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령 코고는 소리보다 그거 신경 쓰여서 뒤척이는 모습이 더 싫어. 신경 쓰지 말라면 쓰지 마요. 진짜 괜찮으니까.”
“응. 잘 못 잤지?”
“아니에요. 나도 푹 잤어. 처음에만 좀 골다가 살짝 고개 틀어주니까 그 다음부터는 하나도 안 골았거든.”
“몇 번씩 말하는 거지만, 잘 때 깨우는 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알다시피 나 자다 깨서 전화 받고 대답하고 다 해도 다시 잠들면 그랬다는 거 아예 기억도 못하잖아. 중간에 깼다고 다시 못 자는 일은 절대 없고.”
“알았어! 그 소린 진짜 귀에 딱지 앉겠다!”
“ㅋㅋ 커피?”
“응.”
“쌀쌀하네. 안 추워요?”
“처음 나왔을 때는 그랬는데, 잠깐 앉아있으면 별로 안 추워요. 오히려 시원해.”
“좋네. 문 열면 바다라는 게.”
“......”
“......”
“잠.”
“응?”
“잠에 대해서 좀 말해줘요.”
“어느 걸로?”
“음....... 역사.”
“역사라. 과정? 내용? 시간?”
“......”
“전부?”
“왜 잘 때 그렇게 끙끙 거리는지.”
“응? 이미 알잖아. 몇 번 말했는데.”
“처음부터 자세하게.”
“속상해?”
“반반.”
“어떻게?”
“어쩔 수 없어서 반, 그래도 반.”
“안으로? 밖으로?”
“그것도 반반.”
“내가 그러는 게 반, 당신이 도움이 못 되는 게 반이겠네.”
“......그런가.”
“큰일 날 소리하네.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근데 고쳐지진 않잖아.”
“이건 고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걸. 잠을 어떻게 잘 것인지, 방식의 문제니까.”
“그걸 아니까 반반.”
“아, 처음 반반.”
“말해줘요. 정식으로.”
“시간 순서가 좋겠지. 일단 내가 제대로 자는 시간은 네 시간이에요. 평균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쯤이지만 한 시간은 앞뒤로 붙는 자투리쯤이고. 왜 네 시간인지는 알죠?”
“대충. 근데 이곳저곳에서 지나가면서 들어서.”
“그럼 일단 십대부터 시작해야겠다. 왜 웃어?”
“난 도령 십대 때 얘기 재밌거든.”
“아재의 왕년 이야기는 허세와 과장만 적당히 털어내면 듣는 재미가 쏠쏠하긴 하지.”
“십대 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 때가 제일 재밌어.”
“이건 그것보다 조금 더 전이야. 어딘가에 적어놓은 것도 있지만, 열여덟 살쯤인가. 어떤 뉴스를 봤어요.”
“6년!”
“맞아. ㅋㅋ 앵커가 그러길 사람이 하루에 삼분의 일을 잔다고 하더라고. 거기서는 정작 다른 말을 하려고 그런 서두를 잡아챈 거지만 그것을 듣는 나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어요. 하루 삼분의 일이나 잔다고? 그럼 일생 세 토막 중 하나는 자고 있는 시간이라는 거네! 쇼크였어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보통 8시간 정도 잔다 치면 그러니까.”
“맞아요. 놀랄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죠. 나 역시 그때까지 8시간씩 잘만 자면서 살아와놓고. 근데 새삼 놀랍더라고요. 그때 내 나이가 열여덟이었으니 그럼 나는 지금껏 6년이란 시간을 침대에서 보낸 셈이잖아요. 어렸을 때는 더 자면 더 잤지, 8시간보다 덜 자진 않았을 테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잤겠죠. 그게 새삼 너무 아까운 거야. 좀 웃긴 얘기지만, 그 당시 가장 처음 든 생각이 ‘이야, 6년이면 도대체 몇 사람이나 만날 수 있는 거야?’였어요. 그 무렵부터 한창 이런저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또 거기에 풍덩 빠져있던 시기였으니까.”
