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 시각이미지의 표현에 대하여
아내와 아이가 자고 있는 아침.
모처럼 일찍 일어나 호텔 내 헬스장에 갔습니다.
방을 조심스럽게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헬스장이 몇 층이었지?' 주의 없이 나와서 다시 방에 들어가려다 당연히 엘리베이터에 써져 있을 거 같아 그냥 탔습니다.
역시나 엘리베이터엔 헬스장이 쓰여 있네요.
근데 버튼을 누르니 불이 안 들어옵니다.
다시 카드를 대고 누르니, 그래도 불이 안 들어옵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는데, 불이 안 들어와서 로비층으로 향합니다.
데스크에 가서 헬스장층이 안 눌러지니 카드를 체크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친절한 모습으로 다시 카드를 체크해 줬고, 받아서 엘리베이터에 갑니다.
밖에서 버튼을 누르니 아침 일찍인데도 투숙객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서 계시더군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이번엔 문제없겠지 하는 심정으로 버튼을 누릅니다.
앗... 또 안됩니다.
여러 번을 눌렀는데도 안되네요. 이 난처함......
옆의 아저씨가 한마디 합니다. 옆에 35층 버튼을 누르라고요.
그제야 제가 잘 못 누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순간 쪽팔림이 확 올라왔지만... 그냥 어쩔 수 없이 웃음으로 모면.
잠시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니, 엘리베이터 버튼 디자인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실수를 많이들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을 아침식사를 하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니, 딸아이가 자기도 그렇게 했었다고... 하지만 바로 옆에 숫자 버튼을 눌렀다고 미련하게 계속 글 써진 버튼을 누른 제가 한심하단 투로 말합니다. 뭐 그 말도 맞긴 하겠죠. 카드를 들고 데스크까지 갔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버튼 설계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아니라고 해도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제 입장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는 이런 일들이 꽤 많이 발생합니다.
주로 길을 표시하는 표지판에 그런 오류들이 많이 있죠. 주차장 방향표시, 쇼핑몰 화장실표시, 도로 표지판등에서 이러한 오류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표지판의 중요성에 따라서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기에 특히 도로 표지판은 매우 신중하게 설치를 해야 하겠죠.
이런 표지판들은 적극적인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단순 사용자의 시각적 상황뿐 아니라 심리적인 상황도 같이 고려해 주면 더 좋겠죠. 디자인은 이렇게 섬세하고 세밀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동차전용도로 밑에 써진 글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도로 바닥 위에 세로로 써진 글을 읽을 때,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써지는지 아님 보이는 방향에서 위에서 아래로 읽듯이 글이 써져야 하는지 무엇이 더 나은 표현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 도로에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글이 쓰여있죠. 제가 기억하기론 한국은 반대입니다.
글 자체를 읽기엔 한국식이 더 편한 거 같은데, 중국은 다른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이 방식이 더 맞다고 누군가 판단을 했기 때문이겠죠. 개인에 따라 다른 관점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매번 이게 껄끄럽게 눈에 다가오는 걸 보면 분명 제 관점에서는 한국식으로 표현하는 게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시각 디자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곤 하죠. 아이콘, 픽토그램, UI, 인포그래픽, 로고, 다이어그램 등등. 내용과 용도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지만 모두 쉽게 내용이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채팅에 활용되는 이모티콘도 그중의 하나이겠죠.
문자가 있기 전에 단순화한 이미지가 있었고, 이런 이미지들의 발전하면서 기호화하고 문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소통을 위한 가장 원식적인 형태는 '그림'이었죠. 고대인들이 살던 동굴 속의 그림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어 표현하고, 누구나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언어. 그게 현대의 초과학시대에서도 여전히 필요하고 다양한 곳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들어가면 끝도 없이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전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이 아주 단순하면서 직관적인 버튼에도 실수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금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잘된 디자인은 불편함을 못 느낍니다. 그래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상황에 놓였다면 디자인이 정말 잘 된 곳에 계신 거죠. 불편과 불만이 생긴다면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어렵습니다.
예술이 내면의 나를 보여주는 작업이라면, 디자인은 다수의 행동과 생각을 읽고 불편함 없이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소통이 중요하고 평소 디테일한 관찰을 일상화하면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대단한 창의력에 의해 '희한한' 형태와 이미지가 나왔다고 잘된 디자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어렵게'찾아간 헬스장.
무사히 운동을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면서 이번엔 실수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봅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방법.
이제 하나 새롭게 배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