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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Mar 11. 2019

괜찮아. 사랑해.

Cherish Myself


나에게 주었던 상처, 그리고 나락


10대 시절 나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다. 죽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인 힘과, (조금 과장하자면) 죽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었다. 으레 10대 남자아이는 미친 듯이 혈기왕성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언가에 미쳐있거나 또는 이것저것 해보지 않는 것이 없을 것 같지만 나는 아니었다. 공부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운동. 운동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다지 돈이 필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돈은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어서 항상 무엇을 하건 신경 쓰이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하는 것에 스스로 제한을 많이 두었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어도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에 따라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가 다시 갚아주거나, 그냥 여유 있는 친구에게 한두 번쯤 의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조차도 마음의 짐이었다. 선뜻 그러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의 권유를 한사코 뿌리치며 나는 내 본능을 돈 때문에,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마음의 짐 때문에, 불필요한 친구들과의 비교로 인한 패배감 때문에 억지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스스로를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어 버리고 말았다.


끝은 어디였을까?


소외감, 외로움. 

밖에서의 내 모습은 이 단어들과 거리가 멀었지만 집에 돌아와 방 안에 있는 내 모습은 그랬다. 나는 부단히 내 자신을 괴롭혔다. 홀로 있으면서, 나 자신을 어둡고 어둡고 어두운 심연으로 계속해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에게 필요치 않았던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가난하고, 뒤쳐지고, 가진 것이 없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부끄럽다. 숨고 싶다. 피하고 싶다. 포기하자. 내 주제에...'

이제와 생각하면 참 한심했던 생각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만들어 낸 상처들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 줄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에 진출해서도, 심지어 결혼을 하고 나서 까지도 내가 남겼던 그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고 나를 힘들게 했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들이 닥쳐올 때면 나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나약한 사람이 되었다. 잘 헤쳐나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과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리적으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멘탈은 여전히 심연에 머물러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맞다. 나는 자존감이 무척이나 낮은 아이였으며. 게다가 굉장히 비관적이었다. 




나 좀 안아줘...


우습게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특히 누군가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려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꽤나 좋은 말들과 리액션으로 상대방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혹여나 마땅한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더라도 잘 들어주려 애썼다. 나는 그들에게 굉장히 따스하고, 자존감이 높고,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보 같았다. 그리고 이중적이었다. 정작 나는 캄캄한 지하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을 밝은 곳으로 꺼내어 주려 애쓰고 있었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 내가 그들에게 주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들에게 쉽사리 그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뻗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지하실에 갇혀 있는 진짜 나에게 먼저 손을 뻗었어야 했다. 

큰 소리로 나 좀 안아 달라고, 나 좀 구해 달라고 소리쳤어야 했다.

그 안에 있는 상처 받은 나를 먼저 안아주어야 했다. 그리고 손을 붙잡아 지하실에서 나갔어야 했다.




괜찮아.


지하실에 갇힌 나는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난 후에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현대인의 삶을 압박하는 갖가지 요구 사항들에 무관심해지려 노력한 내 마음가짐 등 복합적인 요소들도 함께 작용했다. 내 가치관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여러 책들도 물론 도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나에게 건 최면은 이렇다. 


괜찮아. 못해도, 부족해도, 느려도, 몰라도, 틀려도, 달라도 괜찮아.
비교하지 말고, 세상이 정해 놓은 잣대에 맞추려 하지 말자.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하자. 


'괜찮아.'는 내 마음의 지하실을 없애는 것을 도와준, 내 스스로를 안아준 치유의 단어였다.

많이 노력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 옛날, 나 혼자만의 세상에 나를 가두지 말고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 마음속 어두운 기운을 모두 뿜어내려 했어야 했다.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삶, 더하기 나만은 안아주기


우리는 살면서 정작 스스로가 괜찮지 않으면서 애써 괜찮은 '척'과 혼자만의 비교를 하며 살아간다. 

그 '척'과 비교는 우리 자신을 컴컴한 지하실로 한 발짝 더 내려가도록 만든다. 

그러지 말자. 억지로 참고 억지로 버티지 말자. 

다른 것들에 빼기 부호가 붙더라도 내 마음만은 영원히 더하기 부호를 붙이자. 

그 마음만은 안아주고, 토닥여주자.

그리고 따뜻하게 얘기해 주자. 


괜찮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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