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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May 19. 2020

그들이 사는 세상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 (Product Marketer)


아디다스 본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아~ 그럼 신발이나 옷 같은 거 만드는 건가?


이 단순한 질문에 '응 그렇지~'라고 대답하는데 입사 후 일 년이 넘게 걸릴 줄이야. 전 세계 6만 명 이상의 직원을 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 부서, 그 안에서도 제품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마케팅 팀은 그중 0.5%에도 못 미치는 소수 집단이었다. 처음 본사에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이 집단에 대한 소문만 들어보았을 뿐 실체는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프로덕트팀' 또는 '크리에이션팀'으로 불렀으며, 그 구성원들은 PM(Product Manager)으로 불리는 듯했다. 그들은 어느 그룹에서나 미움과 애정 그리고 질타와 칭찬을 동시에 받는 참 신기하고 이상한 팀이었다.  


인턴으로 일하게 된 첫 팀은 글로벌 마케팅 부서 내에 프로젝트 팀.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마케팅이란 천상 캠페인을 기획하고 제품 홍보전략을 세우는 우리 커뮤니케이션 팀의 일과 옆에 앉아있는 PR팀의 일이 전부 인 줄로만 알았다. 6개월 인턴 생활이 거의 막바지에 다달아서야 깨달았다, 나도 '그들'과 함께 프로덕트 팀이란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걸. 샘플을 받아 시딩(Seeding) 플랜을 짜고 캠페인 계획을 수립하는 대신, 컨셉과 디자인을 고민하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그 일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와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사는 세상'에 입성한 지 만 1년. 제품을 만드는 그들이 사는 세상.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프로덕트 마케팅(Product Marketing)은 쉽게 말해서 제품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마케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광고, 캠페인 등 듯하다. 반면, 프로덕트 마케팅은 그 광고와 캠페인의 주인공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제품은 절대 혼자 만들 수 없다. 작게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부터 시작해 크게는 생산공장, 플래닝팀, 소싱팀까지 많은 연관부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많은 부서들 중 프로덕트 마케팅 팀이 가지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제품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는 점이다. 프로덕트 마케터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 있다면 결정을 '잘' 내리는 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정을 잘 내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지표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 마케터로서의 직감, 연관 부서들을 리드할 수 있는 리더십, 결정에 대한 비판도 생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 그리고 틀린 결정을 내리기 두려워하지 않는 깡이 필요하다.


우리 일은 제품의 종류와 가격, 타깃, 스토리 그리고 컨셉을 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제품 기획이 구체화된 후에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디자인 브리핑을 준비한다. 디자인 브리핑에는 디자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무드보드 및 컨셉, 그리고 필요한 경우 제품 색과 소재, 디자인 디테일까지 명시한다. 이렇게 브리핑으로 시작된 제품 생산의 여정은 디자인 팀, 개발팀과 함께 스케치와 샘플을 몇 번씩이나 수정하며 완성된다.


제품 생산이 끝나면 프로젝트도 끝이 나는 개발자나 디자이너와는 달리, 프로덕트 마케터에게 제품은 '내 아이'와 같다. 제품 준비 단계에서부터 제품이 그 수명을 다해 시장에서 사라질 때까지(Retail Exit) '끝'이란 없다. 제품이 ' 아이'라면, 프로덕트 마케터는 그 아이의 '보호자' (Product Owner)로서 내 아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의 책임자이자 첫 번째 컨택이 된다. 


내 아이와 관련된 수많은 불상사(!?)는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던 제품이 중국에 도착하는 순간 갑자기 라이선스를 침범하는 불법 제품이 되기도 하고, 제품 사진을 찍는 에이전시에서 사진이 유출돼 제품 론칭 6개월 전에 이미 인터넷에 제품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해도, 모든 스포츠 경기일정이 취소, 연기되면서 경기를 통해 론칭이 계획되어 있던 많은 상품들이 시장에 나올 타이밍을 놓쳤으리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라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마케터의 마음은 '대박은 바라지도 않으니 무사히 시장에 나가 사고없이 지내다오'에 가깝다. 물론 경험이 늘어날수록 이런 불상사 따위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거해 버리거나 미리미리 체크하는 노하우도 생기리라. 이렇게 하나의 제품이 탄생해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 열정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알고 보면 그 어떤 세상보다 단순하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스케치와 샘플을 가지고 일하며, 잘 나온 제품 하나에 울고 웃는다.


내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탄생한다는 점 아닐까. 세상에 없던 제품이 우리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올 때만큼 뿌듯한 순간이 없다. 지금 브런치에 쓰는 이 글이 인터넷에 남아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듯이, 내 제품도 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눈길을 받고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아직은 부족한 것 투성이인 신입이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기획부터 론칭까지 책임을 맡은 내 제품이 이제 론칭을 약 7개월 앞두고 있다 (주기적으로 날짜 세기는 필수). 그러니까 코로나야, 제발 그때까지는 잠잠해져 주겠니. 제품을 만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은 오늘도 내일도 세상에 내보낼 제품을 생각하며 울고 웃으면서 바쁘게 지나갈 테다.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우리들,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글로 세상을 울리는 브런치의 작가님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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