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리 좀 됐어요?”
“응.”
“표정 보니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갔다 왔나 보네.”
“어디까지가 멀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움, 분노, 자격지심, 창피함 등등이 연달아 왔다 갔어요.”
“멀리 간 거 맞네요. 킬킬.”
“근데 마지막에 든 감정은 고마움과 의문이에요.”
“잘 돌아왔어요.”
“의문이 뭔지는 안 궁금해요?”
“궁금해. 그리고 말해주겠지.”
“왠지 뭔지 알고 있는 표정이네.”
“글쎄. 나야 모르지.”
“다른 뜻이 아니라, 당신은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줄까 싶었어요. 문득 정말 다른 뜻이 아닌데.”
“알아. 그냥 말 그대로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잖아.”
“응. 머리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도 복잡해서 그런가. 얘기 잘 듣고 이해도 잘했는데 자꾸 가슴이 간질간질하네.”
“그건 내 말의 어딘가가 당신 가슴을 건드려서 그러지 않을까?”
“그런가. 방금 혼자 내내 생각해봤는데, 내가 곁에서 말을 듣다 보면 느낌 상 도령 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아.”
“뭔데요?”
“첫 번째는 그냥 말하는 거, 두 번째는 내가 물어봐서 대답해주는 거, 그리고 세 번째는... 뭔가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나와 조금 다른 분류법이지만 얼추 맞는 것 같은데.”
“도령의 분류법은 뭔데?”
“최대한 당신 표현에 맞춰서 말하자면, 내 말의 속성은 마찬가지로 셋이죠. 주는 것, 받는 것, 주고받는 것.”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당신이 말한 뜻을 내 방식으로 표현한 셈이에요.”
“도령이 말한 게 도령이 받는 게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 내 말뿐만 아니라 당신 말도, 그리고 우리 대화도 전부 마찬가지야. 관계에서 이루지는 소통은 나에게서 당신으로 가기도 하고, 당신에게서 내게로 오기도 하고, 우리 둘을 오가기도 하지. 내가 말했으니 내게 올 리 없고, 당신이 말했으니 당연히 나에게 오는 게 아니야. 화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소통의 성격에 따라 방향성은 다양하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근데 어렵네.”
“어쨌든 의문이 들었으니 대답을 해줘야겠지. 대답이 필요한 의문일 경우지만. 어때요?”
“응. 들을 수 있으면 듣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당신 최대의 장점이자 강점이 뭔지 알아요?”
“뭔데요?”
“당신은 외부 폭발에 대한 발화점이 엄청 낮아.”
“...내 식대로 다시 말해줘요.”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아주 수많은 것들을 주고받죠. 물질적인 것부터 추상적인 것, 사상적인 것, 감정이나 느낌, 눈빛이나 제스처 등등. 우리 생각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양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고 그런 것들 안에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훨씬 어마어마한 의미들이 숨어있어요. 근데 사실 그것을 주는 사람도 그리고 받는 사람도 그 깊이와 의미를 잘 몰라. 오롯이 깨닫기 힘들지. 또 그게 소통의 한계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서로 호수 같은 의미들을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느끼고 가져가는 것들은 컵 하나 분량뿐이에요.”
“...잘 듣고 있어요.”
“좋아, 눈 보니 집중력 최고조네. 나는 그래요. 굳이 시적으로 표현하면 부는 바람 안에도 운율과 노래가 있고, 내 식대로 표현하면 어린 아이의 손짓 안에도 태산 같은 깨달음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 순간 모든 것에 대해 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것이 내가 피곤하게 살게 되는 근간이 되고 모든 것에 과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되는 부작용도 일으키지만, 그거야 내가 그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 또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나는 사소한 손짓 안에서 커다란 의미를 잘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야.”
“반대 아니에요?”
“원래 그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서 더 잘하려고 그만큼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줘요. 나는 눈치가 빠르고 직관적인 사람임은 맞지만 아주 감각적이거나 천재적인 센스는 없다고 자각하니까. 그래서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사람보다 적게 느끼고 조금 얻는 게 참을 수 없이 속상하고 괴로워요. 그래서 더 빼먹으려고 발버둥치고 욕심 부리는 중이에요.”
