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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16. 2022

피지를 즐기는 방법

한국에서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피지에서 나만의 시간을 계획하고 상상하느라 들떠 마음은 늘 피지에 있었다.


처음에는 마트나 시장을 가서 상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살 게 있건 없건 매일 마트에 갔다. 해외에서의 마트 구경은 빠질 수 없는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과일을 좋아하는 나는 주로 여름나라 과일들을 공략했다. 한국에서 패션프루츠 에이드로 밖에 접해보지 못했던, 잘 익은 패션 푸르츠를 반으로 잘라 수저로 퍼먹으며 달콤 새콤한 행복을 느꼈다. 피지에 오래 사신 한 일본인 아주머니가 끓여주신 레몬글라스 티를 먹어보고 여운이 남아  레몬글라스를 사서 끓여 먹어 보기도 했다. 이상하게 내가 끓인 것은 쌉싸름하니 기름도 둥둥 뜨고 맛이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또 블로그에서 뉴질랜드나 호주 여행 쇼핑리스트를 검색하면 유명한 영양제나 스킨 바디 케어 제품들을 피지 마트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이런 수입제품들을 써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혼자 오픈 윈도 버스를 타고 타운에 내려서 마트에 가는 길에는 발을 오려놓을 나무 받침대 하나에 수건 하나 들고 앉아있는 구둣방 상인도 만났다.  1년 내내 여름나라라 조리 하나만 있으면 될 법한데, 게다가 이곳은 맨발 전통이 있는 나라인데 구두닦이라니. 멀리서부터 가까이 지나갈 때까지 눈길을 피하는 법도 없이 온 시선의 타깃은 나. 쪼리 신은 내 발을 들어 보여주니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이 빵 터진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비건 카페에서 혼자 책을 펼쳐 드는 날도 있었다. 책은 장식품일 뿐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이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영어 듣기 평가하는 듯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알리앙스 프랑세스에서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에서는 피지에 사는 유러피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대부분 국제기구에 다니는 그들은 사는 곳이나 나이보다 자신의 제2, 제3 외국어가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소개는 언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현지인 친구 조(Joe)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테솔(TESOL) 공부도 하고 자격증을 수료하는 성취감도 맛보았다. 


해변에서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하기에 영어 과외나 각종 운동도 배워볼 만했다. 골프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에게 홈스테이 주인분께서는 피지가 골프로 유명하니 한번 경험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실내 골프 시설이 없기에 초보자도 필드에서 똑딱이 수업을 받을 수 있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땀범벅이 되어도 기분이 좋았다. 수영, 테니스 등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운동을 도전하며 육아로 10년 가까이 집에만 있던 몸을 맘껏 풀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일본인 마나까의 엄마는 일본인들의 BRIDGE라고 하는 카드놀이 모임에 나를 데려가 주었고, 아시안 레이디 모임에도 초대해 주어 피지에 사는 외국인 엄마들의 문화를 접해 볼 수 있었다. 현지인 혹은 이곳에 사는 외국인들과의 약속이 있는 날이면 그 어떤 날보다 아침부터 들떴다. 심한 일본 억양의 짧은 영어를 쓰니 나와 영어 실력이 비슷한 것 같아 그녀와의 만남은 늘 마음이 편했는데 이런 모임이 익숙해서 인지 그녀는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었다. 그동안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에 맞춰준 것 같은 숨겨둔 그녀의 영어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아 깜짝 놀랐지만, 덕분에 피지에서의 나의 시간은 한시도 심심할 틈이 없이 바쁘고 매일이 새로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점심 도시락도 싸야 하고 나도 아이들 등굣길에 서둘러 나오지만 신기하게도 피지에서는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아이들 학교 가기 전에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독박 육아에 숨 돌릴 틈 없었던 나에게 이 시간은 활력 그 자체였다. 딸아이만큼이나 피지 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었지만 신기하고 대견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대학교때 적극적으로 유학이나 가볼걸! 아쉬움이 남는다 하하 



피지의 한 호텔 골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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