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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11. 2022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여기 빈 방 없어요?



처음 피지에 갔다 돌아온 한국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 더욱 야속했다. 뜨겁게 내리쬐던 눈부신 햇살과 거칠도록 무성한 초록초록한 풍경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퓨어피지(피지 천연 화장품 브랜드) 바디 스크럽의 진한 망고향을 맡으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그리움을 삭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딱 필요한 것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피지언들의 삶 앞에서 나의 물욕이 부끄러웠고 부질없다는 생각은, 원하는 것을 가지면서 느끼는 행복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기념품 뿐만 아니라 아이들 옷이며 내 옷이며 무엇 하나 살 게 없는 것은 아쉽기보다는 오히려 편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인 것과 다른, 꾸미거나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서의 삶인 듯했다.


윤아는 영어 하나 못하지만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 덕분인지 적응력이 뛰어났다. 땅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며 맨발로 걸어다니는 피지언을 따라 윤아도 맨발로 걸어다녀 발바닥은 매일 까맿고 한국에 와서도 뒤꿈치 지문 사이사이의 피지의 때는 남아있었다. 윤아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She is Fijian. 내가 너무 가고 싶다는 마음은 꽁꽁 숨기고 아이가 이렇게 적응을 잘 하는데 가야 하다고, 또 가야하는 이유를 찾고 합리화 했다.


어딜가나 피지언같다는 말을 들은 윤아


약 50여 개 이상의 국제기구가 있는 피지는 업무적으로 머무르는 가족단위의 외국인이 많아 최소 3~6개월 이상의 렌트가 보통이라 한 두 달 정도 머무르는 숙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운 좋게 한국 분의 도움으로 중국인이 주인인 코코넛 나무로 만든 가구가 있는 새 아파트를 렌트할 수 있었다. 작은 마당 겸 주차장을 둘레로 담이 있어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기에도 안전했다. 학교 후 가방을 마당에 집어던지고 아이들 소리가 나면 우리 아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또래로 보이는 옆집 인도 친구가 뛰어나와 깔깔거리며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현관문은 열어 둔 채로 아이들은 우리집 인도친구 집 안까지 왔다갔다 하며 놀았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저녁 준비를 했다. 주변에 한국분들도 많은 편이고 환경이 좋았지만 학교에서 너무 멀어 등하교 시 택시를 타고 다녔다. 택시를 못잡아서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발을 동동구르던 어느 날은 지나가던 집주인 아주머니가 학교까지 태워 주셨고, 콜택시를 예약해도 안 오는 경우가 있어 애를 먹었다.



택시를 타러 걸어나가는 등교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다음 학기에는 어디서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수영장이 있는 하얀 2층 집에서 학교 오너 크리스털이 걸어 나온다. 이 멋진 뷰의 수영장이 있는 하얀 2층 집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학교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궁금했던 터라 크리스털에게 여기가 너의 집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와우, 여기 빈방 없어요? ' 다짜고짜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에 나도 머쓱해져 농담이라며 웃었다. 크리스털은 몰랐냐며 우리는 에어비앤비도 운영학고 있으며 학교 건물 뒤에 바로 붙어있는 건물이 에어비앤비 아파트라고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건물 구조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파트였다니!  학교 직원 안디가 담당자이니 비어있는 방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알려주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학교로 뛰어들어갔다.


야호! 이게 웬일이야!

학교 건물과 바로 붙어있는 에어비앤비라니!

아침에 택시 안 타도 되고 트래픽도 없고!

게다가 학교와 거래하니 사기당할 걱정도 없고!


들떠서 하늘까지 올라갔다 온 내 마음과 달리 안디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금은 예약이 다 찼고 다음 학기는 미리 예약할 수 있다고 컴퓨터 화면만 응시하며 툭 내뱉듯 말했다. 안디는 늘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우주까지 갔다 온 기분인 걸! 그 후부터 나는 피지를 떠나기 전에 다음 학기 집과 학교 등록을 위한 예약금을 지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피지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던 학교 오너의 에어비앤비 하우스


어느 한국 분께서 피지에서 돈이 되는 사업은 렌트하우스 사업인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렌트하우스의 가격은 물가 비싼 한국의 한 달 렌트비보다 비싸다. 국제기구는 월세의 80% 정도를 지원해 주는데 그것이 월세 몇백 이상의 집이어야만 하는 최저 금액이 있기에 외국인 대상 렌트하우스의 최저 금액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회사의 지원을 받으려면 비싼 아파트 일 수 밖에 없다고 국제기구에 다니는 아이들 친구 부모님들이 귀띔해 주었다. 그래서 늘 친구들 집은 수영장이 있는 좋은 새 아파트였구나를 실감하며 한편으로 작은 섬나라들을 도와주러 온 국제기구 때문에 땅덩어리 작은 섬의  집 값만 올려놓고 정작 이 땅의 주인인 피지언들은 그런 좋은 아파트에서 한번 못 살아보지 않냐 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피지에도 부동산이 있지만 안전하고 괜찮은 컨디션의 집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 렌트보다는 중. 장기 랜드를 하는 아파트가 많아 발품을 팔아 집주인을 만나보고 집 컨디션을 보고 구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간혹 인도인 주인을 만나면 보증금을 반납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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