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힘들다 2
한국에서 홍콩으로 오는 아이들이 겪는 보통의 코스가 이렇다. 한국국제학교에 들어간다. 한국국제학교에는 한국의 커리큘럼을 따르는 Korean Stream과 영국의 커리큘럼을 따르는 International Stream이 있는데 아이의 영어실력이 좋지 않다면 일단 Korean Stream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International Stream으로 옮긴다. 그리고 다른 국제학교로 또 옮긴다. 딸아이는 정확히 이 코스를 밟았다. 아들은 한국국제학교 International Stream에서 시작해 다른 영국계 국제학교로 옮겼다.
ESF(English School Foundation)는 홍콩에서 가장 많은 국제학교를 가진 학교 법인으로 영국의 커리큘럼을 따른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제학교에 비해 학비도 저렴한 편이다. 홍콩 곳곳에 ESF의 여러 학교가 있는데 인기가 있는 학교는 1년 혹은 그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 2019~2020년 홍콩 시위와 코로나 이후, 홍콩에서는 많은 외국인들이 빠져나갔다. 그래서 ESF 입학 대기가 상대적으로 짧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우리도 아이들을 ESF에 보내고자 대기를 해 놓았다. 운 좋게도 약 6개월 후에 인터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딸아이가 먼저 인터뷰를 봤다. 지원자들은 4~5명의 다른 어린이들과 약 1시간 정도 집단 인터뷰를 본다. 부모는 학교장님과 별도의 인터뷰를 본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시내로.내려요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인터뷰가.끝난지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아직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학교 측에서 전화가 왔다. 딸은 합격했다고 통보함과 동시에 언제부터 출석할 수 있냐고 묻는다.
"아 다음 주부터 됩니다."
대기가 길었지만, 이렇게 가는 거구나 생각하며, 교복을 언제 살지, 지금 학교에는 어떻게 알리고 마무리 지을지 등등을 아내와 논의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학교에서는 곧 둘째 아들도 인터뷰가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학교마다 학교를 홍보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있다. 이제 합격도 했고, 동생도 인터뷰를 볼 테니 학교를 먼저 둘러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 온 가족이 학교로 갔다. 하지만 전날 내린 비로 학교투어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연락을 미처 받지 못한 몇몇 가족들이 함께 있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딸아이의 교복을 사러 갔다.
'아들의 교복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교복을 사는 곳이 제법 멀다. 곧 둘째도 인터뷰를 보게 될 건데, 인터뷰 결과를 기다려야 할지, 미리 사놓을지 고민이었다.
"설마 떨어지겠어? 언제 여기를 또와. 온 김에 다 입어보고 치수 결정하자. 우선 필수적인 것만 사고 더 필요한 것들은 나중에 인터넷으로 시키지 뭐."
딸아이도 신났지만, 아들도 덩달아 신났다. 아빠인 나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약 2주 후, 아들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아, 이제 아들도 학교를 옮기게 되겠구나. 우리 가족의 홍콩에서의 삶이 차근차근 잘 발전해가는 것 같았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기대에 부풀었다. ESF학교를 방문하고는 그곳 시설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새 교복까지 샀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까지 마음이 부풀었는 지는 미처 몰랐다. 우리 외향적인 아들님이, 학교 같은반 친구와 옆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한테까지 곧 학교를 옮긴다고 다 말하고 다닌 것이다. 자기는 다음 주에 인터뷰를 볼 거고, 그러면 다음 주까지만 이 학교에 올 거라고 작별 인사를 이미 다 했다고 한다.
아, 이런. 다 확정되기 전까지는 얘기하지 말자고 미리 얘기를 해 둘걸. 그래도 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지금이라도 그만 얘기하고 다니라고 가볍게 주의만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날, 기대하며 면접을 보러 갔다.
"자신감 있게 면접 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당당하게 하고. 알았지? 잘할 거야. 아빠는 우리 아들 믿어! 화이팅!"
불과 3주 전쯤 만났었던 교장선생님과 새롭게 얘기할 내용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아들은 언제쯤부터 보낼 수 있냐는 얘기를 하고 교장선새임 면담은 금방 끝났다. 그리고 아들의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중, 면접관들로 부터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된다.
"We can't say Yes for now."
"Sorry, can? can't?"