“욕심이 과하긴 하네요. 지금도 충분히 많이 빼드시는 것 같은데.”
“버둥거림의 소치죠. 그리고 그런 말을 당신에게 들으니 조금 울컥하는 이유는, 당신은 노력 없이도 다른 사람보다 그런 것들을 잘 빼먹는 사람이거든.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런 설계로 되어 있어. 게다가 당신 역시 노력을 할 테니 빼먹는 양은 더 늘어나겠지. 그게 그 말이에요. 외부폭발에 대해 발화점이 낮다는 말은, 보통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평범한 말에도 당신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는 거지.”
“그런가. 잘 모르겠어요.”
“내가 본 바로는 그렇더라고. 솔직히 이 부분이 내가 당신에게 가장 부러운 능력이고, 당신과 함께 있을 때 탐이 나다 못해 자격지심조차 드는 점이야. 그리고 이건 좀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이 나이까지 당신의 인생을 결정지었던 가장 큰 요소는 남들보다 가깝고 직렬적으로 느꼈던 그 깨달음을 누군가 컨트롤해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해. 말하자면 그런 거야. 당신이 자라오면서 그 재능으로 인해 적정 시기보다 빠르게 뭔가를 깨닫고는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또래의 보통 아이처럼 생각했을 것 같아. 당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거고, 그러니 그런 깨달음을 거쳐 벌써 그런 고민까지 하고 있을 거라고도 예측하지 못했을 거야. 알았으면 충분히 주변에서 컨트롤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부분인데, 인식하지 못한 시선은 본의 아니게 방치가 되어서 당신을 괴롭게 했겠지. 물론 커서야 많이 나아졌겠지만 특히 어렸을 때는 그 부분이 당신을 가장 외롭게 하고, 주변과 동 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싶네. 소위 말해 철이 엄청 일찍, 빨리 드는 애였던 거지. 단지 철이 든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든 주변 아이들과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감의 구성 요소 중에 이런 부분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어.”
“...뭐야, 차분하게 듣다 보니 내용이 엄청 멀리 갔잖아!”
“이거 봐.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이라도 이쪽 이야기 하면 표정이 싹 굳거나 엄청 어두워지거나 그랬는데, 이제는 이렇게 받아치기까지 하잖아. 나는 그거 익히는데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는데, 당신이 참 쉽게 하는 거 보면 가끔 속이 쓰려.”
“...아무튼 그렇게는 생각 안 해봤어요.”
“당신도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도 그랬듯이, 당신의 어린 시절은 사실 별 다른 사건이나 큰 트러블이 없었잖아. 정말 무난하고 평범하게 자라왔지. 그럼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해도 당신의 표정이 굳거나 어두워질 이유가 없어. 근데 막상 그 무렵 이야기가 나오면 당신은 마치 아주 큰 트라우마를 품은 것처럼 반응해. 이게 그 반증이야. 무난해 보이는 과거가 실제 당신에게는 전혀 그런 색깔과 그림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런가. 심각하게 생각 안 해봐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난 뭐 별 거 없이 자랐는데.”
“난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당신이 가진, 동시에 내가 당신에게 부러운 최고의 강점이자 장점이라고. 물론 혼자의 힘으로 들기에는 조금 무겁고 균형 잡기 어려운 무게중심을 가진 능력이라 옆에서 누군가가 툭툭 건드려주며 도와준다는 전제하에.”
“근데 어디서 그런 걸 느낀 거예요?”