“6년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좀 있잖아요. 사람이 아예 안 자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그래도 나한테는 마치 두 눈 똑바로 뜨고 6년을 날린 것처럼 속이 쓰렸어요.”
“열여덟 살 얘기하는 거 맞죠?”
“응, 열일곱 다음인 열여덟.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나봐.”
“아무튼 이놈의 고2는 별 생각을 다 하고 살아.”
“그러니까. ㅋㅋ 아무튼 그렇게 충격을 받고 나서 속이 많이 상했어. 아까운 내 시간들을 어디서 보상 받나 싶었죠. 근데 이미 지나간 거야 어쩔 수 없고, 당신 말대로 아예 안 자고 살 수도 없으니까 앞으로라도 챙겨먹자. 지금 내가 8시간을 잔다고? 그래! 그럼 앞으로 내 수면시간은 4시간이다! 그렇게.”
“......”
“표정 좀 풀어요.”
“...이럴 때보면 진짜 이상한 사람 같아.”
“허?”
“아니 나쁜 뜻이 아니라, 성격이 뭐랄까... 좀 변태 같다고 해야 하나.”
“기껏 포장한 말이 더 충격적인데?”
“야하다 뭐 그런 쪽 변태 말고, 아니 생각이 왜 저기서 거기로 가지? ...아무튼, 그래서 잘 줄었어요?”
“응.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4시간씩만 잤어요.”
“그게 돼?”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지. 평생 8시간씩 자던 애가 갑자기 반 토막만 자려니까 처음 일주일은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았어. 그 다음 일주일은 하품을 하느라 턱이 아프더라고. 또 다음 일주일은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돌아다니고. 그 멍한 상태가 두 달 가까이 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삼 개월쯤 되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육 개월쯤 되니 완전히 몸에 익더라고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대단하지.”
“적응력보다 댁이 더 대단하네. 말이 쉽지, 절대 안 쉬웠을 텐데.”
“그때는 좀 무식했으니까. 하고 싶어? 그럼 해! 뭐라고? 잘 안 된다고? 웃기고 있네, 그것도 못해? 그럼 넌 쓰레기야! 아주 의지박약이네! 이 인생의 패배자 같은 놈!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거든. 그래서 하고자 하는 바를 힘들다고 안 하는 것이 그때 내게는 가장 창피한 일이었어. 인간 실격의 근거였지. 그래서 이 악물고 버둥버둥 버티다 보니 내가 어느새 4시간 정도만 자고 있더라고. 이게 내가 잠을 줄이는 첫 번째 이유. 단지 시간이 아까워서.”
“이유가 더 있어?”
“둘 더. 그러다가 열아홉 살이 되고, 그때부터는 안 잔 게 아니라 못 자게 되었어요. 첫 번째 시대가 시작된 후부터 꿈이 너무, 속된 말로 지랄 같아서 매일 소리를 지르며 깨거나 울면서 잤거든. 그렇게 일어나면 하루가 엉망이 돼. 밤새 가슴이 아파 울면서 침대를 데굴데굴 굴러다니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그렇게 밤 동안 짓눌리다 보면 해가 떠서 밖에 나가도 하루 종일 미친놈처럼 돌아다니게 되니까. 그래서 그때는 제대로 못 잤어. 정확히 말하자면 자려고 하면 잘 수 있지만 잠들기가 싫었지. 잠들 수가 없었어. 근데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이 안 잘 수는 없잖아. 그러니 꼼수를 쓰는 거지.”
“무슨 꼼수?”
“당시 나는 내 상태의 원인이 꿈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꿈만 안 꾸면 내 상태가 꽤 괜찮아질 거라 여겼고. 그래서 인간이 자는 동안 꿈을 꾸지 않으려면 기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잠드는 게 아니라 강제로 전원을 내려버리는 거지. 그럼 꿈을 안 꾸니까. 정확히는 못 꾸는 거야.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면 몇 시간이 지나있고, 그럼 지끈거리던 머리도 조금 가라앉고 사시사철 흐르던 코피도 잠시 멎고.”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어떻게 기절을 해? 그게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거야?”