"We ca~~~~~n't."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아들의 집중하지 못하는 자세 때문에 입학을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해서 다음 주 중에 한번 직접 수업에 참여하라고 한다. 두 시간 정도 실제로 학급에 참여해서 더 자세한 관찰을 한 후에 결정을 하겠다는 거다. 기회를 한번 더 준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교무실로 돌아가는 선생님 중 한 분을 붙잡고 면접 중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봤다. 우리 아들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잘 했단다. 그런데 답변을 하고 나서는 아직 선생님이 말씀 중이신데 혼자 교실을 돌아다녔단다. 그리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학교는 한 학급에 30명이 넘는다. 선생님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을 다 챙겨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수업을 따라오고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지를 정말 중요하게 본다. 아... 아빠의 잘못된 지도방향 때문일까? 너무 큰 기대감과 흥분이 아들의 기분을 상승시키고, 그래서 아들이 오버 액션을 했던 것 같다.
머리를 싸잡고 집으로 오는 길. 아내도 심각하다. 떨어진 것에 실망했다거나 떨어진 것 자체에 대한 심각성은 아니다. 그 보다는 아이 둘이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눈앞이 깜깜하다. 아이도 애써 밝은 표정을 짓지만,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은 일단 안 됐어. 네가 잘못했다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야. 하지만 학교에서 원하는 만큼의 행동을 아직 보여주지 못했대. 불합격 한건 아니야. 기회를 더 준다니까 노력해서 잘해 보자. 여기 학교 오고 싶지? 정말로 오고 싶지?"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오고 싶다는 동기는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학교에 소문은 다 냈는데, 떨어진다면 아이인들 마음이 편하랴? 부모입장에서도 보통일은 아니다. 아이 둘을 각각 다른 학교에 보내는 것은, 특히 아이들을 챙기는 엄마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각 학교의 일정을 맞추는 것은 전쟁 같은 일이 될거다. 안된다. 반드시 보내야 한다......
Focus 가 문제라면, 이 걸 어떻게 잡을까? 나에게 남은 시간은 금, 토, 일 딱 3일뿐이다. 나는 월요일 한국으로 출장을 가야 하고, 아이는 화요일에 다시 학급에 참여하는 면접을 보게 된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명상을 해야겠다!"
아내는 지금도 그때를 얘기할 때면, 남편이 어린 아들 붙들고 명상을 시켰더라며 얼마나 웃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심각했다. 3분부터 시작했다. 정자세로 앉아 허리를 세우고 눈을 감게 했다. 3분을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건만, 아들은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얼굴이 찡그려지고, 다리가 움찔움찔하며 허리가 비틀어진다. 우리 아들은 사실 눈 뜨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 쉬는 법이 없고 1초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좋게 응원하며 지지하며 명상도 해가면서 준비해 나가리라 생각했던 나는 금새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너 안되면, 학교 창피해서 어떡할라고? 그래도 좋아? 아니잖아."
하면 안 되는 말을 해 버렸다.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이 내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이에게 두고두고 미안하다.
토요일 저녁. 학교 측에 메일을 썼다. A4지 한 장이 조금 넘는 글을 주저리주저리 써서 입학 담당 선생님께 보냈다. '우리 아들이 원래 그렇게 산만한 아이는 아닙니다'로 시작하여, 홍콩에 처음 와서 있었던 일들, 우리 아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덧붙였다.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아이니 오는 화요일에 잘 봐주세요. 혹시 안되더라도 좋은 배움의 기회로 삼겠습니다.'라는 아빠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그 학교에 합격한 무용담들이 조금 있다. 학교에 먼저 방문해 얼마나가고 싶은지 영상을 찍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발표를 하곤 했다는 얘기들이다. 사실 거기에 비하면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주말까지 명상연습을 하고, 이제 모든 것은 하나님손에 맡기고, 나는 출장을 갔다.
"여보 어떻게 됐어?"
"어, 수업시간에 잘한 것 같아. 학년 담인 선생님이 아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뭘 했냐고 한 거 같아."
"한 거 같다고?"
잘 된 것 같은데, 그 그 '같다고'라는 말이 찜찜하다. 요는 그 학년 담임 선생님의 본토 영국식 발음이 우리로서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됐다는 건지 안 됐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몇 시간 뒤 학교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받지 못했다. 대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음성 메시지 역시 몇번을 들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 결과가 궁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곧 답장이 왔는데 애매한 메일이었다. 합격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가정에서 지원할 건지 묻는 메일이었다. 이건 또 뭐지 싶었지만, 곧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 줄로 답할 수는 없고, 또 절절히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겠다는 반페이지 정도의 글을 써서 보낸 뒤에야,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만세!!!"
정말로 두 손이 번쩍 들어졌다. 딸이 너무 쉽게 합격을 해서 그냥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그 학교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의외로 많이 듣게 됐다. 학교마다 원하는 학생상이 다르기는 한데,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뽑지 않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란다. 아들도 적잖이 마음을 졸였을게다. 아빠의 조급함에 더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도 잘해낸 아들이 자랑스럽다. 너무나 쉽게 합격한 딸이 다시금 대견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