“평소부터. 그리고 오늘도. 방금 나는 당신에게 어떤 ‘방법론’에 대해 제의를 했어요. 그 방법론은 사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이, 무난하고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내용이에요.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는 당신은 펑 터져버렸죠.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나는 그랬어. 또래에 비하면 꽤나 여러 분야, 다양한 나이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랐고 그 사람들과 많은 종류의 사상적 소통을 하면서 살았어요. 물론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그때마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빈번하게 돌아오는 반응은 ‘나도 알아’였어요. 그건 맞는 말이야. 내가 아까 말했던 주제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니까. 단지 전달과 제의를 위해 그걸 약간 방법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뿐이지. 그래서 그래.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좀 먹는 위험한 얘기가 ‘아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알고 있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생각해보지 않는 거야. 깊게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버려. ‘잘 모르겠어’의 자매품처럼, 알기만 할 뿐 실제 하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아는데 잘 안 되네’라고 아주 쉽게 말하게 돼. 괜히 자매품이 아닌 게,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고민하고 실행할 기회를 닫아버리는 거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아는 것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도 잘 안 된 거면 그 사람은 이미 다른 방법을 찾는 단계였을 거야. 이런 서로 뻔히 아는 이야기가 둘 사이에 굳이 나올 필요가 없지. 자연히 나와 나누는 말도 그 다음 단계에 대해서였을 테고.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이 부분에서 헤매며 나와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거야.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바를 실행하는 데 최선을 다 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너무나 쉽게도 ‘아는데 잘 안 되네’라고 말해버려.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껏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마치 최선을 다 해본 것처럼 포장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가능성을 스스로 막아버려. 정말 최선을 다해봤다면 똑같이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해도 그 과정 중에 이미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을 거야. 그것을 찾지 못한 채 손에 들고 있는 패가 아직도 그거 하나라면 더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았다는 거지. 인간이 길을 찾는 섭리는 원래 그러니까. 그러니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막힌 길에서 다른 방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른 어떤 가능성조차 찾지 못했다면 최선을 다해본 건 아니라고. 다른 패가 없다는 게 그 증거야. 하지만 보통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근데 왜 길이 더 없냐고 좌절하지. 아직 더 해볼 수 있는 구멍은 ‘아는데 잘 안 돼’라는 덮개를 씌워놓고.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 아는 게 가장 좋지 않다고 봐요. 그 좋은 예가 바로 나고. 그 ‘나도 이미 아는 얘기’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독이야. 상대의 말에 대해, 세상의 이야기에 대해, 의미 속에 담긴 속뜻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외부 폭발에 대해, ‘나도 알아’라는 생각은 그 발화점만 확 높여놓는 거야. 그래서 어설프게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새롭게 뭔가를 배우기 힘들어지고, 아는 것을 다시 되새기기 어려워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깜빡했든 아니면 다른 것에 가려져서 잠시 안 보였든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깨닫기 요원해져. 어설픈 엘리트들과 가장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 말이야. 보통은 이런 부분이 있어.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이게 강하고. 근데 당신은 좀 반대야. 그게 가장 부러운 점이지.”
