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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킬러 Aug 02. 2020

<파수꾼>흐릿하고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

영화 <파수꾼>


★★★★★

아직은 흐릿하고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감정과 불안한 소통방식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는 한 무리의 남고생들이 흐릿하게 초점이 나간 흔들리는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며 시작된다. 몇몇이 피워대는 담배연기 사이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폭력을 행사한다. 욕을 하며 발로 차고 또 차고, 아무리 때려도 분이 안 풀리는지 주먹으로 얼굴을 끝도 없이 가격한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다.


학교에서 주먹으로 '짱'노릇을 하고 있는 기태(이제훈 배우)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동윤(서준영 배우),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된 희준(박정민 배우)과 같이 야구도 하고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놀러 가기도 하는 친한 사이다. 하지만 기태와 희준의 사이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기태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희준은 전학을 결심하고, 동윤마저도 기태와의 관계가 나빠지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결국 혼자 남게 된 기태는 자살하고,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장례식에 오지 않은 두 친구를 찾아 나선다.






기태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한 영화는 기태와 친구들의 관계가 허물어져가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엄청난 강도로 기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희준의 모습이 먼저 나오고, 세 친구들이 오붓했던 과거의 모습이 나중에 나온다. 거기에다 기태의 아버지가 아들이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까지 중간중간 끼어들며 과연 스토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때쯤 우리는 이미 감독이 탄탄하게 쌓아놓은 이야기를 딛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푹 빠져 버린다.



니 친구 아무도 없어.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고.


엇갈린 큐피드의 화살로 시작된 균열과 부모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서먹해진 기태와 희준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다. 계속되는 기태의 폭력과 괴롭힘에 희준은 지쳤고 기태가 하는 사과의 말에도 거침없이 모진 말을 내뱉는다. 기태는 전학 간 희준을 찾아가 자신이 제일 아끼는 야구공을 선물이라며 던져주지만 그래도 그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너의 진정한 친구였다고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희준을 괴롭히는 기태에게 시작된 반감이 증폭되다 여자친구 세정의 일로 폭발하게 되는 동윤 역시 마지막 부탁이라고 사과하는 기태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제 기태에게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지더라도 그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종종 친하게 지내는 세 사람을 '삼총사'라 부른다. 혼자가 외로워 보이고 둘은 단출하다면 셋은 왠지 구색을 갖춘 인간관계라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삼각형을 머릿속에 그려볼 때마다 셋만큼 불안정한 구도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각형이 안정되게 두 개의 꼭짓점을 한 면에 놓고 나면 남은 하나의 꼭짓점은 항상 혼자여야 하니까.


내게 기태는 홀로 떨어져 있는 삼각형의 한 꼭짓점 같아 보였다. 엄마의 부재라는 마음의 상처가 깊으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고, 친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다 그들과 점점 더 멀어져 버린 외로운 꼭짓점.


용서받지 못하고 떠났던 기태, 용서하지 못해서 아플 희준과 동영, 영화의 첫 장면처럼 아직은 흐릿하고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감정과 불안한 소통방식이 다시 봐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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