“물리적인 게 아니라면 좀 힘들죠. 그렇다고 매일 누구한테 ‘내 목을 기절할 때까지 졸라줘요’ 그럴 수는 없잖아. 그래서 안 자기 시작한 거야. 아예. 하루, 이틀, 사흘이 되도록 단 1초도 잠들지 않는 거지.”
“그게 돼요?”
“되게 하는 거죠. 하루, 이틀까지는 괜찮아요. 근데 사흘쯤 되면 사람이 까무룩 하게 넘어가요. 위에서 아주 무거운 솜으로 온몸을 누르는 것처럼 점점 가라앉는 거예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 것 같으면 있는 힘껏 팔뚝을 쥐어짜는 거예요.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1분 정도 쥐어짜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뇌가 점점 맑아져요. 샤라라랑 하는 소리와 함께 뇌에서 뭔가 반짝반짝한 가루가 쏟아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럼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잠이 깨는 거야. 대신 팔뚝에는 시퍼런 피멍이 들지만. 그렇게 깨어난 뇌가 처음에는 몇 시간쯤 가요. 그러다 또 까무룩 해지면 또 꼬집는 거야. 그럼 다시 한 40분. 다음에는 30분. 20분. 10분. 뇌가 깨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그렇게 나흘째가 되면 아무리 뇌를 깨워도 겨우 몇 분이야. 나는 팔뚝뿐만 아니라 배, 옆구리, 허벅지 등등이 온통 피멍이 들어.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모니터가 꺼진 것처럼 기억이 없어요. 그리고 깨어나면 몇 시간이 지나있어. 기절한 거야. 꿈을 꿨는지 아닌지도 몰라. 기억이 없으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 중에 단 1초도 잠들지 않는 거야. 실수로 1분이나 5분쯤 잠깐이라도 졸아버리면 일주일을 그렇게 지내도 끝내 기절하지 못하거든. 한 순간도 잠들지 않으면 내 기준에 72시간쯤이 지날 무렵 자연스럽게 전원이 끊기고 기절을 해. 그리고 깨어나면 다시 처음부터. 이삼일 버티다가 까무룩 하게 넘어가기 시작하면 기절하기 전까지 또 내 몸을 괴롭히면서 잠을 참는 거야. 이걸 반복하다 보면 사람이 점점 말라가. 체력도 계속 떨어져서 처음에는 나흘 72시간쯤이던 간격이 사흘에 한 번씩 기절을 하게 되고, 다시 이틀이 되었다가 결국 대략 30시간쯤으로 줄어들어. 몸도 만신창이가 되지. 쥐어짜고 꼬집다가 옷에 가려지는 부위에 더 이상 쥘 곳이 없는 거야. 뇌가 침수되는 간격이 짧아질수록 내 몸은 기하급수적으로 멍이 드니까. 그러니 나중에는 결국 딱딱한 어딘가에 뼈마디를 부딪쳐. 벽을 무릎으로 치고 책상 모서리에 손목을 짓누르고 철봉에다가 정강이를 찍어서라도 뇌를 깨우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 정도라면 차라리 자고 꿈꾸는 게 낫지 않아?”
