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힘겹게 버티다 망가지려는 이지안을 찾아가 박동훈은 삶에 대한 의지를 통해 그녀에게 큰 위로를 전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진심을 다한 위로를 주고받는다. 같은 장면을 보고 또 봤다. 현실 죽음의 헛헛함을 살아서 움직이는 영상에서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의 아저씨> 마지막 장면
“조금만 더 버티지, 조금만 더…”
행복을 다짐했던 이선균은 스스로 죽었다. 이선균의 인생은 망가졌다고 수군거리며 비웃고 조롱하던 언론과 사람들은 태세를 전환해서 장례식장의 모습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그렇게 칼로 휘두르고 바늘로 쑤시고 하던 사람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 칼을 숨기고 바늘은 실타래에 다시 꽂았다.
개새끼들...
죗값은 그가 지은 죄만큼만 벌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죄도 밝혀지지 않은 채 몇 곱절의 벌을 미리 받았다. 그것도 법과는 무관한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고 벌을 주었다. 그는 견디지 못하고 좁은 차 안에서 번개탄 연기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함께 섞어 마셨다. 그리고 죽었다.
그렇게 마약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에게 이선균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마약 투약 혐의가 있으면 정상적으로 수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수사를 받는 동안 온갖 추문을 흘리고 언론은 받아썼다. 못난 정권은 자신들이 위기에 처할 때면 수사기관을 동원해 연예인을 제물로 삼아 그 위기를 감추고 사람들의 시선을 억지로 돌리곤 했다. 언론은 시선 돌리기의 충직한 심부름꾼이었다.
이선균의 마약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날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측근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자녀 학교폭력 사건이 터진 날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언니가 선물 줄게’라고 하며 2학년 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화장실 칸을 일일이 확인한 뒤 그 학생을 화장실 빈칸에 들여보내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히고 두 손은 뒤로하고 눈을 감게 한 뒤, 10차례 리코더와 주먹으로 머리와 얼굴을 때려 전치 9주의 부상을 입힌 사건은 바로 그날부터 이선균의 마약 사건에 조용히 묻혔다.
모든 언론과 찌라시 수준의 유튜브는 수사기관이 기획한 시나리오 그대로 충실히 따라갔다. 경찰에 출석할 때마다 일정이 공개되었고 기자들은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퍼부었다. 수신료의 가치를 전하는 공영방송 KBS는 단독 보도로 이선균과 유흥업소 실장과의 사적 대화를 ‘단독 보도’로 내보냈다.
이정섭이라는 잘 나가는 검사가 있다. 그런데 그의 처남이 마약을 했고 그의 아내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서 검사의 처남에게 마약 간이 검사를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경찰도 그냥 돌아갔다. 경찰 조사가 미뤄지는 동안 검사의 처남은 염색과 탈색을 반복했고, 경찰 출석 전 병원에서 대마 성분 검출 여부 검사까지 받았다. 경찰은 석 달이 지나서야 머리카락과 소변을 제출받았고 대마 성분이 나오지 않자 불송치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대마의 경우 두 달이 지나 검사를 하면 검출이 안된다는 사실은 이정섭이라는 검사도 알고, 검사의 처남도 알고, 경찰도 알았을 것이다.
영화배우 이선균도 이정섭 검사의 처남도 같은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언론들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이선균은 경찰서 앞마당이라는 무대에 올려 조져버리고 이정섭 검사의 처남은 어딘가에 숨어 보호받고 잘 지낸다. 이선균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에 맞게 수사하고 처벌하라는 것이다. 하긴…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자기 마누라를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켜 가며 수사하라고 해도 바로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발끈하는 놈에게 무엇을 바라겠냐만…
다시 <나의 아저씨> 마지막 장면을 본다. 다시 만난 박동훈과 이지안은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한다. 밥을 산다는 이지안의 말에 박동훈은 웃으며 돌아선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는 말을 하면서…
이선균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음은 삶에 있어 가장 무거운 말이지만, 그 죽음은 힘들었던 삶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