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현재 대한민국의 거대 양당의 이름입니다. 이 두 정당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것입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은 선거때가 되면 국민의힘 출신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민주당 출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란 대통령 이름은 선거때나 평상시나 언제나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선거때가 되면 항상 뜨거운 이름이 되고는 했습니다. 또 다시 국회의원 선거가 가까워 오니 민주당 출신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인 너럭바위에 정치인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입니다. 양문석 후보는 2008년 언론연대 사무총장 시절, 뉴스 매체 미디어스에 "국민 60~70%가 반대한 한미 FTA를 밀어붙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묶어서 ‘유사 불량품’이라고 표현했지요.
그 칼럼에는 "봉하마을에서 환경운동한답시고 마을 청소하러 다니는 노무현 씨에 대해서 '찬양'하는 일부의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보면 한편으로 안타깝고", "낙향한 대통령으로서의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 씨에 대해서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합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어느 순간 서서히 변절(?) 하기 시작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너무나 깊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지나가다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노란색 현수막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날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울던 날도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양문석 후보의 발언은 분명 기분이 나쁩니다. 그것도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첫째, 조금 유치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대통령을 ‘노무현 씨’라고 말한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쁩니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후 모습에 대해서 ‘찬양’했던 저 같은 사람들을 ‘기억상실증’환자라고 말한 것이 기분이 나쁩니다. 셋째, 무엇보다 이 점이 양문석 후보에게 제일 실망스러운 점인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함께 세트로 묶어서 ‘유사 불량품’으로 매도한 표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불량품’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이명박 대통령과 유사하다, 즉 비슷하다고 한 말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 입장에서 화가 참 많이 났었습니다. 감히 어떻게 이명박과 비교를 해? 정말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후보 공천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양문석 후보의 예전 발언은 공천에서 탈락한 민주당 일부 후보자들과 이재명 대표에게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사람들에게는 좋은 시빗거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언제나 민주당 비판할 거리를 찾던 상당수 하이에나 언론들은 이 때다 싶어서 양문석 후보의 예전 발언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하이에나 언론들이 언제 노무현 대통령을 수호했다고...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전 총리는 16일 "노무현의 동지로서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라며 "양문석 후보에 대한 당의 결단을 촉구한다"라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그 외에도 김부겸, 이광재, 윤건영, 고민정, 홍익표 등 민주당 내 소위 ‘비주류’ 인사들도 양문석 후보에 대한 비판과 사퇴 촉구에 힘을 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1년 민주당 상임고문 자격으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해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 사례'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노사가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극렬하게 대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연을 마치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던 중 노조원들이 던진 계란을 맞았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고 나오며 그는 기분좋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노동자들이야 자기들도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오히려 웃으며 격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계란을 던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조원들은 1년 뒤 다시 공장을 방문한 그에게 '계란 꾸러미'를 선물로 주며 격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노동자의 미움을 이해했고, 노동자들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 마음을 알아갔던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는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공’과 ‘과’가 공존하는 ‘사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며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만큼 살아 생전 욕을 많이 먹었던 대통령이 어디 있었습니까? 지금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을 '욕하는' 정치인들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욕을 많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양문석 후보가 당시 주장했던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미 FTA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미 FTA를 규탄하는 집회 시위가 있었고, 수만 명의 노동자 농민들이 시청광장에서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은 진보진영 단체와 사람들이 당시 노무현 정부에게 등을 돌리며 지지율을 떨어뜨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참여연대, 민변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는 한미 FTA를 반대하였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은 단식농성까지 하면서 반대를 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미 FTA를 철회하라고 압박하였습니다. 양문석 후보는 당시 한미 FTA에 대해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과는 별개로 시민운동가 시절의 양문석 후보의 그 칼럼은 분명 표현이 지나치고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양문석 후보는 오늘 봉하마을을 찾아가 참배하고 사과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사과하면 좀 받아주면 안 됩니까? 노무현 대통령을 욕 한 사람은 영원히 민주당 국회의원이 될 수 없습니까? 지금 양문석 후보를 비난하고 사퇴하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 욕 한 사람 없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쌍욕에 가까운 말을 하고도 뻔뻔하게 정치를 하고 있는 집단은 국민의힘인데 거기에는 침묵하면서 왜 같은 당의 양문석 후보에게 그렇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솔직히 잘 이해하기 힘듭니다.
2022년 9월 시사IN에서 실시한 전직 대통령 선호도 조사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29.8%로 1위이며, 그 뒤를 이어 2위는 24.3%의 선호도로 박정희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일부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고 민주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진보진영 국민들뿐만 아니라 보수진영 국민들까지 그의 정치적 가치와 철학과 업적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요.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2003년 한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를 즐겁게 만들려면 미워하지 말아야 돼. 그지?”
저는 양문석 후보와 양문석 후보를 비난하고 사퇴하라고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미워하지 말자고. 분노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검찰 독재권력과 그 권력과 상부상조하는 일부 언론들이라고 말입니다.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바랍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자기한테 욕했다고 발끈하는 그런 좀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노무현, 문재인이란 이름을 떼고 부디 본인의 이름과 본인이 속한 정당의 이름을 내세우는 당당한 정치를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