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로봇의 자리>
#무엇이 본질인가를 사유하게 만드는 책
그러나 진짜 사유해 보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독후감 일정을 맞추겠다고 해외 출장 길에 이 책을 챙겨갔지만, 비행기의 백색 소음때문에 두 페이지 정도 읽었으려나? 별로 못 보고 잠들어 버렸다. 비행기 왕복 거리 동안 한 10페이지 정도는 읽었을까? 어쨌든 주말 출근까지 꽉찬 9월에 틈틈이 책 한권을 끝냈다는 거에 셀프로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문과 출신으로서 와닿지 않는 제목
로봇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거리감 부터 느껴지는 문과 출신이다. 트레바리가 아니었다면 쉽게, 혼자서 읽지 않았을 주제를 접할 수 있는 “신선함”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키워드였다. 책 제목 부터가 난관이었다. 로봇의 소리? 로봇의 거리? 로봇의 머리? 제목에 익숙해지기에도 좀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부제목이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아닌 것들과 함께 사는 방법”이라. 지식이나 정보가 담긴 책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해 사회 구조를 재조명해 보고 인문학과 같은 접근이라 책 자체가 어렵진 않아 다행.
#로봇의 등장에도 남겨지는 소수들
로봇 시민권이란 글을 다룰 때 특히, 놀라웠다. 최초, 이례적인, 전례 없는 뭐 이런 단어들은 언론에서 다루기 참 좋아한다.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것들이니까. 나라를 움직이는 윗 사람들은 로봇 소피아에게 단순하게 상징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로봇의 시민권 퍼포먼스가 현대 사회의 인권을 한번더 짚고 넘어가게 만든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했다. (신선한 자극에 쌍따봉을 들었다) 로봇의 서열은 당연히 인간 보다 아래라고 생각했고, 로봇은 인간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에서 당장 차별 받고 억압 받는 사람들에 비해, 로봇의 존재가 사회적 소수와 약자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게될 수 있다는 그것. 그리고 로봇에게 주어지는 트롤리 문제 역시, 누구의 생명은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에 대해 어떻게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38p. 로봇은 인간의 곤란한 처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인간에게 무심한 로봇을 있는 그대로 무심하게 대할 줄 아는 인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172p. 무인시스템은 종종 인공 차별의 현장이 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는 무인 단말기 화면 앞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경제성만 고려한 나머지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키오스크의 갑작스런 등장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짚어줬다. 기술의 개선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반드시 따라오지 않는 다는 걸 느꼈다.
#언캐니 밸리와 하슬아 AI
chat GPT 등장 이전에, 하이퍼커넥트 기업이 만든 하슬아 AI가 등장했다. 송이 성이고, 이름이 하슬아인 나하고 이름이 같다는 이유 만으로 그냥 그 이름이 싫었다. 제 2의 이루다 사건 처럼 누군가에게 성적 대상으로 불리는 그 호칭이 싫었다. 얼굴은 확실히 다르지만, 유저들이 하슬아 하슬아 게시판에 하나씩 올리고 대화를 건다고 느끼는 게 소름 끼쳤다. 밑져야 본적으로 하이퍼커넥트 기술 개발 팀에 법적 검토도 요청했다. 이미 상표권을 등록했고, 성적 대상화에 대해 강력한 정책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서비스는 종적을 감췄다. 아찔했던 경험은 6개월 뒤 통쾌함이 됐다.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라 하슬아AI야!
#자율주행의 논리와 반복되는 예견된 참사들
182p.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는 없다. 기계 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 없이 일하는 기계도 없다. 사람 없는 기계는 위험하다.
위험한 순간에는 놓이지 않는 기계 처럼 일하는 화이트 칼라 직종이어서 앗 뜨끔했다. 아무튼 자율주행이든, 택배 경로든, 생산 공장에서든 우선순위를 제발 잊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 노동 보다 생명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고, 효율성 보다 사람 답게 일할 환경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돌이켜 보면 점점 발전해 나가는 2020년에도 사고 인재 참사가 더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이든 다 아는 로봇은 딱히 우리 사회에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옛날엔 무엇이든지 다 아는 백과사전이 있었고, 컴퓨터 백과사전 CD였다가, 이제는 인터넷 검색, 동영상 검색이면 거의 해결된다.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로봇이 과연 존재할까??? 로봇은 인간을 절대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