기에, 그리고 OPT unemployment day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7월 중순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OPT umployment day란 OPT 신청 시 기재한 시작 날짜를 기준으로 90일 이내 고용주를 찾지 못하면 OPT가 종료가 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확하게는 LA라기 보단 흔히 오렌지카운티라고 불리는, 한국사람들이 잘 아는 Irvine 근처였고 도착 후 집 렌트 계약과 차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을 했다. 한국회사는 기존에 원했던 헬스케어 산업은 아니지만 Product Manager 직무였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악명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살기엔 급여는 빠듯한 수준이었다. 애틀랜타에서 2 bed 2 bath 아파트 렌트비로 대략 $2,200정도 나가던 게 캘리포니아에서는 1 bed 1 bath 아파트 렌트로 $2,700이었으니 얼마나 물가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옵션이 없는 나는 이를 가릴 쳐지도 아니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 후에도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몇 개의 회사들과 면접이 잡혀있었고 예정대로 면접은 보면서 지냈다. 그러던 중 1차 인터뷰를 본 지 3주나 지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미국 헬스케어 회사에서 Hiring Manager가 인터뷰를 보자 7월 25일로 면접을 잡게 되었다. 사실 이 면접은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 이유는 나는 사실 큰 도시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회사가 위치한 도시는 시골은 아니지만 그렇게 다이내믹하지 않고 조용한 도시라 회사 이외의 시간들은 많이 심심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아파트 계약 취소 페널티($5,500 + 한 달 치 렌트비 $2,700)와 애틀랜타에서 이곳까지 이주비($7,000)를 생각하면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 었다. 이주비용은 한국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했지만 만약 미국회사로 가게 되면 이 금액은 받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처음부터 생각하던 목표인 미국회사 취업, 그리고 헬스케어 PM 포지션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7월 25일 서부시간으로 오전 7시에 면접이 시작되었다. 어라? 생각보다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 많은 면접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만의 느낌적인 데이터를 빗대어 볼 때 이건 단순히 면접의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닌 딱 회사가 찾는 경험과 나의 이력이 일치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타이밍도 중요했던 게 현재 팀에는 Senior PM이 두 명, Associate PM이 한 명이고 그 중간에 PM이 필요한 상황에 내 연차가 딱 PM이 요구하는 연차였던 것이다.
김칫국 드링킹은 아닌가 고민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매니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오퍼가 있는 상황이며 8월 1일 출근 예정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다음 면접 단계로 넘어간다면 8월 1일 전 모든 게 완료가 되어야 한다고, 가능한지 물었다. 타이트한 일정이지만 그래도 HR과 상의 후 리쿠르터 통해 답을 주기로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한시 간도 채 되지 않아 Virginia로 찍힌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담당 리쿠르터였다. 방금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눴으며 내 상황에 대해 전달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가지 확인 사항이 있어 연락했다고 했다.
1) 지금 있는 오퍼는 무슨 직무이고 비슷한 산업인지
2) 기존 오퍼의 연봉 수준은 대략 어느 정도인지 (말해줄 수 있다면)
3) 리로케이션을 하는데 문제는 없는지? 리로케이션 비용은 회사에서 전부 지원 가능
4) 현재 오퍼와 비교해서 얼마나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는지?
5) 다음 인터뷰는 온사이트인데 회사에서 비행기 표를 끊어주려고 하니 관련 정보를 문자로 보내달라
7월 25일 (목요일)에 Hiring Manager 인터뷰 후 가장 빨리 가능했던 7월 30일 (화요일)로 확정을 하고 회사에서 제공해 준 비행기를 통해 인터뷰 하루 전인 월요일에 도착했다. 모든 절차가 정말 깔끔하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회사에서 비행기, 호텔, 렌터카 예약을 해주었고 나는 면접 준비만 집중하면 됐다. 그 외 식비나 우버 등 비용은 추후 비용청구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결전의 날,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고 일찍 체크 아웃 후 Virginia Beach 해변으로 향했다. 회사와 가깝기도 했고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어서 이 도시가 나와 잘 맞을지 분위기도 살필 겸 보고 싶었다. 이른 아침이라 별 다른 것은 없었고, 주변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 남은 시간 면접 준비를 했다.
회사에 도착 후 게스트 등록을 하니 Hiring Manager가 내려와 회사에 대한 소개, 그리고 회사 제품을 만드는 시설 투어를 시켜주었는데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회사는 기증받은 장기 및 신체조직을 재처리 및 재가공해서 이식재로 사용이 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드는데, 이 과정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설을 직접 구경하니 기증자에 대한 감사함과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 방문하는 외부인은 대부분 시설 투어가 일정에 포함되어 있으며 만족도가 정말 높다고 했다.
인터뷰는 Team panel 타입이었는데, 나는 단순하게 같이 일하게 될 팀원들과 캐주얼한 만남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다. 각 부서의 General Managner (Sr. Director level), VP of Marketing, 마지막으로 Chief Growth Officer까지 총 7명과 30분씩 back to back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오전 10시, 사전과제 발표를 마무리한 후 본격적으로 back to back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모든 질문들이 정말 날카로웠다. 미리 서로 준비를 했는지 질문이 겹치지 않았다. 그리고 질문 개수도 많지 않았다. 다만 한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드는 면접이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고 인터뷰 중간쯤 배 나온 대머리 옆집 이웃 주민처럼 보이는 백인 아저씨는 내 긴장을 풀어주고 싶어서인지 질문보다는 본인이 여기서 30년 동안 일을 했고 어떻게 처음 회사에 입사했는지에 대해 30분간 열심히 말씀해 주셨다...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오후 3시 30분이 되어 종료가 되었고 나는 다시 먼 여정을 위해 공항으로 떠났다.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예정대로라면 서부시간으로 밤 11시에 LA 공항에 도착을 했어야 하는데, 경유지었던 애틀랜타 공항이 기상악화로 모든 비행기의 착륙이 취소가 되었고 2시간 동안 주변 상공을 배회하다 주유를 위해 다시 한 시간을 날아 플로리다 잭슨빌 공항에 임시 착륙을 했다. 그로 인해 내가 타야 할 경유지의 비행기는 이미 떠나버렸고, 졸지에 공항 노숙을 하고 다음 날 아침 6시 비행기를 타고 서부로 갈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 도착하자마자 씻고 와이프와 아들을 데리고 게티박물관으로 향하던 중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Adam, I am excited to offer you the position of Product Manager.
극적으로 한국 회사 입사 하루 전 원하던 미국 헬스케어 회사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