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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필요한 시절에

조통달의 책읽기_2.5층 너머로(은이결 作)

by 조통달


난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사회과학이나 평론 같은 책과 글에 익숙해져 소설은 좀처럼 페이지를 술술 넘기기가 힘들다. 시간과 공간을 이리저리 휙휙 왔다 갔다 하는 전개도 그렇고, 인물의 관계도도 머릿속에서 연결이 안 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면 종이에 등장인물을 하나씩 빠짐없이 적는다. 이 소설도 그랬다.


손아진, 너, 진규, 정세나, 아빠, 현주씨, 동우, 은제, 해미 언니, 보희…

소설 속 인물관계도. 이렇게 해야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세나의 죽음의 진실을 아직 나는 모른다. 책에는 세나만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아니면 내가 소설책 읽기에 젬병이어서 나 혼자만 죽음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건 주인공 아진이는 세나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스스로 애도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겨내고 있다.


흔히 사람의 죽음이란 사라짐을 의미하지만 그건 물리적인 것일 뿐, 마음이란 곳에서는 여전히 그 사람과 죽음의 의미는 존재한다. 그러니 힘든 것이다. 사라지면 오롯이 모두 깨끗하게 사라지면 좋으련만, 사람의 죽음이란 것이 하얀 옷에 묻어버린 아스팔트 콜타르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어제 아내와 밤에 산책을 가면서 올해 봄에 돌아가신 장인어른 흉내를 냈다. 내가 생각해도 장인어른과 너무 닮게 흉내를 내었던 것 같았다. 아내가 말이 없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내의 손을 세게 잡아주었다.


애도에는 아진이의 2.5층같은 공간도 필요하지만 그 공간과 함께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절대시간보다 더… 더… 사람이 필요하다. 다정한 사람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정체가 없지만 나의 말을 왜곡 없이 들어주는 “너”도 필요하고, 진규와 은제, 보희도 필요하다. 항상 도움이 되지 않지만 가끔은 내편이 되어주는 아빠와 동우, 현주씨와 같은 식구도 필요하고 내가 도움을 줌으로써 도움을 받는 해미 언니도 필요하다.


시간과 사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은이결 장편소설 <2.5층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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