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쏟기 Nov 10. 2023

중국의 현재에서 엿보는 어제

'중국의 현대사_박인성' 를 읽고

띠따 런뚜어 地大人多


예전 중국에 급하게 오게 되면서 서점에서 중국을 공부하기 위해 책을 한 권 집었는데, 그 책 제목이 '띠따 런뚜어' 였습니다. 말 그대로 地大人多di da ren duo  땅이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을 이야기하는 거죠. 


어제 중국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대화 말미에 '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익숙한 말이죠. 지금까지 중국에 살면서 참으로 많이 듣던 말입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합니다.

중국이 사람 많고 땅 넓은지 누가 모를까요? 근데, 이러하기에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자조적 의미를 풍기기도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많은 문제들을 이 한마디로 대신하려는 중국인들의 인식을 볼 수 있죠.


"우리는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서 다른 나라들처럼 민주적이며 국민의 권리를 따지지 못해. 그렇게 하면 사회 혼란만 가중되니 결국 지금 중국공산당의 국정운영의 형태는 분명 최적화된 방법이며, 다른 나라는 이해 못 할 거야......"




저번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에서 인연이 있던 박인성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예전 중국 항저우 절강대학교에서 토지자원관리, 즉 부동산을 전공하시던 교수님이십니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 정착을 하셨고, 2023년 올 5월에 이전 전공서적을 쓰신 것과는 다른 역사책을 쓰셨더군요.


이 책의 시작은 저자가 책에서도 밝혔듯이, 펑더화이 彭德怀라는 인물연구가 시작이었습니다.

펑더화이는 우리에게는 '적장敵將'으로 잘 알려진 사랍입니다. 625 전쟁 때 중공군의 총사령관으로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죠. 교수님은 우연히 중국의 한 헌책방에서 '펑더화이 자술서'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자술自述'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구성에 궁금증이 생겨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공산당 최고의 장군이면서 그 말년은 온갖 박해를 받고 생애를 마친 불운한 운명을 가졌던 펑더화이. 이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가 교수님의 10여 년 중국 현대사 연구의 시작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혁명과 그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었고, 교수님의 전문영역인 중국의 토지개혁과정에 대한 학술적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지주들로부터의 해방은 결국 개개인 농민의 땅을 소유하고 경작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얻는데서 시작되었고, 마오쩌둥은 이런 농민들의 욕구를 선동하여 결과적으로 공산당 혁명을 완성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농민들의 생활은 과거의 지주에서 공산당으로 땅의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 다시금 소작농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농민들의 생활이 이어졌죠.  '대약진 운동'은 마오쩌둥의 실책으로 인해 민중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고 더 나아가서는 굶주림으로 생명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암울한 시기를 불러왔습니다. 

그 속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개혁의 바람은 마오쩌둥에게 위기감을 주게 되고, '문화혁명'이라는 전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기괴한 정치적 소용돌이가 몰아치게 됩니다.


펑더화이는 '대약진 운동'의 실정失政에 대해 성토했다 마오쩌둥 눈 밖에 나게 되고, 문화혁명시기 온갖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이 한 가지의 사건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최고권력자와의 갈등은 결국 19년간의 비판, 8년 구금, 4년간 가명의 유골 상태로 있게 되었고, 마오쩌둥 사후 비로소 명예가 회복되어 1998년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열사묘지에 안장됩니다. 


일국의 총사령관으로 건국을 위한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중국공산당 혁명을 완성시킨 한 인물이 어린 학생들에게 조리돌림당하고 구타당하고 비판당해야 하는 광기의 시대. 이성과 논리보다는 복종과 이념이 앞서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고 이웃을 쏴 죽이는 이런 사실들이 바로 현재의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는 중국 현대의 역사입니다. 



중국은 왜 이러한가?


중국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죠.

저도 적지 않은 생활을 중국에서 하고 있지만, 최근 경기가 주춤하고 사회적인 불만들이 형성되는 중국의 현실 속에서, 특히나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철저한 감시가 진행되었던 '코로나 정국'을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가 형성됩니다. 

지금의 이 중화인민공화국을 형성하고 있는 국민들은 그 많은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인의 경험들이 모여서 중국이라는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겠죠. 중화인민공화국의 시작과 더불어 그동안 현대사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은 분명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슬픔이나 기쁨 혹은 분노의 형태로 말이죠. 


중국의 어제는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고 엿보는데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고도성장으로 경제적 발전만을 바라보던 중국이 잠시 주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고속 성장의 발전 속에서 드러나지 않던 중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죠.

 

경제성장과 더불어 문화혁명으로 버려졌던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겠다고 여기저기 '위대한 중국'을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주변국들의 눈살이 찌푸리게 만들지만, 경제성장의 자신감은 중국의 영광을 찾을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들을 했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기에 지금의 발전으로 곧 그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온 국민들이 흥분했습니다. 

'大国崛起대국굴기'라는 다큐가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중국이 찾으려던 역사는 희망을 위한 '자부심'만을 들여다보는 역사였고, 자기 성찰이 없는 과거 역사의 조각일 뿐입니다. 중국을 이해하는데 과거의 중국보단 어제의 중국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에 대한 '자기 객관화'의 노력이 없는 역사인식은 주변국들과의 거리만 멀어질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겪는 역사논쟁도 그러하겠지만, 중국은 제대로 된 사실관계도 인식 못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습니다. 위로부터 주입되는 개념의 암기보다, 스스로 그리고 서로 간에 비판적 논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역사인식이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부분이죠. 역시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요... 


국가적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는 위기의 순간.

국민의 역량, 즉 국가의 역량이 보이는 순간입니다. 