“......”
“예상컨대, 아마 당신은 옛날 어렸을 때부터 그랬을 거야. 뭔가에 쉽게 터지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터진다는 것은 무엇을 깨닫고, 충격을 받고, 느끼고,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이죠. 사소한 걸로도 펑펑, 다른 말로는 예민하거나 섬세하다고도 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면 사실 어찌 살아왔을지 알 것 같아. 아마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왜 나는 다르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왜 나만 이러지?’로 연결되는 나만의 고민. 주변을 둘러보며 주변과 나의 괴리에 낯설어하던 시절.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충 어찌 살아왔는지 들었으니 내 예상에는 그런 당신을 부모님께서 속속들이 건드려주진 않으셨던 것 같아. 물론 잘 키워주셨지만 당신은 늘 동떨어지고 외따로 걸어왔을 것 같아. 오빠도 있지만 사실 몇 살 차이 안 나고, 본인 살기 바빴으니 오빠가 당신을 제어해주지도 않았을 거야. 친구들은 더더욱 그렇지. 그러면 당신은 괜찮은 가족 안에서, 괜찮은 친구들과 함께 자라면서, 겉은 웃으면서 속으로는 의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아. 같은 것을 보고도 주변과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자신을 비교해보면서 ‘왜 그렇지?’와 ‘왜 안 그렇지?’ 이 두 가지가 당신의 유년 시절을 지배하는 가장 커다란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신의 고락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어요. 물론 누구나 그렇긴 하지만, 살면서 무슨 사건이 있고 어떤 경험을 했느냐만 가지고 그 인생의 난이도를 추정할 수 없어. 왜냐면 당신의 겉과 속은 보편적인 기준보다 훨씬 동떨어져 있었을 테니까. 겉으로는 무난해 보이는 도시였지만 속에서는 정신없는 시가전 중이었을 거야. 평화로운 숲인 외면과 달리 내면에서는 게릴라가 한창이었겠지. 뭐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왜인지 모른 채로 혼자 힘들어하며 살았을 것 같아. 하지만 겉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어. 나를 힘들게 할 만한 뚜렷한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힘겨움을 느끼면서도, 대놓고 모든 것이 힘든 사람처럼 계속 안으로 파고들어갈 명분도 없어. 그러니 겉과 안이 점점 괴리되면서 멀어지는 거야. 친구들과 다 같이 웃어도 한편으로 이질감이 들고, 누군가 함께 있어도 가슴 속은 휑하니 외로워. 점차 즐거움은 그 원래의 색을 잃고, 일상은 씹지 않은 떡을 삼킨 듯 답답해. 괴로움에 익숙해지면서 그와 동화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거야. 근데 전체적인 환경만은 ‘괜찮아’ ‘나쁘지 않아’라고, 종합 평가 등급에서 ‘B+’나 ‘Not bad’가 되는 거지. 그러면서 차츰 외부로부터 도태되지 않았을까. 학교를 다니고 응당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신은 자꾸 뒤로, 안으로 물러났을 거야. 그러다보니 지극히 해야 하는 것들, 등교라든가, 식사라든가, 출근이라든가. 또는 지극히 기본적인 관계들, 인사를 한다든가, 가볍게 수다를 떤다든가, 회식에 참석하고, 안부를 묻고, 간혹 다가오는 정기 모임에 얼굴을 내민다든가. 남들보다 자주, 많이 찾아오는 외부폭발을 조절하지 못해 허덕이다가 결국은 감당할 수 없게 되어서 그 외부폭발을 가져오는 주변을 차츰 밀어내는 거야. 그렇게 혼자서 외로움에 곪아가며 한동안 그 상태를 즐기다가, 이러다 자신이 아예 사라져버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두려워지면 다시 밖으로 나가. 밀렸던 만큼 모아놓은 돈을 쓰며 사람을 만나다가도 어느날 불현듯 어금니 사이 가득한 이질감을 느끼고는 도망치듯 집으로, 아이들에게도 숨어. 그러면서도 괴로워하지. 이렇게 선 근처에서 양쪽으로 도피하는 일은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이니까. 알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서 이도 저도 아니게 경계에 낀 삶을 계속 살게 돼. 그러다 보니 지금 이 나이.”
“......”
“내가 일 년 동안 봐왔던 당신은 이런 느낌이었어요. 나 혼자 잘도 떠들어댔네. 사실 방금 내가 열심히 주절거린 내용은 당신에게 이 자리에서 악담을 듣거나 심지어 뺨을 맞거나 커피를 뒤집어써도 할 말 없는 내용이에요. 크게 다투고 일주일쯤 연락이 안 되거나, 심하면 관계 자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발언이지. 생각하기에 따라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의, 지레짐작과 매도로 점철된 자기 멋대로의 아주 악질적인 말이었을 수도 있어.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 네가 뭘 안다고 멋대로 지껄여. 뭐 이런 소리 들어도.......”
“그만.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럼? 어떤 생각이 들어요?”
“모르겠어. 나 지금 좀 혼란스러워.”
