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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Mar 16. 2019

자신을 위해 일하고 계신가요?

직장에만 의존하지 말 것


망각의 공간


2005년. 직장을 잡은 그 해로부터 만 13년이 흘렀다. 이직과 전배를 포함해서 4번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그 사이 나는 코흘리개 사원을 지나, 무장한 싸움꾼 사원을 거쳐 슈퍼 대리, 그리고 무난하게 과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긴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회사라는 조직에 몸 담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징글징글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내 삶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일들이 일어난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직장은 분명 그 과정에서 내게 도움을 주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소박한 가정을 꾸려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아이와 함께, 아내와 함께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 가는 동안 직장이 내게 준 몇 가지가 있다


       §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기회 

       §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일정한 소득

       § 직장에서의 자신감과 지위

       § 직장이 주는 '일시적' 안락함. 그리고 그것이 영원할 것 같은 환상


생각해보니 참 열심히 살았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내게 필요한 능력과 회사의 인정은 받았지만 어쩔 수 없는 술자리와 관계 유지를 위한 소모임에 불려 다녀야 했다.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직위에 맞는 역할도 잘 수행해냈다. 나는 그렇게 '충성스러운' 직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적당히 잘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보상해 주는 직장의 덫을 알지 못했고, 그곳에 묶여 있는 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내 자신이 잊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냈다. 


그랬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정작 내 자신은 완전히 잊고 살아온 것과 다름없었다. 그저 내게 급여를 주는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길들여졌고, 칭찬을 듣고 보상을 잘 받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잘 해내어야만 되었다. 오로지 내 자신의 삶과 행복을 위한 그 어떤 것도 나는 쳐다보지 못했고, 그마저도 어떤 것들이 내 행복 유전자를 자극하는지조차 다 잊어버렸다. 회사 밖에서의 삶이 훨씬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주는 월급에 중독된 나는 그곳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큰 실수마저도 가끔씩 저질러왔다.

결국, 아빠와 남편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잘 길들여진 노예만이 남아 있었다.




현실 직시


하지만 2년 전, 그러니까 2017년에 내가 겪은 마지막 변화로 인해 그간 직장인으로 지낸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인식들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지배는 몇 가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 직장에서의 좁아지는 입지

       § 반복되는 위기가 주는, 그간의 '안락함'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

       § 그리고, 내가 이곳을 떠났을 때 당장 내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사실

       § 벼랑 끝에 몰린 나를 구해줄 당장의 돌파구가 없다는 사실

       §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바심

       § 결정적으로, 직장이 내 남은 인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뒤늦은 깨달음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나는 지난 2년 동안 내 스스로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나는 확실히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직장은 영원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다음 내 스스로의 삶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곳에만 목메는 것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담보로 맡겨둔, 책임질 수 없는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직장 생활 11년 차가 되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각성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직장은 내게 이런 곳으로 정의된다. 


더 이상 내 미래를 맡기지 않고 하루빨리 '잘' 탈출해야 하는 곳.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잘'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잘' 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른다. 아직 나도 그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 생각에 다다랐고, '잘' 탈출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족쇄는 길어지거나 짧아지지 않는다. 처음의 길이 그대로, 나를 같은 위치에  묶어둘 뿐이다.)



삶, 빼기 직장이라는 마약


내가 그토록 원했던 직장인의 삶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만두려 하는 이유를 모두에게 알리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을 보았다. 그래서, 당연히 누구에게나 더하기 부호로 인식되어 있는 직장이라는 단어에 나는 빼기 부호를 붙이기로 했다.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마다의 생각, 저마다의 환경, 철학을 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더하기보다는 빼기 부호를 붙여보는 상상을 해 보기를 권한다. 빼기 부호가 붙은 후 당장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나 기존에 없던 과감한 도전과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지만 권해보고 싶다.


나는 꿈이 생겼다.

현실은 물론 녹록지 않겠지만 직장을 '잘' 탈출해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꿈.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갖는 꿈.

그리고 구속받지 않는 하루를 보내며 몇 잔의 커피를 친구 삼아 글을 쓰고 싶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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