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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May 09. 2021

D-30, 마케터 '수습'사원으로서 남은 기간

한 달뒤 나는 어디 있을까?

※ 실제 수습기간을 정확히 명시한 건 아닙니다.


3개월짜리 마케터


3개월 수습사원으로 시작한 마케터 생활이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오늘도 여전히 주중에 쳐내지 못한 광고 기획안이 발목에 묶여 있어 밤을 새야 할 것 같지만, 그전에 수습으로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동안 내가 기획한 광고 중 실제 라이브 된 것들을 찾아보고 자료로 모아두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여러 광고 기획안을 만들었고, 수정했고, 실제로 라이브 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결과물도 있었다. 기획의 구성을 갈아엎어야 했던 경우도 있었고, 라이브까지 됐지만 효율이 좋지 못한 것도 있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그래도 폴더 하나를 만들어서 모아둘 만한 결과물들이 몇 개 생겼다. 결과야 어떻든 내가 기획한 광고가 세상에 나오는 경험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직업으로서 스타트업에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파란만장한 일이었다.



스타트업의 특성이랄까, 그런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대학생 때 창업팀의 팀원으로 잠깐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청년들이 주축이 된 단체에서 몇 년 동안 활동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 직업으로서의 스타트업에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파란만장한 일이었다. 시작하는 기업이다 보니, 업무량이 살인적이진 않지만 하는 만큼 성과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은근한 압박감, 콘텐츠의 질을 생각하다 보면 오는 스트레스가 쏟아졌다. 또한, 사수들, 상사들이 내릴 나에 대한 인사평가에 대한 걱정이 한데 어우러져 이상하게도 주말이면 잠을 더 잘 자지 못했다. 그래서 월요일엔 컨디션 최악인 상태로 출근하기를 두 달 동안 반복했다. 아마 내일도 엄청난 컨디션 난조를 보여주며 출근할 것 같다. 아마 지금 가장 큰 걱정은 '한 달 뒤 내가 어디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올 것이다.



5월과 6월을 대비한 힐링타임


어제는 힐링을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친구와 함께 서점과 카페를 갔다. (원래 엄청난 집순이라 밖에 잘 나가지 않고, 나가도 집 근처까지만 나간다.) 그런데 웬걸, 그냥 근처에 있길래 간 카페는 엄청난 디저트 맛집이었고, 서점에서는 원래 사려던 책이 너무 어려워 둘러보던 중 더 나은 책을 찾게 돼 바로 질렀다. 덤으로 읽고 싶던 신간도 같이 질렀다. 그리고 저녁 메뉴로 급하게 정한 음식점은 웨이팅이 있었지만 그만큼 보장된 맛이어서 친구랑 말도 없이 먹기만 했다.  


밀크티+흑당이 이렇게 적절한 맛일 줄 몰랐다.



그래서 6월의 나는 where?


다행인 건 내겐 인복 넘치는 회사 동료들이 있다. 대학에서 만났으면 정말 친해졌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다. 동료들과 식사 겸 술자리를 종종 가지는데, 그땐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라고 쓰면 일방적인 나의 찡찡 거림이라고 읽는다)를 많이 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최고라지만, 그러다간 내가 큰일 날 것 같아서 나는 다 말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가야 한다면 나가겠지만, 기왕이면 일찍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무서운 건 나가는 것 자체라기보다, '당신은 회사에서 나가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 같고, 나가고 난 다음에 또다시 억겁의 포트폴리오/자소서 수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지난한 과정이 눈에 뻔했고, 그래서 답답했고, 그래서 기왕이면 빨리 말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아, 물론 정규직으로 무사히 전환되는 경우의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나이대에 비해 열정보단 염세적인 면이 더 큰 사람이라.



월급이 들어왔다.


또 월말 되면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인 월급이지만, 그래도 다음 달까지 모으면 탈탈 턴다는 기분으로 제주도 한달살이 정도는 계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이번 달부터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쓰니까 무슨 퇴사하는 게 100% 확정된 것만 같다. 훠이훠이, 아직 5월 초라고!!!


어제는 어버이날이었고,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진 않고 그냥 문자만 보냈다. 어버이날 선물은 정규직이 되는 것으로 도전해보겠다고. 과분한 선물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나도 과한 선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생도 덜한 것만 같고, 스펙도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래서 퇴사해도, 그만한 처지라고 스스로 납득해버릴 것만 같다. 아, 누누이 말하지만 최악의 경우일 때를 말하는 거다. 여기서 퇴사가 왜 최악의 경우냐고 묻는다면, 일단 지금 상황에선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고 있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일일 테니까. 


소중한 월급으로 일단 남은 5월을 살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일을 위해 남은 일을 처리해보려고 한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주도 무사히. 부디 무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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