그 힘은 사회적 시스템과 문화 속에서 교육되고 스스로 인식되는 개인의 비판적 사고의 영역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행동할 사고를 갖추는 것이 하나 둘 모여서 국가의 힘을 만들어줍니다. 코로나 정국에서 보였던 수많은 이해하지 못할 행위들은 바로 그런 국민들의 인식과 사고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왜 이러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국의 현대사,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그 속의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들쳐보는 것은 분명 좋은 학습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책의 작가는 맺은 말에서 보듯이

좌경 모험주의 신념과 권력의 작동 방식과 그로 인한 영향과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교훈을 도출해야 할 것인가이다. 더불어 1959년 여름, 루산에서 펑더화이가 직언으로 지적했고, 그 직후에 발생한 실제 상황과 경험을 통해서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듯이, '좌'의 문제는 폐쇄적 자기 확신과 확증편향 속에 추진하는 맹동주의에 있다. '좌'는 결국 자기와 생각이 다른 타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탄합하는 전체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궁극적 선'이나 '역사적 사명'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떠벌이게 되니, 그에 따른 문제와 폐단이 '우'보다 훨씬 더 크고 위험하다.  (책 453페이지)

중국의 좌경 모험주의 노선은 결국 설익은 혁명사상과 이념으로 수많은 민중들을 파탄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전 굳이 '좌와 우'로 편 가르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노자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양과 음이 그러하듯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은 극단적인 신념의 문제입니다. 신념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겠지만, 신념의 맹신은 자칫 불행을 몰고 오기도 하죠. 그래서 노자는 '경계를 걸어가라'는 말로 설명을 했나 봅니다. 


모든 사상은 시대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사라집니다.

마오쩌둥의 사상적 토대는 당시의 핍박받는 농민의 현실에서 시작되었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노선은 대약진과 문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중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급박함에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겠죠. 


"우리에게는 잘 사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가난한 사회주의는 필요 없다."_ 덩샤오핑


공산주의의 사상적 실험은 이미 실패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사회주의로서 과거 사회주의와는 다른 수정사회주의, 즉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험한다면서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변형된 논리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정의 내리면서 국민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려 노력을 하고 있죠. 

一带一路일대일로,中国梦중국몽,新时代신시대....


역시나 땅이 크고 사람이 많기에 'Top down' 즉 위에서부터 정책이 정해지고 실행되는 시스템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겠죠. 중국은 '띠따런뚜어地大人多‘ 하기 때문이니깐요.

하지만, 전 조금 다른 견해도 갖고 있습니다. 

제 분야의 업무를 진행하면서 많은 문제를 느끼는 것이,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하고 실행하는 많은 부동산 프로젝트들은 겉만 번지르할 뿐 시간이 지나면서 고스란히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프로그램의 부족, 콘텐츠의 부족, 운영의 미숙함과 금방 식어버리는 열정 등...


고위 공무원들의 실적을 위한 과시용 전시용 행정들로 많은 개발프로젝트들이 생명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요구와 이를 뒷받침 하는 풀뿌리 상업적 콘텐츠들이 있어야 개발프로젝트는 지속적 성공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엔 분명 전체를 이루는 조각들의 역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위로부터의 개혁은 일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정해진 대로 따르면 되기에 밑에서 올라오는 회의적 시선들은 무시하기 쉽습니다. 비판적 의견들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라주어야 중국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로 뭉쳐야 하기 때문이죠.


과연 그럴까요?

지금 이 시대는 개인 미디어 시대입니다. 모여서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가족이 같은 거실에 모여서도 자신만의 화면 속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세상과 소통합니다. 화면을 같이 보지 않고 링크를 공유합니다. 개개인의 관점과 시각이 자유롭고 다양화되어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사고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과 연동되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중국은 80세대들로 인해 변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개혁개방의 단맛을 제대로 느낀 이들 세대들은 과거의 모순과 미래의 희망을 고민하는 세대일 것입니다. 그들 눈에 비치고 드러나는 여러 사실들이 어떻게 판단되고 보이냐가 중국의 방향을 결정하겠죠. 

과거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사고만이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띠따런뚜어만 읊어대는 이들에게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장과정 속의 어느 시기에 접하는 경험과 지식들은 평생 영향을 주게 됩니다.

문화혁명의 광풍의 시대를 살아온 중국 장년층은 공산당의 치적을 숭배하고 광장에서 열심히 모여서 들 춤을 춥니다. 과오에 대한 비판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그냥 시키는 대로 '안전하게'살면 되던 사람들입니다. 말 조심하고 몸조심하면서 가정을 지키면 되는 거였죠. 그래서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연민을 덜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에게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개혁개방의 흐름 속에서 자본시장의 중요성과 선진문화를 경험하면서 자란 80 이후의 세대가 새로운 중국의 주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습관적으로 띠따런뚜어를 외치는 모습을 외친다면 그 변화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겠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도 결국 마오쩌둥의 죽음으로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렇게 쉽게 오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경험과 공감들이 서로 엉키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충돌이 항상 이어지며, 한세대의 소멸이 결국 새로운 세대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중국의 현대사를 책 한 권으로 모두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동안 조각으로 흩어졌던 지식의 편린들을 한번 묶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적어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인 박인성교수가 중국에서 공부할 시절 스승에게 여쭤봤습니다.


"선생님께선 마오쩌둥의 공功과 과過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建国有功 젠궈유공, 건국은 공이 있고

治国无方 즈궈우팡, 치국은 방법이 없었고 

文革有罪 원거유쒜이, 문화혁명은 죄를 지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한국인의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