“나는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간 당신을 보면서 사실 자격지심이나 질투도 꽤 있었죠. 그런 당신의 능력, 당신에게는 괴로운 점이겠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탐나는 점이었거든. 그리고 동시에 당신이 어찌 살아왔을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고,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공감도 많이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이런 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이 전제가 사실이라면 당신이 지금껏 평생을 바라왔지만 그것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누구에게도 손내밀지 못했던 부분을 내가 충족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주제 넘은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 지금 당신보다 몇 배는 더 반짝이고 아름다운 당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어.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멋있어졌지만 사실 지금도 어디 한 쪽이 무너져있는 사람 같아서. 무너져 움직이지 않는 왼쪽은 놔두고 멀쩡한 오른쪽으로만 더 열심히 사는 중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이런 쪽이 아닐까. 정말 민감한 부분이고, 누가 그쪽으로 손이라도 뻗을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러날 부분이니까 섣부르게 말을 꺼내진 않았어. 내 가정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차근차근, 꾸준히 지켜만 봐왔지. 근데 지난 일 년 동안 봐온 당신은 역시 그렇다고 결론이 나더라. 그러면서 동시에 이게 당신이 가진 '어둠'이구나 싶었어. 어둠은, 타인이 어지간해선 손댈 수 없고 섣불리 손대어서도 안 되는 '그 사람이 가진 삶의 구멍이자 마음의 나락'이지. 그래도 내 손이라면 닿지 않을까. 당신의 어둠만큼 검은 내 손이라면 그걸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당신도 원하는데 모르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 과정 속에서 당신도 나도 많이 배우고 부대끼고 아프고 울더라도 결국 웃을 수 있보면 우리 둘 다 더 괜찮고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참, 사람 욕심이라는 게 이래. 무도하고 제멋대로지. 당신은 나에게 그래달라고 말 한 적 없는데 내 멋대로 판단하고 내 멋대로 행동하게 돼요. 그게 정답이라고 믿으면서.”
“......”
“나는 이래. 이런 욕심이 많고, 끝도 없어. 우리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지금껏 내 욕심으로 빗어낸 깃발을 내 멋대로 휘둘러왔어. 그래서 참 많이 싸우며 살았어. 나만 잘못한 관계들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내 잘못 하나 없는 관계 역시 아니었지.”
“알 것 같아, 나도. 지금껏 도령이 지난 사람들과 어떤 문제로 어떻게 다퉈왔을지.”
“아까 말했듯이 나는 당신에게 하나의 제시를 했지. 지극히 평범한 방법론이었고 담긴 의지도 단출해. ‘이런 방법은 어때?’라는 거였고 또 그게 다였어.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말했듯이 반응은 보통 이래. 내 이야기를 듣고 ‘나 그거 알아’ 그리고 ‘나도 할 줄 알아’ 그 다음은 ‘그것도 방법이지’라고 해. 그리고 ‘안 해본 건 아닌데’ 마지막으로 ‘잘 안 되네’까지. 실제로 그들은 내가 말한 것을 알고 이미 해본 사람들이에요. 당연하지. 내가 말한 게 특별한 방법은 아니니까.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 위에 내가 말한 것을 얹어요. 그리고 끝. 거기에는 어떤 고민이나 되새김은 없죠. 이미 아는 것이고 해본 것이라서 이번 일에 대해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더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 하게 돼요. 그럼... 거기서는 더 어쩔 방법이 없어.”
“......”
“근데 당신 반응은 좀 달라. 당신 역시 내가 말하는 방법론을 모르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 역시 그것을 해봤고, 해오면서 살았지. 근데 내가 이렇게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것처럼, 마치 처음 들은 것처럼 펑 터져. 그 터짐이라는 팽창은 다시 수축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과정은 필시 고민과 되새김을 동반하게 돼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내가 말한 부분을 얹는 것이 아니야. 알던 것을 몽땅 터트리고 내게 들은 것까지 뒤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야. A에 B가 올라타서 'A+B'가 아니라, 당신에게는 'A*B'가 되는 거야. 그건 내가 정말 못하는 부분이고, 당신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던 거였어. 나는 이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옳은 것이 아니라 훌륭한 것이라 생각해요. 똑똑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라 생각하죠. 왜냐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잘 못하는 거거든. 근데 문제는 이런 건 하고 있는 스스로도 잘 인지하는 못하는 부분이야. 자기 일임에도, 혹은 자기 일이기 때문에 남들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다른지 잘 몰라. '인지가 있는 다름'은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인지가 없는 다름'은 왠지 틀림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당신이 지금껏 괴로웠을 것 같아.”
“......”