“그때는 그랬어요. 차라리 이게 더 나았어. 꿈을 꾸고 나면 나는 완전 미친놈이었거든. 울고 아프고 뒹굴고, 그렇게 혼자 하는 건 괜찮아. 근데 밖에서까지 그랬거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막 소리를 지르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참지 못해 발광을 하고. 거울만 보면 깨고 싶어서 온몸을 들이박았어. 술 마시고 시비 걸어 싸우고, 난동을 부리고, 아무렇게나 막 달려가다가 다시 시비를 걸어 싸우고. 욕하고 소리 지르고 사람 많은 대로에서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그러면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줬지. 그냥, 한 마디로 미친 사람이었어요. 어딘가에 격리해야 하는 정신병자. 몇 개월 그러다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 미성년자라 어디 갈 데는 없는데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은 나를 미친놈 보듯이 피해. 그럼 또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새벽녘에 조용히 방으로 숨어들어 헉헉 거리며 해가 뜨길 기다리고. 해 뜨면 다시 나가서 그러고. 안 되겠더라고. 차라리 그런 짓을 해서라도 잠을 안 자는 게 나았어. 그 과정이 괴롭지 않을 리 없지. 단지 어쩔 수 없으니까 아까 말한 방법을 쓴 거야. 그렇게 셧다운 하듯 쓰러지면 꿈꿀 새도 없어. 그 덕분인지, 다행히 그때부터 소란했던 내 주변은 많이 조용해졌어. 딱히 누군가와 싸우지도 않고, 트러블을 유발하지도 않고, 마주치지만 않으면 가족과도 조용히 넘어갔어. 다만 나만 말라간 거야. 속으로 썩어가는 거지. 그래도 그게 나았어.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안 주니까. 그러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라고 어느 순간부터 기절하는 게 몸에 배더라. 30시간을 기준으로 뒤로 쓰러지듯 정신이 끊기고 잠시 후 재부팅하듯 일어나. 가끔 까무룩 하는 타이밍에 몸을 괴롭히는 것을 놓쳐서 잠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럼 여지없이 꿈을 꾸고 울면서 깨지. 그래도 괜찮았어. 그런 날은 한 달 중에 하루 이틀 정도뿐이었으니까. 몹시 미친놈이 아주 가끔 미친놈으로 격상되고, 그 하루 이틀마저 난동을 부리는 일이 드물었지. 정확히는 기절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난동부릴 체력조차 남지 않은 거야. 그냥 숨만 쉬고 있었지, 나는 시체 같은 상태였으니까. 그쯤 되면 사람은 숨 쉰 채로 죽어있어. 밥을 먹어도 울면서 먹고, 기절을 해도 울면서 자. 온 세상이, 온 하루가 물에 젖은 휴지처럼 나풀거리는 시절이었어.”
“......커피?”
“고마워. 아무튼 그렇게 6개월쯤 살았나. 역시 그쯤 되니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돼. 그런 습관으로 인이 배기는 거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딱히 어딜 꼬집거나 갖다 박지 않아도 서른 시간을 훌륭히 채우고, 그리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어. 그리고 보통, 그렇게 기절했다 깨는 시간이 네 시간이야. 이게 두 번째 이유.”
“그래서 아직도 그렇게 자는구나.”
“십 년도 더 된 그때 버릇이 아직까지 남아서 그런가봐. 근데 그런 습관을 들였다 해도 자는 시간이 네 시간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기절이 아니라 잠이 돼. 네 시간까지는 ‘기절하듯 꿈도 없이 자는’ 거고, 네 시간이 넘어가면 ‘그냥 자는’ 걸로 변환되나봐. 그래서 그 이상은 잘 못자. 그 대신 그 네 시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중해서 자는 거야. 이 악물고 이불을 있는 힘껏 그러쥔 채 최선을 자해서 자는 거지.”
“맞아. 그러더라.”
“당신이 보기에도 티 많이 나?”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 스스로 어떻게 자는지.”
“그렇지. 그냥 전해들은 것뿐이니까.”
“나는 옆에서 많이 봤으니까. 그 네 시간이랑 그 이외랑은 자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
“그래? 이건 처음 듣는 말이다.”
“자는 모습 보면 그 네 시간 동안은 세상 무너져도 절대 못 깨우겠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턱이 씰룩이는 걸 떠나서, 뭔가 그런 분위기가 있어. 그때는 뭐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코도 안 골아. 그러다 그 네 시간이 지나가면 뭐랄까, 갑자기 확 풀어져. 웅크리고 끙끙 거리다가 어느 순간 대짜로 헤 하면서 자는 거야.”
“왠지 알 것 같다. ㅋㅋ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웃기겠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모르다가, 좀 더 보다보니 웃기다가, 나중에는 안쓰럽다가, 뭐 그렇지. 아, 그리고 재밌는 거 하나 더.”
“뭔데?”
“그 네 시간이라는 게 꼭 정해져있지는 않더라고.”
“응?”
“그러니까, 잠들기 시작하면서 네 시간 시작! 이러지는 않는다고.”
