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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Nov 26. 2020

글 쓰는 이유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주제 같은 제목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왜 글을 쓰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쓰고 싶어 쓰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내심 다른 사람은 어떨지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다. 물론 돈이 0순위다. 이것은 작가뿐만 아니라 의사, 변호사, 디자이너, 개발자 등 직업이 가지는 의무이자 특권이므로 제외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것 말고 그렇다면 작가들은 왜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대답은 대부분 예상하는 대로다. 마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보편적이면서도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 보편적 천차만별의 도가니 속에 내 생각도 하나 넣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위의 근본 원인들이 대부분 충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동네 헬스장에서 체중 감량 성공으로 상금을 받았을 때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참 후 난 그 '의지'라는 것을 조정하는 또 다른 것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훨씬 더 근본적인 원인, 그저 남들보다 멋지게 보이려는 욕망이거나 혹은 그 보다 깊은 곳에서 발산되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충동, 이를 테면 나약한 의지력에 대한 타인의 비난을 피하고 싶은 충동 같은 것들이 내 의지에 선행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충동이라는 것을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에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의지대로 행동을 지속하거나 그만두기가 힘든 이유다. 글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쓰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또한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으로 글을 쓰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바로 '완전히' 무엇인가를 '통제'하려고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못하거나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이 높거나 혹은 낮다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굳건한 의지와 관계없이 글쓰기가 힘들어 질 때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라며, 마치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맺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지금 통제 가능성이 낮아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점차 통제 가능성을 높여 나갈 여지가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창조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통제 가능성을 높여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타인과 소통하고 나누기 위해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사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물론 글쓰기의 결과로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더 바랄 게 없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을 부끄럽게 여지기 않는, 바꿔 말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작가가 된다면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능력 밖의 일이므로 내게 있어 이런 의미 있는 일들은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글 쓰는 행위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높이며 지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다음 목적이 될 것은 분명하다.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 이것이 자유의 징표다
<니체, 즐거운 학문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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