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책 위에 있는 초록뱀같이 생긴 것은 믿을 수 없겠지만 책갈피란 도구이다.
최근 들어 둘째 놈이 뜨개질을 배웠다며 이것저것 만들어 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정체불명의 실뭉치 수준이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점점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만든 작품(?) 중 하나가 저 책갈피이다. 유용하다면 유용하다 할 수 있고,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다(솔직히 불편함이 쪼끔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책갈피이면 그냥 페이지 중간에 꽂아서 덮어 버리면 그만인데, 이 초록뱀 책갈피는 사용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초록뱀같이 생긴 이 놈의 몸뚱이를 대가리부터 길게 당겨서 대가리는 책 윗부분에 끼워 넣고, 꼬리 부분은 책 아랫부분에 놓고 초록뱀이 수축하기 전에 재빨리 후다닥 책을 덮어야 한다.
가끔 책가방에 넣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이 초록뱀이 책에서 빠져나와 가방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읽고 있던 책갈피가 빠진 책을 어디까지 읽었나 하고 다시 책을 속독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 초록뱀의 대가리를 잡고 꼬리를 길게 당겨야 한다.
그러면 뭐 어떠랴... 다이소에 색실 하나에 천 원씩 주고 사서 아빠 준다고 코바늘로 한 땀, 한 땀 뜨개질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런 불편함 정도는 백만 번, 천만 번 감수할 수 있다.
10년 전 태어나 손가락을 쪽쪽 빨던 놈이 그 손가락으로 뜨개질을 한다니... 머지않은 언젠가 둘째가 만든 털모자나 스웨터를 나의 몸에 곱게 착용할 날도 있겠지...
그나저나 시간은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