“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우선 당신의 발화점에 닿을 만한 작은 외부폭발이라도 가져오는 거야. 근데 이 부분은 관계를 맺으면 당연히 발생하는 화학작용이니 굳이 내가 가져온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이 보통 사람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당신에게 인지 시켜서, 당신 스스로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거야. 틀린 점이 아니라 다른 점은 사람을 괴롭게 하지 않지. 게다가 이건 그냥 다른 점이 아니라 아주 훌륭한 장점으로의 다름이니까.”
“......”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으면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고, 상호작용하는 ‘주고받는’ 것이 있어요. 여기서 이 ‘주고받음’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을 단지 연달아 표현한 것이 아니에요.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닌, 실시간으로 교류하는 순환작용을 뜻해요. 주는 것, 받는 것과 별개인 또 다른 교환 체계.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 평안이나 위안, 의지나 즐거움, 소통과 감정. 이런 것들은 전부 주는 것과 받는 것 안에 있어. 줄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지. 다만 내가 방금 말한 저 부분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아닌, ‘주고받는’ 상호순환교류체계, 즉 ‘주는 일과 받는 일이 양방향으로 동시에 발생하는 불가분 행위’속에 있어요.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고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오가는 그런 것. 그게 아까 당신이 말했던 ‘내가 당신에게 뭔가 전해주려는 것 같은’ 말들이겠지.”
“......”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뭘 베푸는 게 아니라 자연히 그래야하는 걸로.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원하는 경우에만 그래야한다는 거지. 둘 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호교환에서 제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가능한지 아닌지의 가부를 떠나서 노력해야지.”
“......”
“정리하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싶어 하는 건 맞아요. 그 이유는 당신에게 당신을 객관적으로 인지시키기 위해서이고, 그 의의는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어. 그 목적은 당신을, 나아가 우리를 위해서지만 사실 진의는 단지 내 욕심이지. 실제 표징은 당신 마음속을 내 멋대로 휘젓는 꼴이니까.”
“...끝이에요?”
“일단은.”
“나가자.”
“집에?”
“아니, 나 술 한 잔 하고 싶어요.”
“어디서? 집? 밖?”
“밖. 조용한 데에서.”
<별첨>
“지금 보면 거의 내 독백이네.”
“평소라면 보통 질문을 하거나, 아니면 의견을 밝히거나, 못해도 대답이라도 하는데. 사실 이때는 도령 말 듣는 내내 엄청 어지러웠거든. 그런 경험 없어요? 가만히 있는데 어디로 막 빨려 들어가는 기분.”
“있지, 맨 정신인데 꼭 술 마신 것처럼.”
“맞아. 그러던 중이라 사실 다 또박또박 들었는데 나중에 기억도 잘 안 나더라. 정확히는 몸은 기억하는데 머리가 지워버린 느낌이라서, 이거 보고 나서야 확 살아나더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안 싸운 것만으로도 만족이야. 1%도 못 알아들었어도 상관없어.”
“술 마시는 중에 불쑥불쑥 소리 지르고 싶은 거랑 엎드려서 울고 싶은 기분이 번갈아 계속 와서, 그거 참느라 힘들었어.”
“고생했어. 안 참아도 되는데 잘 참더라.”
“그때는 터트리면 지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엄청 상했는데 그 자존심으로 버틴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니까 참길 잘했다고 생각해.”
“대단하네, 진심으로.”
“도령은 어땠어?”
“난 그 나이에 다 터트렸어. 네가 감히 내 성역을 침범해? 라면서 상대를 완전 찢어죽일 기세였지.”
“알만하다. 나도 못 참았으면 그랬을 것 같아.”
“당시에 내 의지였고 왜 그랬는지도 아니까 내 기준에 후회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후회에 준할 만큼 엄청 부끄럽고... 속된 말로 쪽 팔렸어.”
“이 아저씨 이제 보니 안 되겠네. 스스로도 그랬으면서 그 올가미를 나한테도 던졌어?”
“안 걸렸잖아.”
“안 걸릴 줄 알았어?”
“아니, 사실 의외긴 했어. 냉큼 걸릴 줄 알았는데.”
“...이 아저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