“아. 맞다. 그러겠네.”
“응, 언제는 잠들고 초반일 때도 있고, 중반일 때도 있고, 어느 때는 밤새 뒤척이며 설게 자다가 막판에 네 시간으로 들어갈 때도 있어요.”
“무슨, 마치 ‘모드’ 같네.”
“맞아. 그래서 옆에 있으면 이제는 몸으로 알아. 아, 이 사람이 지금 어떻게 자고 있구나 하고. 방금까지 얕게 코를 골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옆에 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질 때가 있어. 단순히 코를 안 고는 게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야. 그래서 화들짝 놀라 돌아보면 인상 잔뜩 쓰면서 이 악물고 있어. 그럼 네 시간 모드로 들어간 거야. 그때는 코도 안 골고 움직이지도 않아. 그러다 보면 나도 그래. 덩달아 선잠 자다가 도령이 거기 들어가면 그제야 나도 푹 자. 그리고 도령이 다시 나오면 나도 같이 깊은 잠에서 깨고. 오래 되다 보니까 나도 그 스케줄을 따라가나 봐.”
“그런가 보네. 이런 얘기는 처음 들었어. 엄청 새롭고 재밌다.”
“보통 자기가 어떻게 자는지는 잘 모르지.”
“맞아. 누가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지. 누군가 나 자는 모습을 그렇게 오래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도 드물고.”
“나는 도령이랑 자는 시간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봐. 같은 시간에 자도 옆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잠결에 몸에 기록되는 점도 있고.”
“맞아. 예민한 사람은 그런다고 하던데. 신기해. 나는 못하는 기술이야.”
“도령 어떻게 자는지 전체 과정 모르죠?”
“응. 부분적으로는 들었는데 전체는 몰라.”
“예전 여자 친구들이 말 안 해줬어?”
“그러게.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는 안 해줬네.”
“그럼 내가 처음이네. 에헴! 말해줘요?”
“궁금하네. 작정하고 삼천포로 빠져보자.”
“아, 맞다. 도령 말하던 중이었지.”
“이건 진짜 궁금해서 그래. 말해 봐요.”
“우선 처음에 손으로 도닥도닥 하잖아. 그러다 어느 순간 점점 느려지더니 잠깐 끊겼다가 다시 했다가 조금 반복해.”
“잠들고 있나 보다.”
“응.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흐흐.”
“왜?”
“혀를 씹는다?”
“아! 나 이 얘기는 들어봤다. 나 잠들기 전에 혀 씹는다고.”
“응, 뭐랄까. 신호 같은 거야. 나한테는 ‘나 이제 잠듭니다!’라고 들려.”
“렘수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인가 보네.”
“그런가봐. 아무튼 혼자 사탕 먹는 것처럼 오물거리는 거 보면 웃겨.”
“좀 추해?”
“아냐, 귀여워.”
“그렇다는 건 남이 보면 추하단 얘기네.”
“내 눈엔 귀엽다니까!”
“네 눈이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건 그래. ㅋㅋ 아무튼 그러다가 혀 씹는 게 딱 멎는 순간 숨소리가 달라져. 그때부터 약하게 코를 골아. 코를 곤다기보다 가르릉거리는 거 있잖아. 뭐랄까, 잠드는 순간부터 숨 쉬는 방법이 바뀌는 것처럼.”
“그건 어렴풋이 감이 온다. 그 전에 가슴으로 쉬다가 잠들면 배로 쉬는 건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 가릉거리는 소리가 얼마간 지속되다가 작게 코를 골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계속 작게 유지될 때도 있고, 점점 커질 때도 있어. 그 상태로 놔두면 한참 동안 큰 소리로 골아.”
“얼마나 커?”
“음, 심할 때는 내가 화장실에 있는데도 도령 코고는 소리가 들려? 울려? 응, 울리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
“으악! 너무 싫어!”
“또 그런다. 놔두면 그래. 두어 번 정도면 고개 틀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안 골아. 골아도 아주 조그맣게 골고.”
