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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킬러 Feb 25. 2022

<#살아있다> 격리하는 것과 격리되는 것

영화 <#살아있다>


밖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괴물들이 장악하고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자기 집에 갇혀 있다. 먹을 것도 떨어지고 삶에 대한 희망도 잃은 그가 자살하려는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 자신처럼 고립된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힘을 합쳐 이 지옥을 탈출한다.


너무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영화였고, 당시 <부산행>과 <킹덤>의 성공에 이어 계속되는 K좀비 소재 영화에 대한 식상함이 있어 그닥 새로울 것이 없을거란 선입견도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이 영화를 골랐다. 보통은 영화를 보며 가슴뭉클한 감동이나 반전의 묘미를 기대하지만, 가끔은 적당한 액션과 예측 가능한 결말이 더 편한 때도 있는 법이니까.


격리중이었다. 중국으로 입국하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호텔에서의 2주 고립. 하루 종일 방안에서만 지내도 혼자서 잘노는 나같은 인간이면 평소처럼만 하면 되는 건데, 이게 웬 축복같은 시간인가 싶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맘대로 실컷 자고 싶을 때까지 잘 수 있고, 주부에게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해주는 밥만 먹으며 지낼 수 있다니 말이다. 일주일은 행복했다. 보고 싶은 영화 실컷 보고, 읽고 싶었던 책도 맘껏 읽고, 잠도 실컷 자고. 하루에 두 번 하는 체온체크도, 문앞에 두고 간 식은 밥을 먹는 것도 다 괜찮았다. 그런데 조금씩 하루가 길어졌다. 호텔 문이 열릴 때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을 참아야했다. 내가 내 의지대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다는 생각만하면 숨이 턱턱 막히며 잘 쉬어지질 않았다.


호텔 방안을 계속 왔다갔다하며 하루에 만보를 채우고, 햇볕을 못 보니 필요할거라 생각해 챙겨갔던 비타민D도 매일 챙겨먹었다. 친구와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가족들과 통화를 해도 호텔방의 문지방을 넘고 싶다는 갈급만 날로 심해졌다. 그 때 이 영화를 봤다. 좀비들로 가득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 집에 갇혀 있는 주인공 준우(유아인 배우)를 보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물론 나의 경우엔 바깥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감염자’로 갇혀 있는 것이었지만.


영화를 본 이후로도 ‘신체적 자유’를 향한 갈망은 여전했지만, 영화처럼 다수의 위험한 존재로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스리슬쩍 낙관론으로 내 자신을 세뇌하기도 하고, 격리도중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도움을 요청하라는 자료의 존재로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지한 덕에 다행히 ‘탈텔’(탈출호텔)‘을 시도하지 않고 무사히 격리를 마쳤다.


가끔 뉴스에서 듣는 ‘자가격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 때 내가 경험한 2주의 격리가 호텔이 아닌 집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하긴 가끔 며칠 동안 집에만 있는 날도 많은데, 나의 일상이 그냥 자가격리 자체였던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준우, 너도 자가격리였구나. 그리고 너는 너의 의지였고 나는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 이제 알겠다. 아마도 그래서 그 때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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