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작가 정유정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녀를 베스트셀러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히트작 <7년의 밤>부터 시작해 <28>, <종의 기원>, <진이, 지니> 가장 최근에 나온 <완전한 행복>까지 출간되는 족족 챙겨 읽었다. 그뿐인가. 그녀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에 발표된 <내 심장을 쏴라>,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그리고 그녀의 유명한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데뷔작 <열한 살 정은이>마저 어렵게 찾아 읽었으니, 나름 찐팬이라 자부하고 있다.
그녀의 책은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한다. 박진감 넘치는 탄탄한 스토리, 특유의 유머와 리듬감 있는 문장들로 읽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근원적으로 지독하게 못돼 처먹은 악의 존재를 그리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작품만 읽고 작가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덮어두는 편인 내가 인간 정유정이 궁금해진건. 악의 마음을 그렇게 잘 묘사하는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혹시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정신이 온전할 땐 내면에 그득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성향을 글로 토해내듯 쓰고 평소엔 그 성향때문에 은둔해 살고 있는 히키코모리?
이 책,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어쩌면 나같이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하는 독자를 위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나온 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녀의 소설 <28>을 끝낸 직후, 세상을 향해 할 이야기가 넘쳐나던 작가의 엔진에 이상이 생겼단다. 그래서 한 번도 떠나보지 않았던 해외 여행을 결심하는데, 그 목적지가 바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늘어져 푹 쉬다 돌아오는 그 많은 휴양지를 마다하고 고산병의 위험이 존재하는, 고생길일 게 뻔할 산악트레킹을 선택하다니. 역시 정유정답다고 할 수 밖에.
해외 여행이 어려운 지금 같은 때에 읽는 기행문이니 좋을 수 밖에 없었고, 독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스토리가 없는 에세이임에도 역시 그녀의 글은 재미났다. 길치에 짐정리도 잘 안되고 덜렁거리고 욱하는 성격의 그녀때문에 웃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와 지금까지 씩씩하게 가족을 지키며 살았던 이야기엔 마음이 찌르르 아팠다. 현지 음식은 입에 안맞고 변비와 고산병에 고생을 하면서도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쏘롱라패스를 올라갔다 내려온 그녀는 결국 힘들었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녀를 지치게 했던 것은 삶이 아니었고, 자신의 본성은 싸움닭이라는 것을. 그리고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도 15년 전, 네팔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안나푸르나의 트레킹을 꿈꾸며 포카라로 향했건만. 하필이면 내가 도착했던 그 때, 무장한 마오이스트들이 길을 막고 여행자들에게 돈을 뺏거나 현지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더랬다. (가끔 있는 일이라는데 이런 상황에선 트레킹은 전면 정지, 뿐만 아니라 차들도 안다닌다) 덕분에 포카라에서 2주 내내 차도 없는 거리를 소들과 같이 산책하고 종일 자전거를 타며 상태가 좋아지길 기다리가 결국엔 포기하고 다음 여행지인 인도로 출발했었다는 슬픈 기억이 있는 곳.
안나푸르나에 오를거라는 내게 겨울낚시할 때 쓰는 핫팩이 많다고 챙겨줬던 친한 동생의 남편은 아직도 나를 ‘히말라야 언니’라고 부른다. 작가는 전력을 다해 계속 죽도록 싸우다 힘이 다 떨어지면 한번 더 다시 안나푸르나로 가겠다고 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는데, 내게 과연 다시 한 번 안나푸르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긴 할까? 어쩌면 답은 정유정 작가가 히말라야행에 품고 갔다는 책 <떠다니네>의 한 구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이 떠돈다. 붙박였다고 갇힌 게 아니고, 떠난다고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맹그로브 씨앗이 바닷물에 떠다니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죽을 때까지 떠다니는 숙명을 벗을 길 없다. 떠나온 곳을 모르니 돌아갈 곳인들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