“이건 진짜 수술할 거야. 인생 첫 수술이 코골이 수술이라니, 슬프네.”
“첫 수술은 아닐 텐데.”
“아? 그러네.”
“그 정도 아니니까 괜찮아. 아무튼 그렇게 조그맣게 코를 골거나 색색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있다가,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음소거한 것처럼 아무 소리가 안 들려. 뭐랄까, 이건 소리가 아니라 느낌이야. 갑자기 도령 자체가 없어진 것처럼, 땅으로 쑥 꺼진 것처럼 뭔가 인기척이 사라지는 느낌이야. 처음에는 놀라서 몇 번이나 눈뜨고 확인했다니까. 옆에 있나. 요즘에도 그 때가 되면 잠결에 나도 모르게 손으로 도령을 찾아.”
“이건 진짜 보기 않고는 모를 느낌이네.”
“그때부터는 진짜 숨소리도 안 들리고, 거의 움직이지도 않아. 정말 집중하는 것처럼, 마치 자는 척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거야. 종종 도령이 숨을 쉬고 있나, 가슴을 한동안 주시하고 있을 때도 있어.”
“그건 뭐야. ㅋㅋ 요양복지사세요?”
“아무튼 그래. 가끔 덜컥 겁이 날 정도로 조용하단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그때가 그 ‘네 시간’이야.”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네.”
“그럼 나도 그때까지 거의 선잠이다가 덩달아 빨려드는 것처럼 깊게 잠들어요. 이건 좋은 점.”
“이게 왜 좋은 점?”
“나 종종 불면증처럼 밤새 선잠일 때도 있는데, 도령이랑 같이 자면 최소한 그 네 시간만큼은 나도 푹 잔다는 얘기니까. 나 역시 습관이 들어서 요즘은 혼자 자도 밤새 선잠인 경우가 거의 없어.”
“그거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느 순간 퍼뜩 깨. 완전히 깨는 게 아니라 깊은 잠에서 선잠으로 빠져나와. 그때가 언제냐면 도령이 그 네 시간에서 나왔을 때. 그때 마치 잠들 때처럼 다시 반복한다?”
“뭘?”
“미약하게 갸르릉 거리다가, 조그맣게 코를 곤다고.”
“나 참. 전반이든 후반이든 한 번만 하지.”
“내 경험 상 후반은 더 커지지 않고 조그맣게 가릉 거려. 그러다가 깨는 거야. 끝.”
“그렇구나. 전체 과정은 처음 들었어요. 나는 재밌는데 한편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네.”
“근데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처음에는 팔베개나 둘러 안고 자잖아. 잠들면 그 짜임이 좀 흐트러져도 여전히 붙어있어. 근데 네 시간 모드로 들어가면 나 밀어낸다?”
“허?”
“돌아누워서 혼자 웅크리고 자.”
“...미안?”
“미안한 건 아니지. 근데 더 웃긴 건 네 시간 모드 끝나면 또 잠결에 나 찾아. 흐흐흐.”
“이건 진짜! 생전 처음 듣는다. 안 불편해?”
“나야 원래 벽이든 인형이든 뭐 쥐거나 짚고 자는 스타일이니까. 처음에는 도령 팔 쥐고 있다가, 도령 뒤돌면 나도 돌아서 벽 짚고, 도령 돌아오면 나도 돌아서 다시 팔 쥐고 자면 되니까 별로 안 불편해. 그냥 도령이 네 시간 동안 혼자 웅크리고 있다가 돌아오면 잠결에 고생했어요, 하고 안아주는 거지.”
“......”
“지금 감동 받았지?”
“응.”
“좋아. 목표 달성했어.”
“그 밖에 다른 건 없어요?”
“음, 일단은. 턱 소리 내는 건 워낙 중구난방이라 무슨 기준인지 아직 모르겠어.”
“그것도 미안해요. 나는 참, 잘 때 민폐 많이 끼치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많이 깼는데, 요즘에는 그냥 그러려니 해. 익숙해졌나봐. 그보다 탱크가 나돌아 다니지 않는 게 어디예요.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항상 고맙고.”
