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접한 건 엄청 오래전 일이다. 이승열 아저씨가 고전 읽어주는 EBS 팟캐스트를 통해 미리 알고 책을 읽었어도 책장을 넘길수록 모진 인간 스트릭랜드의 일생을 쫓는 재미가 있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어서 읽고 덮고 읽고 덮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집중이 잘 됐다. 줄거리에 금세 빠져드는 걸 보면 몰입이 잘 되는 고전책이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 때문인가 생생하게 펼쳐지는 상황을 따라가며 읽었다.
스트릭랜드는 운이 좋은 사람인데 주변에 감사와 표현을 절대 안 하는 성찰이 없는 인물 같다. 끝내 이타적인 스트로브 부부에 상처를 주고도, 글쓴이의 기분을 좌우하면서도 개운한 말 한마디 꺼낸 적 없기 때문이다. 예술성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그놈의 고고함이 타인을 찌르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도 자비 없음이 결국 스스로를 병들게 한 것 같다. 이기적이란 게 자기만 생각한다는 건데 스크릭랜드는 자신을 예술성에 갈아 넣었기 때문에 아무도 득을 본 자는 없지만 미술 작품 만이 남았다 볼 수 있으려나.
그 당시는 희생하는 여성이 당연했기에 첫 부인도 둘째 부인 아타도 그를 작품 활동을 한껏 도와준다. 그는 고마움을 알긴 알까. 어쨌든 나는 이 인물을 대 놓고 욕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5분 동안 독백이 가능할 정도로 별로였다.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이다.
일관적으로 독선적인 캐릭터, 타고난 것도 아니면서 풍족한 생활을 접고 가난한 예술 생활을 시작한 것, 평범한 가장에서 고독한 아티스트를 택한 것, 선의를 지닌 타인이 상처받고 나가떨어져도 눈 깜짝 안 하는 것 그러면서도 이웃의 덕을 많이 보는 것, 잘 그린 것도 아닌데 그의 화풍을 알아보는 소수가 있다는 점으로 인해 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포장된다.
스트릭랜드의 일생이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영화 보는 듯 모난 인생이어서 스토리가 무궁무진했다. 파리의 좁은 동네에서 예술하는 사람으로, 타히티의 원주민 마을에서 빨간 머리 외지인으로 그는 주목받고 싶지 않아도 돋보이는 운명을 타고 난 듯 싶다.
아니 근데, 글쓴이는 대체 뭣 때문에 스트릭랜드의 일생에 열광해 지인을 쫓고 쫓아 그의 이야기를 수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