“그럼 이제 아침 먹자! 이번엔 나한테 감동을 먹여줘요.”
“풀코스로 대접해야겠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숙주 라면하고 사과 샐러드. 사과 채는 가장 가늘게.”
“사과야 그렇다 쳐도, 숙주?”
“냉장고 검은 봉지. ㅋㅋ”
“아, 그 바스락 거리던 게 지금을 위한 복선이었구나.”
“옛날 생각난다. ㅋㅋ 해줄 거죠?”
“참나, 나처럼 토하지만 마요.”
<별첨>
“근데 생각해보니...... 이거 은밀한 침실 이야기잖아.”
“으음? 그렇지?”
“그럼 이건 NG 아니야?”
“......근데 이건 그런 쪽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잠에 대한 이야기니까 괜찮아.”
“그런 거야?”
“오히려 이건 남았으면 좋겠다.”
“왜?”
“......그냥. 뭐가 되었든 당신의 처음은 워낙 드무니까.”
“...아무튼 알았어. 혹시 생각 바뀌면 말해.”
“...근데 나도 생각해보니.”
“먹고 말해. 흐른다. 생각해보니?”
“생각해보니 나도 누군가 자는 모습을 이만큼 유심히 들여다본 건 도령이 처음인 것 같아.”
“보통 그럴 일 없잖아. 자신의 자는 모습은 당연하고, 남이 어떻게 자는지는 잘 모르지. 어떤 식으로 잠들어서 어떻게 깨는지 전체를 다 알게 될 일은 더더욱 없고. 정말 작정하고 지켜보지 않는 이상.”
“그러네. 내 가족이 어찌 자는지도 모르니까.”
“요즘은 다들 각방 쓰니까. 옛날 시절처럼 다들 한 방에서 모여 잘 때는 지금보다 잘 알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았을까. 도령은? 가족들 어찌 자는지 알아?”
“아버지는 잘 모르고, 어머니랑 동생은 조금. 나야 거의 밤중에 깨어 있고, 담배 피운다고 밤새 왔다 갔다 하는데 어머니는 거실에서 주무시니까. 그렇게 한 십 년 봤더니 정말 자는지 자는 척 하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됐어.”
“미안. 밥 먹을 때 꺼낼 얘기가 아니었네.”
“괜찮아. ㅋㅋ”
“동생은?”
“잘 자고 있는지 밤에 자주 들어가 보니까. 동생은 얌전히 자는 스타일이지만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 엄청 껴입고 두꺼운 이불 덮고 자거든. 전기장판까지 빵빵하게 틀고.”
“근데?”
“그래서 오히려 덥다고 이불 차 던지는 일이 많아서. 그래놓고 잠결에 못 찾아서 떨고 있는 걸 자주 봤거든.”
“흐흐. 귀여워.”
“그래서 그 이후로는, 특히 겨울 때는 자주 들어가서 체크하는 편이야.”
“그렇구나.”
“자, 이쯤 했으면 이제 내놔.”
“티 많이 났어?”
“아주 철철 흘러 넘쳤어. 충분했으니 얼른 본론을 꺼내.”
“음, 나는? 도령 나 자는 거 본 적 있어?”
“본 적 있냐고? 나 참. 보다가 해 뜬 적도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자? 알아?”
“몰라.”
“왜!”
“얼굴 들여다 보다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라. 어찌 자는지는 못 봤어.”
“이 거짓말 진짜야?”
“거짓말 같은 진짜라고 거짓말 할게.”
“뭐래. 진짜가 뭐야?”
“뭐, 나름 평범하고 얌전해. 입술 네모로 만들고.”
“그건 뭔지 알겠다. 그럼 전체적으로는?”
“글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되게.......”
“되게?”
“...바보 같이 자.”
“어떻게 바보 같은데?”
“지금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 알아?”
“무슨 오류?”
“하나는 ‘내가 예뻐? 저 연예인이 예뻐?’ 같은 질문할 때의 눈빛이라는 거고. 두 번째는 일 더하기 일이 이인 걸 모르는 사람한테, 그걸 왜 몰라? 라고 묻고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